“할아버지 혼령의 집착”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억울하다고 합니다. 당장 상대편 여인을 만날 작정이랍니다.
남자가 다시 자기 부인의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분개합니다.
거의 10년이나 흐른 세월 속에 자기 남편과는 헤어진 상태로 있다가, 지난 3월에 이혼장 도장을 찍고 나니까, 동거해 오던 남자가 벌리는 작태라고요. 하지만 어떡합니까 ?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 10년을 돌려 세울 수도 없고, 진하게 새겨진 두 사람의 관계를 일시에 정리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모습이 최모 배우를 닮아 영정사진에 나온 털실로 짠 목도리를 감고 흰 색 짧은 러닝셔츠에 눈꺼풀 까지 깊이 까가지고 정말 닮았습니다. 차라리 닮았다는 소리가 안 나올 정도면 운명도 담지 않겠지요. 말 그대로 최 모 배우를 닮아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생각에 매여 한 동안 우울증에 걸렸었다고 솔직하게 말도 합니다. 말수가 많고 엄청 빠른 말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알아듣기 거북했습니다.
“ 그런데 그 남자와 왜 가까워졌나요 ?”
“ 아는 동생이 친하게 지내던 남자 친구였는데, 남편과 트러블이 있어 그 아이 집에 갔다가 그만 그 아이와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말았지요.”
나이차이가 10살이나 납니다.
그럴 겁니다. 남편을 버리는 순간 새로 인연을 만나 것이지요. 텅 빈 애정의 빈자리를 차고 들어서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자꾸만 방도를 재촉을 하는 바람에 전생의 인연을 밝혀 주었습니다.
“ 당신의 정부였던 전생의 남자가 와서 저지르는 일입니다. 그 남자의 혼은 바로 당신의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혼입니다. 새로 남자가 생기게 한 것은 당신이 이 집안의 딸로 태어나서 말썽을 부릴 것을 감지한 탓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태어나자마자 다가오셔서, 계속하여 인생을 감시하기 시작하신 겁니다.”
이 여인의 전생에 만나서 함께 지내던 남자가 바로 자기의 할아버지란 말에 대하여 긍정할 리가 없습니다. 여인은 기독교를 믿는데 기독교 신자들은 절대로 전생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물론 인과응보란 개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생에 할아버지는 일본 여자와 함께 살았는데, 그 여자가 해방 직후에 일본에 돌아가고 할아버지는 새로 아내를 맞아 아이를 낳고 남한에 내려와 다른 여인과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이 여인을 딸로 태어나게 한 것이지요. 삼대에 걸친 일입니다.
여인은 일본에서 죽고 자기애인의 집안의 손녀딸로 태어났으니까, 그것은 자기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 집에서 받고자 했을 겁니다.
이런 말을 들은 여인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태연하고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영혼은 이런 말을 합니다.
“ 저는 절대로 이 여자가 우리 집의 손녀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가 복수라고 봅니다. 제가 여인을 버렸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하게 살아 주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거든요.”
손녀로 태어나자 겁이 났던가 봅니다.
결혼을 아무렇게나 성사시키고 나서, 곧바로 불행한 일을 겪게 만듭니다.
“저는 남편이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요. 옆에 있으면 불쾌한 냄새가 나서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여인은 여러 남자와 바람피우다가 결국 동생 같은 남자와 동거하여 세월이 10년이나 지난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빙의란 무서운 병입니다.
설명을 해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기독교 신자라서 이런 인과응보를 전혀 믿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할아버지 빙의령 조차 이 여인이 다시 행복해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인간의 인연 세계에는 이런 인과응보가 수두룩하게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귀를 틔고 잘 듣고 믿으려고 한다면,
할아버지 영혼을 천도를 하고 벗어날 수가 있지만,
아마도 이 여인은 자기고집을 부리면서 정부의 부인을 만나고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 내 남자인데 왜 니가 10 년 전에 버려놓고는 이제야 찾아가려고 하니 ?”
자기남편은 선뜻 이혼하였으니까, 상대방 남자도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심사를 이해하실까요 ?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 일이 쉬운 일일까요 ?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할아버지 영혼이 제게 말합니다.
“ 제가 살아있을 때도 일본이 전쟁에서 지니까 얼른 자기만 살겠다고 고향으로 도망쳤어요, 그런 버릇이 지금도 이어 지네요,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하더니 정말 그러네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은 그렇게 불행해질 수밖에 없나봅니다. 상대야 불행해지든 말든 상관 없고, 다시 자기자리 찾아가겠다는 동거남마저 괴롭히며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을 그저 불행한 여인의 집착으로만 보기에는 모자란 것 같았습니다.
또한 자기 집안의 불행을 자초할 것을 알고 있던 집요한 할아버지의 집착도 무서운 일입니다. 때때로 인간은 정말 집착으로 똘똘 뭉친 존재인가 봅니다.
2009년 8월 23일 제마 법선사 청강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