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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일기  "어떤 두 사람의 인연"

1992년 겨울은 참으로 비장한 두 사람의 정계 역사를 마감하는 시절이었다.
시대의 구획을 가르며 한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정계은퇴를 고하였다.   

1970년대초부터 이어져온 두 사람의 인연은 그야말로 정적(政敵) 바로 그것이었다. 서로 대립했다가도 필요할 경우는 서로 협력하기를 수차례 거듭했다.   한 사람은 독재자의 핍박을 받아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경한 혁명가 처럼 일반대중에게 인식되어  제 14대 선거에서는 뉴DJ를 선언하였지만 역시 오랜 세월간의 인식의 벽을 깨지 못한채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와는 반대로 독재의 시대에도 비록 탄압을 받기는 받았지만 그런데로 곱게 자란 이미지를 지킬수 있었던  YS는  많은  사람들의 성원을 받아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고생한 것으로 비교하자면 두 사람은 비교가 안될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한 이미지를 좋아 하는 모양이다. 고생을 많이 한 민주투사를 시대가 더 이상 바라지 않고 오히려 유연한 이미지를 쫓아 가는 것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전생인연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자.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닷가에서 태어 났다는 사실이다. DJ는 목포 앞의 하의도이고 YS의 고향은 거제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같은 시대에 정계에 몸을 담고 야당에서 뼈를 키운 점도 동일하다. 똑 같이 40대 나이에 대통령출마의 꿈을 안고서 당내 경선에 나섰다가 DJ가 후보가 된 일도 있고,80년도에는 민주화의 바람을 탔다가 된서리를 맞은 일도 있다. 이 두 사람은 독재를 향하여서는 공동으로 투쟁하였으나 민주화되는 시점에서는 끝내 하나를 이루기 힘든 정적관계였다. 그래서 87년 대선때는 둘이 함께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오랜 세월간의 애증이 교차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아직도 적일수 밖에 없는 것인지, 당선된 사람이 DJ를 끌어 안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만 아직 그런 흐뭇한 보도가 나오지 않고 있다. 자기의 고향 거제도를  찾기 이전에 YS는 DJ를 먼저 찾아 봤어야 한다. 둘 사이의 인간관계는 물론, 영호남의 진정한 화합을 위해서라면 그리했어야 마땅하다. 어쩌면 그것이 YS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둘 사이의 전생인연을 알고 있는 본인으로서는 이제 두 사람이 화해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두 사람은 섬에서 태어났을까 하는 의문을 먼저 풀어 보자.


하의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의 전라좌수영에 속하는 구역이고, 거제도는 경상우수영에 속하는 구역이다. 임란 초기에 조선의 수군이 강할 때는 거제도 근해에서 원균과 이순신 장군(각자 우수영과 좌수영을 맡아 작전을 지휘하고 있었다)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왜적의 통로를 봉쇄하는데 성공할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이어지고 봉쇄전으로 나가는 시점에서 부산에 집결해 있던 일본의 병참선을 궤멸시켜야 한다는 일본 침략군 수뇌부의 유인 정보에 넘어 간 조선의 조정이 이순신 장군을 내쫓고 원균으로 하여금 작전을 수행하도록 했다가, 완전히 우리의 수군이 역전패 당하는 치욕의 기록이 남게 되었다. 여기서 원균과 이순신의 인간관계가 와전되어 마치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에 빠진 것으로 일반인에게 잘못 인식된 동기가 생겼다. 사실은 원균이 이순신의 전쟁수행능력을 시기한 면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원균 역시 해상전투에서 전사한 것만 보아도 그의 명예가 실추될만한 졸장부였으리라 생각할수 없다. 다만 문제가 된다면 어째서 후세 사람들이  이순신은 원균의 모함에 빠졌다 고 생각하려 했는가이다.  
이순신은 그 당시의 상황으로서 부산포를 공략하여 왜선의 군단을 쳐 없에는데 우리의 선단능력으로 보아 무모한 짓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점과 그냥 그대로 일본의 병참기지를 내버려 두면 안된다는 주장이 대립할 여지가 있었음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공격이냐 아니면 방어냐 하는 현대전략의 개념에서 이순신은 분위기에 넘어간 조정의 우둔한 소치에 희생된 것일 뿐이다. 다만 원균은 공격을 가함으로서 문제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적이 있으므로  공격파 에 속했을 뿐이며, 굳이 이순신을 매도하거나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후세 사람들은 상호 대립되는 작전의 개념이  이순신의 퇴임을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보면 이순신을 해친 것이되었기에 마치 원균이 이순신을 모함한 것으로 보았을 뿐이다.

이순신 장군을 흠모하는 후세의 사람들이 그의 옥살이를 안타까워 하는 나머지 심리적인 공동 적수를 원균으로 삼아서 수백년 동안 그러한 오해가 생겼으리라 추정된다.  그리고 나서 원균이 먼저 전사하고 이순신은 정유재란이 있고나서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아 명량해전에서 전사하는데, 이 두사람의 관계가 어쩌면 현대의 두 정적사이의 관계와 그렇게도  일치하는 면이 많은지 놀랄 정도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원균과 이순신은 서로의 인연이 좋은 편은 못된다.
이순신 장군의 인품은 대단히 꼼꼼하고 작은 일도 철저하게 점검하는 편이었으나 원균은 그렇지 않았다. 좀 호방하고 정치적인 면이 엿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이 두사람을 아는 사람은 아무래도 원균의 행적이 이순신 만큼은 못되는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이순신이 항명죄목을 받아 옥에 갇히자 원균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인연이 왜곡되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
말하자면 이 두 사람사이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이 이상한 라이벌 관계 처럼 주위 사람에게 왜곡된 상태로 와전되었으며, 결과적으로는 원균이 마치 없는 이야기를 꾸며대어 조정을 농락하고 이순신을 모함에 빠뜨렸다는 식의 설화가 구성 되었다.

역사에는 정사가 있으면 야사가 있는 법인데, 정사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이러한 두 사람의 왜곡된 관계가  현대사에서 부활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YS의 성격과 DJ의 성격을 비교해 보면 충무공과 원균의 성격을 비교해 본 결과와 너무나 닮아 있어서 그 유사성에 놀라게 된다.


** 환생의 법칙

1. 반복의 법칙
2. 확산의 법칙
3. 역전의 법칙
4. 동계출생의 법칙
5. 영계 체류의 법칙


1992년 1월경 씀
2007년 3월 9일  전재

cf. 여담 : 물론 시대가 다르기는 했지만 전생의 군인생활이 지겨웠던지 , YS나 DJ나 둘 다 군대에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