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동자와 문둥이는 그 뿌리가 같은 말이다.
듣기에도 민망한 나병환자를 가리키는 문둥이와 문수동자의 어원이 같다면 여러분은 놀라 자빠질 것이다. 피부가 썩어 문들어지니까 '문들어지다'에서 문둥병이 나온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후세에 유사음운 동화 현상으로 문둥이가 되었을 뿐 본래는 문동이가 정확한 어휘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경상도에 가면 늙은이들이 "아이구 이 문둥아 --" 하고 친한 친구를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 말이 '문동(文童)이'에서 유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문동이는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가 ?
학자들은 문동이가 글공부를 같이 한 동무라는 뜻에서 문(文:글공부)과 동(童:아이)이 합성하여 생긴 말로 보는데 이는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게 아니고 불교에서 문수보살의 화신이며 민간신앙의 대상이라고 할 문수동자(文秀童子)에서 유래했다. 문수동자를 줄여서 문동이라고 하였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나병과의 관계이다.
1440년경 세조가 단종 세력을 숙청하고 권력을 잡자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괴상한 피부병에 걸렸다. 꿈에 피해자들이 나타나며 저주를 퍼 붇는데 피부가 원인불명으로 썩어 들어가는 병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지루성의 악성 종양이거나 나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이다. 그래서 세조는 산천이 좋은 절을 찾아 나서서 그 병을 고치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 마침 오대산에 가서 영험을 본다. 문수동자가 계곡에서 목욕하고 있는 세조옆에 나타나서 병을 고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수동자인지를 모르는 임금이 말하기를,
" 임금의 등을 밀어 줬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얘야--"하자,
아이로 화신한 문수동자가,
" 문수동자가 등을 밀어 줬다는 말을 하지 마세요"하고 놀렸다 한다.
그리고 피부병이 나았는데, 이후에 사육신을 처단하는 바람에 또 다시 재발을 하였으며, 그 병이 죽을 때까지 이어졌음은 이미 왕조실록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자--- 그러면 문수동자의 약어라고 할 문동과 문둥병은 어떤 상관성을 가지는가 ? 도무지 이는 말도 안되는 견강부회의 이론일까 ? 그게 아니다. 잘 생각해 보면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
어느 날 나병환자가 마을에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럴 때 사람들은 겁을 먹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곧장 그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서는 무슨 방도를 구한다. 옛날에는 방비에 해당하는 주문을 외우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세조의 병을 고쳐준 문수동자였을 것이다. 그러던 중 누군가 이렇게 하자고 외친다.
"문동아 ! 문동아 ! (문수동자야!)"
그 명호를 부르면 나병환자들이 물러가고 병마가 퍼지지 않을 것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비의 말이 퍼지고 퍼져서 거꾸로 환자를 부를 때 문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고 나중에 음운변화가 일어나 문둥이로 어휘가 확정된 것이다. 그런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까닭은 영남방면에서만 유독 문둥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였다는 점이다. 이는 나병환자가 그 쪽에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언어의 확정이 빨리 이뤄졌기 때문인 것이다.
나병의 병마를 물리치는 주문이 오히려 그 병을 앓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와전되는 기이한 도치현상이 일어나서 오늘날에도 나병환자를 문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문수동자는 문동이로 줄여서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고 나병환자를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는 점이다. 재미있는 우리말의 세계에서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의미들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