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마 일기 “엄마가 망가뜨린 여성 스타의 이야기”
광복절이 지난 어느 해 늦 여름,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자기는 스타의 아버지라고 전화로 말한다.
“ 내 딸 아이가 이상해요. 이름이 누구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내가 가보라고 해도 안 갈지 모르니 이름을 밝히지는 않으렵니다. 특별히 그 아이 눈빛을 좀 유심히 봐주세요.”
이틀 뒤인가 뜻밖에도 그녀가 순순히 아버지 말을 듣고 선글래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도무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고 자꾸만 헛것이 보인다고 한다. 정신과에도 다녀봤지만 낫지 않으며, 최근 들어서는 자다가 보면 누군가 옆에 누어있는 것이 보인다고 한다. 눈 주위에 연보라색 ‘다크 서클’이 생겨있다. 흰자위가 굴러가며 희 번뜩이는 눈빛이 누가 보아도 귀기가 서린 느낌이다.
“ 여북하면 아버지가 저한테 여기 가보라고 했겠어요 ?”
귀신 때문에 건강만 나빠진 게 아니었다.
그래도 내로라하는 스타가 되기까지 무진 애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일정 한계에 이르렀는지 발전이 없다고 한다. 작년 말부터는 스캔들이 끊이지 않더니 어디서도 오라는 소리가 없고 간혹 성인용 애로 영화나 찍자고 섭외가 들어오니 그녀로서는 자존심이 상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 아무튼 스타라고 너무 앞서간 면도 있겠지만 스타가 되기 전에 이런 귀신들을 처리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
“ 하지만요, 저는 몰랐잖아요. 지금 말씀하시는 그런 귀신들이 끌어 들이는 일인 줄 전혀 알 수가 없었잖아요 ?”
말이야 맞는 말이다.
그녀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먼저 귀신이 없어지게 손을 보아야 할 일이다. 스타가 되어 섭외가 들어오지 않게 되어 버린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치욕이다. 아무리 고급 외제차에 허세를 부리고 다녀도 예전처럼 불러주는 프로덕션이 없으니 죽고만 싶다.
빙의령 세 명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 영혼 하나를 불러냈다.
“ 너희 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아이한테 들어와 있느냐 ?”
정말 충격적인 대답이다.
“ 묻긴 뭘 물어봐 ? 대물림이지. 우리는 이 얘 애미 한테 있던 사람들이야. 저 딸 x 출세 시킨다고 우리를 재수가 없다며 벌써 여러 번 쫓아낸다면서 구박했거든.”
자세히 물어 보니 자기들은 본래 이 스타의 어머니에게 들어가 있던 처지였고, 어머니가 젊은 시절에 화류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당시 지저분한 방탕생활을 할 때 빙의하여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감쪽같이 신분을 감추고 결혼하여 딸을 낳아서 훌륭한 스타로 키워 자랑하는 게 영혼들로서는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스타 등급이 올라갈수록 자기들을 구박하고 굿을 해서 내보내려고만 한다며 불평이다.
“ 그럼 당신들을 어떻게 해 줄까요 ?”
“ 우릴 그냥 내버려 두시지 그래 ? 애미란 x이 우리를 우습게 알고 제 딸이 출세했다고 자기도 잘난 줄 알아 미친 x이.”
어머니의 행실에 강하게 반발하고 대든다.
영혼이 저항할 때는 그에 합당한 논리적 해결을 해야 한다. 무조건 제령해서는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며 그렇게 해서는 소용이 없다. 그들 나름의 이유가 분명하므로 거기에 맞는 합당한 처치가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오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이가 이제 쉰 살을 금방 넘긴 것 같았으나 차림이 지나칠 만큼 요란했다.
그 나이에 원형 귀고리까지 하고 있다. 목소리로만 만나 본 스타의 아버지와는 다른 타입인 것 같았다.
“ 아 , 글쎄, 우리 딸아이가요. 무슨 죄가 있다고 모두 누명을 씌우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세상 사람들 참 나빠요. 제 딸이 무슨 죄가 있다고 기자 놈들이 아무렇게나 잡지에 써 대가지고 반병신을 만들었지 뭡니까 ? 이게 아무리 봐도 귀신들이 저지르는 일 같아요. 어떻게든 해주세요. 제가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물론 귀신들 잘못도 있겠지만, 스캔들을 만들었다고 억지주장하며 어째서 딸의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시는지....
“ 어머니 좀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
“ 무엇이든지 물어 보세요. 딸이 낫게 하려면 뭐든지 답을 드려야지요.”
자극을 주면 안 되니까 스타를 옆 방에 보내고 어머니에게 젊은 시절에 화류계에서 일을 한 적이 있냐고 물었다.
본디 사람의 심리란 진실을 말해 줄 때 그 진실이 오래 동안 파묻혀 있던 것일수록 오히려 더욱더 화를 내게 만드는 법이다.
손끝을 파르르 떨면서 아니라고 부정한다. 금새 얼른 일어나더니 딸의 손목과 핸드백을 챙겨 붙들고 쏜살같이 나가버렸다.
공연히 말하면 안 되는 것을 물었는가 보다 싶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더 이상의 소식도 없었다. 빙의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내가 오히려 더 민망할 정도의 일이다.
그러고 나서 1년이 지난 어느 겨울날이다.
중년이 지난 지 오래된 나이의 신사 한 분이 찾아왔다.
“ 나, JiL이 애비 되는 사람입니다.”
그 스타의 부친이 딸의 본명을 밝히며 자초지종을 이어나간다.
참 점잖고 올바른 사람이었다. 조금도 감추지 않고 아내의 과거와 딸의 잘못을 털어 놓으면서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을 한다. 지금은 딸이 거의 인사불성 상태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 사실 저는 아내의 과거를 전부 알면서도 그냥 덮어 두고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과거를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고 지금까지도 숨겼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그런 일을 드러내시니까 아내는 거의 미친 듯이 되레 저에게 대들더군요. 지금 아내는 미국으로 가버리고 병든 딸은 제가 돌보고 있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정말 아버지가 불쌍하다.
“ 걱정 마세요. 제가 이 모든 인과를 바로 잡아 드릴게요.”
이후 사흘 동안 기도하여 영혼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보내드렸다.
참회하지 않는 어머니 대신 스타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기도에 동참했다.
신기하게도 그 마음이 통하였는지 하나 씩 천도가 되었다.
30여 년 전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저지른 어머니의 방탕한 생활이 가져온 인과와, 딸의 음란령 빙의와 이에 따른 착시와 발작증상이라고 하는 무서운 병을 없애고 마침내 고통을 끝냈다.
어머니의 인과는 이렇게 정말 무섭게 자식에게 와 닿는 일도 있다.
2007년 6월 23일 새벽 제마법사 청강 / 김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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