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갯마루가 시작되는 곳에 장사의 운기가 모인다.
물이 흐르다가 일단 고이는 자리와 사람이 모이는 자리는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인간의 육신은 대부분이 물로 구성되어 있어서인지 모르나, 물이 고이는 자리에 사람도 몰려든다.
이 원칙을 알아야 소위 말하는 '목'이 좋은 자리를 제대로 고를 수 있다.
한편 옛부터 장사하기에 좋은 자리를 물이 좋은 동네라든가 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물은 돈을 상징하며 재물을 나타낸다.
이는 아마도 물(物)이란 말이 물(水)과 발음상 같은데서 연유한 것으로 본다.
더구나 농경을 위주로 살아 온 우리 민족은 농사를 지을 때의 물꼬가 대단한 이권으로 작용했으며, 나중에 장사를 하는데서도 그런 영향을 준 것으로도 생각된다.
그리고 고갯마루가 시작되는 곳은 장사하기에 좋은 목이라고들 말한다.
이는 심리적으로 고개에 오르기전 물건을 사려는 인간의 욕구를 드러내는 데서 그 일차적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목'이란 [대목] [길목]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듯이 어떤 생명력과 연관된 말이다.
사람의 '목'이 끊어지면 살지 못함과 마찬가지로 '목'이 나쁘면 사업의 생명도 길지 못하다.
경사진 길이 시작되는 길목은 아주 중요한 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목'이란 [내몫] 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어떤 이익이 일정하게 분배된 양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일을 하여 자기에게 주어지는 이익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도 '목'이 좋으냐 나쁘냐에서 결정된다고 하겠다.
언덕거리의 목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의 예에서 잘 나타난다.
남산의 용맥이 끝나는 지점이라 할 남대문 자리의 시내쪽에 자리한 남대문시장은 퇴계로의 길이 중앙우체국에서 남대문으로 이어지는 길보다 약 7미터 정도 더 높다. 7미터라면 3층 정도의 빌딩 높이이다.
그러므로 남대문시장은 바로 언덕바지에 자리잡은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동대문시장은 청계천을 끼고 있어서 그런 표고의 차이는 없지만 서울의 동쪽 청룡맥이라 할 낙산이 감싸 주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이조 말에는 시장거리가 성문 안쪽으로 형성되지 않고 문밖에 형성되어 숭인동쪽에 가까웠고, 영미다리께(청계천 7가에 해당)의 시장이 훨씬더 거래량이 많았으며 지금의 중앙시장이 그 발전된 흔적으로 남아 있다.
동묘를 기준으로 보면 앞쪽의 너른 들판이 곡물을 위주로 다루는 송파나루와 광나루의 상권과 연결된 시장터이다.
이 곳 역시 낙산의 오른쪽 줄기와 맞대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물론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이 도성 출입이 용이한 성문(城門) 가까이에 형성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허허벌판에는 이상하게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며 산을 뒷 배경에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산자락의 신비한 힘을 느끼게 해준다.
그곳 뿐 아니라 미아리의 길음시장, 봉천동의 봉천시장 등 1950년대 이후에 형성된 시장들을 보아도 언덕바지로 이어지는 길목에 모든 시장이 서 있다.
이 점은 역시 사람을 끌어 물건을 매매하게 하는 자리가 공통적인 요소를 안고 있음을 보여 준다.
본래 언덕이 시작되는 자리는 음택론에서 사람이 사는 자리에서 죽은 자들의 자리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인식하여 곡물을 기르는 밭이나 임야로 육성했던 곳이다.
그러다가 도시화로 인하여 주거용의 양택이 들어서기 시작하자,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선이 이상하게도 시장이나 상가(商街)라는 완충지대로 변모하여 새로운 경계선을 이루게 되었다.
이는 사람이 가지는 무의식적인 경계선의식 다시 말해서 인식론적(認識論的)인 토지 활용의 체계가 작용한 것으로 본다.
산이나 강이나 언덕은 이미 존재하면서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론적(存在論的)인 요인이지만, 상가나 주거지역의 설정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인식체계의 합리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굳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