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주술] “재래식 된장이 숙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구더기의 역할”
“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라는 속담을 아시지요.
사실은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글 일도 없을 뿐 아니라, 우리의 할머니들은 구더기를 생활의 지혜로운 도우미로 여기며 내버려두었던 것입니다.
구더기는 된장이 장마철에 습기로 가득하여 숙성되기 어려운 시기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속의 습한 기운을 빨아 들여 기화시키는 기능을 발휘해줍니다. 그리고 운동을 함으로서 윗부분에 미세한 통풍구멍을 만들어 부패를 막아 주고, 자신의 배설물을 통하여 숙성직전의 된장이 지니고 있는 독성을 완화하며 숙성속도를 조정하는 일종의 방부 항산화 작용으로 인하여 된장 맛을 살려 주게 됩니다.
이는 오랜 옛날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된장에서 구더기를 함부로 떠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까닭중 하나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것은 구더기가 된장 맨 윗부분에 서식하면서 안쪽으로는 파고들지 않고, 계속해서 적정 습도를 유지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점입니다. 구더기의 배설물은 유화작용을 합니다. 오히려 고마워해야지요.
<반론>; 시체를 파먹는 파리의 애벌레가 구더기인데, 어찌 그런 징그러운 말씀을 하세요 ?
그런데 된장에 쉬를 스는(알을 낳는) 파리 종류와 동물시체나 분뇨에 쉬를 스는 파리의 종류가 서로 다른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
된장에 사는 파리는 아주 몸집이 작은 놈들이고 색이 까만색을 띄고 있으며 죽은 동물이나 분뇨통에 서식하기 좋아하는 등치가 큰 회색 잔등의 파리나 녹색 등 파리와는 완전히 종류가 다릅니다.
이번 여름에 시골 장독대가 있는 집에 가시거든 유심히 잘 관찰해 보세요. 그들이 어쩌면 재래식 된장 맛을 좌우하였는지도 모르지요.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된장과는 비교도 안 되거든요. 아마 그래서 재래식의 오래전 구수한 그 된장 맛이 사라졌는지도 모르지요. 요즘은 장독 입에다가 망을 씌워서 파리의 출입을 원천봉쇄하였으니까요.
이런 자연의 법칙을 지혜롭게 활용해 보아도 나쁘지마는 않을 것입니다. 주술이라고 하는 특이한 기술도 따지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신이라기보다는 금방 터득하기 어려운 선조들의 지혜가 숨어 있는 초자연적인 슬기의 산물입니다.
2007년 12월 30일 제마선사 청강 / 김 세환
<참조> 주술 #66 / 신비한 힘의 공생
풍수 #88 / 장맛이 변하면...
구더기가 첨단 의학에 쓰인다구!?
2008년 1월 17일
[한겨레] TV 사극을 보면 원수에게 모멸감을 나타낼 때 종종 ‘이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재미있게 영어에도 ‘You maggot!’(구더기 같은 놈)이라는 표현이 있다. 둘 다 벌레를 들어 경멸감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실 개나 돼지를 빗댄 것보다 더한 욕일지도 모른다. 벌레는 주로 곤충의 유충을 가리키는데, 진화학적으로 곤충은 개나 돼지 같은 포유류보다 원시적인 형태이다. 또 발생학적으로 유충은 알의 다음 단계로 아직 성충에 한참 모자라다. 이래저래 벌레란 하찮고 쓸모없는 것들을 총칭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의식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애용했던(?) 욕 하나를 잃을 지도 모른다. 항생제 투여, 인체 내 화학 물질의 조절, 물리적인 수술 같은 현대 의학에서 이 벌레들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벌레들이 오해를 벗고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용되는지 알아보자.
지저분한 벌레의 대명사는 뭐니뭐니해도 구더기다. 구더기는 파리의 유충이다. 파리는 주로 부패한 유기물 같은 불결한 환경을 좋아하며 질병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그 유충인 구더기 역시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전환하면 이는 구더기가 부패하거나 괴사한 유기조직을 선별해 자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더기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거나 괴사 조직을 제거하는 치료가 당당히 현대 의학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물론 모든 구더기가 의료에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안전하고 치료 효과가 있다고 인정된 구더기들은 학명으로 페니시아 세리카다(Phaenicia sericata), 포미아 레지나(Phormia regina), 루실리아 일루스트리스(Lucilia illustris)라고 불리는 파리의 유충이다. 이들은 괴사 조직을 선별해 알을 낳는 특성이 있다.
이들 구더기를 괴사하고 있는 환부에 놓으면 구더기는 괴사 조직을 식량으로 먹으며 자란다. 흔히 우리가 벌레를 상상하는 것처럼 뜯어먹는 것이 아니라 특정 펩타이드를 분비해 괴사 조직을 녹인 다음 이를 흡수한다. 구더기를 쓰면 정상 조직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 괴사 조직만 제거할 수 있다. 손상 조직을 직접 긁어내는 일반 외과시술에 비해 고통이 없고, 거의 완벽하게 괴사 조직을 제거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더기는 손상된 조직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감염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이들 구더기가 유해한 세균까지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구더기는 본래 세균이 들끓는 곳에 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이런 능력을 갖게 됐다. 괴사 조직을 없애면서 감염까지 예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제 구더기가 아닌 벌레, 기생충의 활용에 대해서 살펴보자. 미국 아이오와대의 데이빗 엘리어트 교수팀은 기생충을 각종 질환에 사용하는 기생충요법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한 예가 대장염 치료에 돼지 편충을 사용하는 것이다. 피실험군을 둘로 나눠 한 쪽에는 대장에 돼지 편충의 알을 투여하고 대조군에는 위약을 투여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편충 알을 투여한 실험군의 대장염이 대조군에 비해 높은 비율로 치료 효과를 냈다.
대부분 사람의 장 속에는 일정한 수의 편충이 살고 있다. 이들은 신체가 대장염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도록 돕기 때문에 편충의 수가 지나치게 줄면 질병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같은 기능을 하는 돼지의 편충을 인위적으로 넣으면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편충이 없어 생긴 대장염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엘리어트 교수팀은 그 밖에도 특정 벌레를 이용해 인체의 면역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재순환 시키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목적은 알레르기의 치료다. 알레르기는 간단히 말해 면역 기관의 오작동으로 유해하지 않은 물질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엘리어트 교수팀은 벌레를 이용해 면역계를 활성화시키면 알레르기가 발생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피를 빠는 거머리를 이용한 치료는 민간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정식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은 2004년 6월 처음으로 거머리의 의료적 사용을 허가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머리를 의료 기구라고 승인했다. 원리는 간단하다. 혈액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한 때 거머리의 흡혈 능력을 이용해 다시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가장 흔한 활용 예는 손가락이 절단돼 접합한 경우다. 미세 수술을 통해 동맥은 이을 수 있지만 정맥은 힘들다. 이럴 경우 피가 제대로 흐르지 않아 퉁퉁 붓고, 곪게 된다. 이 부위에 거머리를 붙여 피를 빨게 하면 고인 피를 뽑아낼 수 있고, 강제적으로 혈액을 순환시켜 재생을 가속시킬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벌레 치료법을 모아서 생물요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생물요법은 살아있는 생물을 치료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대의학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병들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요법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요법을 맹신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생물이 치료의 도구로 등장해 ‘귀하신 몸’으로 등극할지 궁금해진다. (글 : 김창규 과학칼럼니스트)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