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쪽은 곤(坤)방이라고 해서 음기를 가진 방위로 친다.
서울의 종로를 1가에서부터 6가에 이르기 까지 서남쪽 코너만 추려서 훑어보면 매우 흥미 있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를 살펴보자.
종로 1가(세종로 네거리)의 서남쪽 코너는 85년경까지 국제 극장이 있었다. 지금은 은행빌딩이 들어섰으나 본래 그 자리는 조선 시대에 유명한 대감집이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평양 근처에서 억대 부자가 된 백할머니의 집터였고, 이후 해방이 되고나서 모두 헐어 버리고 거기에 극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주 터가 센 자리로서, 조선 시대의 빈잣골의 흐름이 그대로 내력으로 남아 있는 동네이다.
현재 조선일보사와 시의회 자리로 넘어 가는 황토마루라고 하는 언덕이 있고 육조거리(세종로)에서 그리로 가려면 진창길을 거쳐야 했다. 말하자면 그 곳은 태종 이래로 도심의 뒷골목에 해당되는 자리이다. 그 연유는 정동(貞洞)이라는 이름에도 나타나 있듯이, 이성계의 첩이 묻혀 있는 무덤이 있는 음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현재의 정릉으로 천장을 하기는 했지만 늘 이성계가 가까이 하고 싶어했던 여자의 무덤이 있던 곳이라 아무래도 겁나는 자리였음이다. 그곳은 현재 성공회와 영국대사관이 들어서 있으며, 옛날 국회의사당이며 현재의 시의회 자리는 그녀를 추모하는 절이 있던 곳이라 한다.
아무튼 세종로 네거리의 서남쪽은 어쩐지 짜임새가 없는 거리로서 불안정한 모습을 지금도 보여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종로 2가 보신각 네거리의 서남쪽 코너에는 파출소가 있다. (파출소는 그 동네에서 가장 살기가 강한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그 곳은 지하철 입구와 바싹 다가붙어서 볼품이 없다.
예전에는 그 코너에 거의 혼수감을 마련하는 주단집이 모여 있었다. 1915년 경 보신각 네거리가 나기 전에는 육의전 가운데 포목을 주로 취급하는 점포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던 거리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광교 쪽 길목으로 오래된 양복점들이 지금도 여러 군데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북동을 바라보는 자리라서 그런지 건너편에 들어선 제일은행 건물이나 새로 짓고 있는 화신백화점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불균형을 보이는 코너이다.
종로 3가의 서남쪽 코너에는 은행건물이 있으며, 그 뒤로 극장이 셋이나 복합적으로 모여 있는 건물이 있다.
이렇다 할 특징은 없으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주는 길목이다. 청계천 공구상으로 빠지는 관수동 길이 어지럽게 연결되는 까닭에 정리가 안된 상태로 남아 있다.
종로 4가의 서남쪽 코너에는 역시 은행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그 뒤로 함흥냉면 집이 들어서 있고, 속칭 시계골목이라고 부른다. 거기는 중고시계를 늘어놓고 파는 노점상이 많다.
동대문시장과 인접해서 시장 냄새를 풍기지만 이곳 역시 어둡고 왠지 침울한 분위기가 있다.
종로 5가는 네거리 전체가 붐비는 활기를 띄고 있다.
특히 동남쪽의 코너는 플라스틱 시장으로 연결되어 사람들의 왕래도 활발하고 서울 북부지역으로 연결되는 도로망의 중심이다.
하지만 여기도 역시 서남쪽 코너는 파출소가 서 있고, 그 옆으로 은행과 시장 입구가 자리한다.
종로의 네거리들만 보더라도 서남쪽은 어쩐지 생기가 없고 고층건물이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태양광선을 전혀 받지 못하는 각진 부위이고, 간방(艮方), 귀문(鬼門)에서 불어오는 살풍을 받는다.
그러므로 서남쪽 코너에 자리를 잡으려 할 경우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 곳은 겨울에 매우 찬바람이 불며, 얼음이 얼면 잘 녹지 않는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