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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화  창경로의 유령들

“ 어머니 그때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세요 .”
“ 아니구, 말도 마라. 인민군들이 병실에 누워있는 국군 병사들의 다 끌어 내 갖고 따발총으로 따다다닥 쏴 죽이는걸 내가 봤다.”

창경궁 길 건너편에 서울대 병원이 있다. 영안실 뒤뜰에 지금 위령탑이 서있다.
어머니는 그 때의 일을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증언해 주신다. 마치 살아 계셨을 때처럼.
“ 시체들이 넘어지는 걸 길 가던 사람들도 다 봤다. 어둡사리(땅거미)가 어둑어둑 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나니까 길 가던 사람들이 휘딱 피했다가 길 건너를 보니까 언덕에서 그짓을 하고 있는 기라--- 마침 비가 부슬부슬 오고, 마, 그 뒤로는 그 길로 지나갈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서 무섭어서 떤다.”

1950년 6월 29일 오후 7시경 어두워질 무렵의 창경로 모습이다.
인민군들은 미처 퇴각하지 못하고 병실에 누워있던 국군 병사들을 뒷마당에 끌어내 놓고 200명 가량을 총살시켰다. 그들은 포로 대우는커녕 귀챦은 존재로 즉결처분했던 것이다.

전쟁은 그처럼 잔혹하고 야비한 면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병원 영안실이 현대식으로 지어졌고 그다지 무섭지 않게 느껴질지 모르나 여전히 유령들은 그 곳을 헤매고 있다.

“ 우리는 천상으로 갈 수 없습니다. 아직도 이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 날의 마음에 입은 상처가 너무나 큽니다.  중상으로 쓰러진 우리를 굳이 죽여야 할 까닭이 뭔지 알고싶습니다 .”
궁금한 일이다. 전쟁에서 이유없는 죽음이 없지만 이렇게 무자비한 살육은 드물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병사들을 끌어내서 죽이다니.

까닭을 알아보고 싶었다. 당시의 점령군 총사령관이었던 남 장군을 불러 물었다.
“ 아 ,기건 좀 잘못된 일이야요. 난 그런 명령을 내린 일이 업시오. 병원을 접수하라고 햇지 포로들을 죽이라고까지 하진 않아시오. 우리가 그때 해방군인데 그렇게 무자비하게 해서 얻을 께 뭐가 있갓시오 ?”

남 장군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사후 보고만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대량 살육을 저질렀을까 ?
창경로는 그들이 후퇴할 때 죽은 시신들로 가득했던 길이기도 하다. 길건너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에 지켜서서  인민군들의 혼령을 불러 본다.
“ 우린 명령을 받은대로 한 것 뿐이오.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들 살려두면 뭐 하오 ? 차라리 죽는게 낫지. 우리도 석달 뒤에 이 앞에서 죽었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병원을 점령했던 인민군들 역시 9월 29일 퇴각시에 거의 다 전멸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창경로는 지금도 그 때 죽은 영혼들이 서로 뒤엉켜서 소리를 낸다.

특히 비 오는 날,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

2004년  8월  11일  대영계 영산/ 장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