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자와 지게 작대기”
아주 대단한 큰 스님이 어느 산골 마을에 자리한지 40년, 동네사람들은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나이 서른 정도가 된 젊은이 하나가 잘 살펴보니 스님이 마을 근처 절에 온지 오래라던데, 아직도 지게작대기로나 쓸 정도의 하찮은 나뭇가지로 깎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니 품이 없는 것 같아서 그 일이 갑갑하고 안쓰러웠다.
생각다 못해 등나무 줄기를 질끈 잘라다가 멋진 주장자를 만든다. 그리고 가져다가 들어 바치면서 말한다.
“ 스니~임”
“ 왜 그러냐 ?”
“ 이 마을로 오신지 수 십 년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오셨다는데 아직도 이런 품위가 떨어지는 작대기로 지팡이를 삼으시다니요. 이제, 제가 만든 이 등걸나무 주장자를 쓰시도록 하세요.”
젊은이는 밤잠도 자지 않고 깎아 들기름을 먹여 번들거리는 주장자를 완성하고 그것을 들어 바치면 스님이 너무나도 칭찬해 주실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요즘 말로 볼륨 좋고 크기도 알맞아 스님께 딱 어울리는 그런 용 모양의 훌륭한 주장자였다.
그러나 스님은 정중히 거절하시면서 웃음 띤 얼굴로 말씀하신다.
“ 어허, 이거 큰 탈이 났군. 어쩌면 좋지 ? 내가 쓰던 지팡이는 이미 나의 일부가 아니라 지팡이도 또 하나의 나인 걸. 들어다가 불쏘시개로 쓰면 이 아이(지팡이)가 얼마나 슬퍼할까 ?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 그 아이가 처음에는 자기 것이지만, 차츰 자라나서 커갈 수록 그 아이가 또한 나인 것을 깨우쳐야하는 법인데, 참 어제는 그런 사람도 다녀갔지.
자기 인연으로 속 썩이는 아이가 바로 자기 자신인 것도 전혀 모르고 그저 아이 잘못이라며 그놈 탓만 하더구먼....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 가는 일은 아주 슬픈 일이야.
어느 날 죽으면 자기 죽는 것만 생각해요. 자기가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는 이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사실은 내가 이 세상에 많은 것과 인연지어 새로 만들기도 하고 많은 일을 저지르기도 해서 자기 스스로 나중에는 그 중의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을 몰라요. 갑갑하기만 한 일이야.... 사실은 그들 중의 일부가 되었다가 잠시 자리를 비키는 것이 죽음일 뿐인데 ....”
지게작대기로 쓰던 물건을 그냥 그대로 40년 동안 지팡이로 쓰다보니까, 그 지팡이가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그런 말이 아니라, 스님 자신이 지팡이를 포함한 모든 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동시에 40년 이상 함께 한 지팡이를 어찌 새것이 생겼다고 쉽게 버리느냐는 말씀이시다.
일중일체 다즉일(一中一切 多卽一)이란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시다.
그러니 젊은이는 만들어 가지고 간 지팡이를 짚으시라는 말을 물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께서 만들어 간 주장자를 버리시지는 않았으며, 그 주장자를 나에게 주시면서 그러한 사연을 함께 들려 주셨다.
2008년 1월 18일 제마법선사 법산 청강 / 김 세환 (434)
* 주장자란 ? 큰 스님이 짚고 다니시는 권위의 상징 지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