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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공부]  “공계와 신계는 같은 것입니다”






神을 믿는 사람은 佛家의 空 사상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한편 불가의 스님들도 神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



신은 믿음의 대상이고

공 사상은 깨우침의 과정과 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잘 살펴보면

신을 모르는 이들은 공을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신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 역시 공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 하면 神은 空의 實體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설명해 드립니다.



공은 빈 것도 아니고 채워진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實在하는 것처럼 보여도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存在와 無를  놓고서 평가해 보면

있다고 하면 금방 사라지고

마치 實存主義者들이 주장한 것처럼 말입니다.

오로지 내가 존재함으로서 모든 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느낄 뿐입니다.



神도 그렇지 않습니까 ?

내가 존재함으로서 느껴지는 존재이며

내가 사라지고 나면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존재,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면

신도 사라져 없는 것인가요 ?



역시 어딘가 존재하고 계시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공의 실체 같은 개념에는 관심조차 없으며

오로지 모습을 보여 줄지도 모를 신에 대하여 외경심(畏敬心 :두려움과 존경심)을 지닙니다.

물론 제 마음대로 신을 만들어 내지요.

만들어진 신을 가리켜 허신(虛神)이라고 합니다.

만들어진 공을 가리켜 허공(虛空)이라고 합니다.

허신은 허공 속에서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가 믿고 따르고자 하는 신들은 대체로 허신들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허신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하나님/천신이라고 불리우는 존재입니다.







선가(禪家)의 깨달은 스님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하십니다.



" 신이라고 하는 건 자기가 만드는 하나의 환상이야...  마음이 텅 비어 허전하면 뭔가 의지하고 싶어지거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뭔가 위대한 힘의 앞에 엎드려 빌고 거기서 참회하고 참다운 자기를 발견하리라 생각하는  나머지 스스로 자기의 신을 만들어 버리지. 보살이라든가 부처라든가 뭐든 좋아. 그러다가 보면 마음이 착 가라앉지.

이런 걸 가리켜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존재이므로 자기를 입증하기 위하여

뭔가 내세워 그 뒤에 안정하려는 자세를 말하지... 우리는 그 걸 믿음(信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말이야....

아이가 어미를 부둥켜안고 타인을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그런 자세와 닮았어요. 따라서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의 신만 받들어 모시기 쉽지요. 바보처럼... 모두가 허상인 것을."



실체가 없는 신을 마음이 허하기 때문에 만들어 그 속에서 안주하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알고 보면 신앙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걸 체계화시킨 종교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속임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일까요 , 진실일까요 ? 아닙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신을 진실로 알고 계시는 분들은 마음의 안정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그 존재에 부복하여 매달리지 않습니다.

아주 단순한 이유로 신에게 절하고 기도합니다.



" 저는 저절로 당신을 믿습니다."

" 오로지 당신을 믿는 이유는 당신이 바로 나의 본래 모습이며 또한 다음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선가는 인도에서 이룩된 개념이 아닙니다.

참선은 요가 중에서 그저 앉아서 묵묵부답으로 자기관조를 명하는 수행법이니까

이 방식은 중국에 도입되어 자기를 발견하는 쪽으로 집중되고 자기의 신성이라고 불릴만한 불성을 참구하는 일로서 빛을 발합니다.

달마라고 하는 기이한 선승이 수나라에 이민했다가 중국의 수문제로부터 추방을 당하기까지 30 여 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중국적인 방식의 수행법인 " 인간을 통한 신성의 발견법"을 가장 그럴듯하게 퍼뜨립니다.

그런데 왜 중국에서는 신성 발견의 방식을 인간에게서 찾으려 했을까요 ?

간단히 말해서 중국 아이들은 신을 지향하는 종교 신앙 같은 것에 별반 미치고 빠져들지 못하는 이상한 기질을 타고 났거든요.  그야말로 그들은  인간 중심입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접근하면 가치가 떨어지니까,  오랜 세월 이러니 저리니 쇳덩어리 달궈 가듯이 사람을 영적으로 짓이겨 가지고 자기가 별 것이 아니라, 세상에 던져진 하나의 올챙이로부터 시작하여, 드디어 부처님 같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신성(神性)의 자기실현( coming out of the God's spirits)"을  이룩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달마가 오셨다면 무척이나 달라졌을 겁니다.

공을 추구하는 참선(參禪)을 통해서 완전히 미쳐버린 인간의 불성 찾기가 바로 그것인데, 중국에서는 도인이 그러하듯이 불가에서 엄청 인기를 끌고 약 천년 동안 전통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게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 중국인들은  선가수행법을 버리고, 도가에 심취합니다. 그게 오늘의 도교이며  그 종교의 시조는 아시다시피 노자(老子: 중국도교의 창시자)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불교는 한국에서 현재 조계종이 주종을 이뤄서 선가의 힘이 탄력을 받았으니까, 선승들이 많이 탄생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되지 못할까요 ?

그 이유는 아주 단순명료합니다.

우리나라는 신명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실 겁니다. 우리가 신바람의 나라라고도 부른다는 사실을....
뭘 해도 신이 나야 잘 한다는 것을....

이렇게 신명이라고 하는 범주에서, 잘 아시다시피 신을 받거나 안 받거나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아주 미신의 맹주라 부르는 무당에 가까운 사고방식에 깊이 천착되어 그 범위 안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옛날,
조선의 선사들이 가장 우려한 일은 참선하다가 신이 들리는 일이었습니다.

신이 들리면 사마장이라고 하여 선공부하는 데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참선을 하려면 대신심 대의심 대분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마음자세가 흐트러지고 마치 자신이 이미 그 길의 정상에 선 듯한 광경을 맛보며 아무 거칠 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자유자재(?)의 즐거움을 맛보는가 하면 때로는 자기의 가장 허무한 모습으로 침착하여 그야 말로 비참한 정신적 방황을 겪게 됩니다.

물론 마장인 셈이지요.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정말 굿을 해도 낫지 않는 기발난 신통력이 발생되어 먼 곳의 손님이 다가옴을 예지한다든가 하는 신통한 능력이 생겨서 모든 공부가 다 끝났다고 외칩니다.  공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기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대체로 뇌기능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이 다가오는 현상이 사실은 참선 공부를 다 마치고 진정으로 깨우침을 얻으시는 득도과정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을 일고 계시지요 ?

그 증거가 바로 오도가(悟道歌)입니다.

거의 모든 스님들이 법열의 기쁨을 춤과 노래로서 증명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도가>라는 노래가  과연 신명이 없다면 가능한 일일까요 ?

신이 들려 고생하다가 깨우침의 순간에는 다시 무당처럼 신명의 노래를 한다 ? 이런 기이한 일이 어디 있나요....
바로 그것이 그분들의 신입니다.
자기신명이란 곧 그분들의 신을 말하여 자성을 찾고 깨우침을 얻는다는 것은 무당이 신을 받는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일입니다.

앞에 온 신은 허신이고 나중에 온 신은 참신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참 무당이나 선 공부하던 스님이나 모두 실제로는 신을 받는 것입니다.

아니 신을 받는다기 보다는 신과의 교류가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면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스님들은 스님들대로 제 스스로 참선하여 깨친다고 말하고, 무당은  제 신어미나 신 선생(?)으로부터 신을 받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요 ? 공부도 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스스로 깨치고 자기들끼리 스스로 신을 내려주고 또 누군가가 신을 받는다 합니다....  이런 것은 정말 아닌 것입니다.



신을 받았다는 무당 중에서도 옳은 무당이라면 자기가 신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신이 자기에게 온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일부가 신이라고는 더욱 더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수학에서 공집합과 합집합이라고 하는 공유영역의 개념이 있으며, 서로 일치하는 부분과 서로 합하여 하나로 확장하는 부분과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고유영역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시면 이런 어려움이 쉽고 빠르게 해결됩니다.

모든 무당 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저는 신께서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지요" 한다면 정상적인 분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바로 신입니다 또는 때때로 제가 신입니다"한다면 이는 미친 무당입니다. 신의 영역을 넘나드는 사람이 곧 무당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 무당은 가짜가 되는 겁니다. 그럼 무당이란 무엇인가 하면 신과 인간의 사이에 서서 둘 사이를 잘 엮어 주시는 중개인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더러 몸에 실려서 신처럼 말도 하고 신처럼 신령력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스스로 무당이 아니라 신이라고 반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행동을 하다면 , 그 신이 미친 허신이거나 아니면 무당 자신이 과대망상증에 걸린 것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무당이나 스님이나 두 가지 어느 쪽이든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뭔가 하면 기도하는 일입니다.  선승들도 기도를 합니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가 좀 의심을 가져봐야 합니다.  



첫 부분에서 말씀드린 공과 신이라는 두 가지 명제가 여기 다시 등장합니다.

스님은 공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선가수행으로 들이밀고 머리가 깨지더라도 자기는 수승한 선사되기 위하여 깨우침을 얻으려 애씁니다.  그 일도 말은 다르지만 일종의 기도행위입니다. 무당은 신을 대상으로 어떤 공력(원력)을 얻으려고 엄청난 공(功)을 드리며  팔도에 안 가본 기도처,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다니며 산기도, 물기도, 암굴기도 등으로 정성을 기울이며  우리가 말하는 신령님으로 부터 오는 신통한 능력을 얻으려 분주하게 돌아다닙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스님도 무당도 모두가 그것을 원합니다. 깨우침이나 신통이나 그게 그것인데 서로  개념적으로 다른 영역에 머물다 보니까 다른 것인 줄로 압니다.   어쩌면 한마디로 바보짓인 셈입니다.

자기가 空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선수행을 하면서 10 년이 지나서도 소질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줄을 잘 못 섰는지는 모르나 안타깝게도  스승의 법력을 전수받지 못하고 대를 이어나가지 못한 사람이 나중에 들어온 사람에게 미운 마음을 가진 나머지 그를 죽이려고 말을 달려 뒤를 쫓았다는 옛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그 사람은 아마 공부하면 때가 되어 꼭 자기가 깨우침을 얻어서 스승의 위대한 법력을 그대로 전수받을 줄 알았는데 배신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였던가 봅니다.    그런데 그 空이라는 놈이 자기를 비껴갈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  부엌대기로 들어온 녀석이 어느 날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수 받아 그만 수제자가 되고야 마는데요.  아마 그 이야기는 여러번 들어 아실 줄 압니다만, 육조 慧能스님의 이야기인데.... 그 무슨 法이 뭔가 하면 바로 神입니다.  아니 法이 어찌 神인가 하고 엉뚱하다고 말하실 분이 계실 줄로 알지만 그게 그거 아닙니까 ?  신이 아니라면 아무리 상징이라고는 하지만, 어째서 스승이 제자인 혜능에게 옷에다가 담아서 법을 전달합니까 ?


법이요...   신이 가진 하나의 규칙이지요 , 절대 불변의 규칙성.... 그것이 바로 神이 지닌 물건이지 뭔가요. 아니 요즘식의 표현을 빌면 일종의 시스템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패러다임이라고 해야 하겠나요.

어느 누구는 애써서 그것을 法은 진리이고, 절대로 神은 아니라 하지만,  무당이 신 받을 때 그걸 받지 귀신을 받아야 옳습니까 ?

그걸 가리켜서  스님들은 法이라고 하고 무당들은 神이라고 달리 부를 뿐, 내용 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스님이 법을 전수 받으면  우주만상의 기본원리를 깨우치게 되시고, 무당이 신을 받으시면 우주만상의 일부만 깨우치시나요 ?

2010년   9월 23일  제마선사  서산  김 세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