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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이름 게시판
"역사 미스터리"

주몽과 몽촌토성의 상관성

MBC역사 드라마 '주몽'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원폭실험을 하는 날에도 방송을 내보내서 정신 없는 짓을 한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주몽은 그 이름의 유래가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지만, 정말 희한하게도 서울 송파구에는 '몽촌토성'이란 사적문화재가 남아 있으며 그 이름에도 꿈 夢자가 들어간다.
그래서 어쩐 연유로 이러한 일치현상이 생기는가를 검토해 보았다. 더구나 몽촌토성은 고구려 건국초기에 남하한 세력이 초기 백제를 건국한 자리이기 때문에 주몽과도 관련된 것일지 모른다는 추정하에 알아 보았다.
김 삿갓으로 알려져 있는 김립 선생님은 이점에 대하여 몽촌토성에서 상세한 가르침을 주셨다.
몇달전 주몽은 그 이름이 주먹(주묵)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자료를 낸 일이 있다. 그런데 학자들은 그 이름이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자로 표기된 주몽은 朱夢(붉을 주 + 꿈 몽)으로서 붉은 색의 꿈이다.
그 시대에 붉은 색을 선호하는 공산주의가 있을 턱이 없고 보면, 이는 붉은 꿈이라고 해석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하여도 공리가 주연한 중국 영화 <붉은 수수밭>은 있어도, 붉은 꿈은 의미가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꿈이라는 발음이 100년 전에는 어떤 발음을 가졌을까를 살펴보자.
꿈은 <굼>이었다. 경음화 현상이 생기기 전이던 조선조에도 꿈은 꿈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주몽은 순 한글식 표기법으로 풀어 보면 <붉 굼>이 된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즘 우리가 말하는 < 불곰>과 연관된다.  재미난 것은 불곰 같은 남자라는 뜻으로 보면 주몽의 이름이 그대로 해석이 가능하다.
한자어 주몽을 한글로 어원을 추적하면 불곰이 튀어 나온다. 곰은 익히 알다시피 우리의 민족 신이다.

한자 표기: 주몽(붉은 꿈) > 불굼 > 붉굼 > 붉은 굼
(주: 굼/Kum은 곰(熊)으로 언어학자들의 이론 없이, 알타이어의 곰이다.
일본어에서는  くま(Kuma)가 되고 현대어 우리말에서는 Kom이 되었다.)

주몽이라는 이름이 만일 곰을 잘 잡는 사냥꾼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면, 본래 그의 이름을 불곰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야기를 돌려서 이번에는 몽촌토성으로 가보자.
올림픽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송파구 풍납동 몽촌토성은 몽촌(夢村)이라고 하는 옛날 동네이름에서 유래한다. 그 이름의 뿌리는 역시 거기 있던 <꿈 마을>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꿈 마을은 본시 <곰 마을>인 것이다. 백제 계 사람들은 곰을 숭상하는 알타이계의 신앙심을 오래 동안 유지해왔음이 드러난다.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公州)도 본래 이름의 근원은 곰+주이며 조선시대 까지 웅진으로 불렸으며 거기에 곰나루(雄津)도 있다.  5세기말 경 (BC 475년)몽촌토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이름은 그대로 가져간 셈이다.

몽촌 > 꿈마을 > 굼(곰) 마을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닌가 ?
이렇게 두 번씩이나 곰이 꿈으로 변하고 한자어인 꿈 夢으로 바뀌다니.
몽촌토성은 주몽의 아들 온조와 비류가 어머니 소서노(小西奴)와 함께 夫餘에서 천도해 와가지고 새 나라의 꿈을 찾아서 처음 만든 마을이므로 할아버지의 이름과 연관 된 지명으로 짓는 것이 당연하지 않았을까 ?
이후에 비류는 제물포 쪽으로 갔다가  나라가 망하자 그 세력은 아마도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10월 18일  제마  金笠선생 / 김세환

참고 : 위 자료는 김립 선생님과 영적으로 상의하여 쓴 글입니다.
김립 선생님 말씀으로는 <꿍꿍이 속>이란 말도 꿍꿍 앓는다는 뜻이 아니고 ,<굼굼이 속>이란 옛말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굼굼이란 마음 속에 꾸밈이 많고 사고방식이 몽상적이며 곰 처럼 의뭉스럽다는 뜻이라 하십니다.
굼이라고 하는 말은 생각과 마음의 본능적인 꾸밈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역시  이치가 맞는 것 같습니다.
관련된 말로는 세밀하게 생각하는 모습의 <곰곰히 >라는 말이 있습니다.



<추기>

주몽의 역마살은 이상하게도 피를 이어받은 비류와 온조형제에게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주몽이 고조선의 후손인 하백족의 자손으로 옛땅을 되찾고자 애쓰다가 한나라에 빌붙어 살아가던 부여를 회생시켜 고구려를 세우지만, 형제 싸움에서 밀려 난 그들은 한강가로 와서 다시 새나라의 건국(백제)을 꿈꾸다가, 다시금 두 형제가 동쪽과 서쪽으로  헤어지는 슬픔을 맛봅니다. 결국 비류는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을 지배하는 민족신이 됩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볼 때,서쪽 김포에도 신도시 개발설로 유명해진 검단지구가 있고 동쪽 하남시에도 검단(곰탱이)산이 있지요. 그 산들은 민족신을 모시던 사당이 있던 자리입니다. 민족의 역사와 영적 유전은 무섭게도 이어져 나갑니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역사의 반복 속에서 다시금 하나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2006.10.20.  장선생/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