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특집다운 특집, <공부의 신>!
고등학교를 다닐 때 모의고사 날은 나에게 '천국' 과도 같았다. 점수가 잘 나오든, 잘 나오지 않든 야자를 안 하고 빨리 끝내는데다가 친구들하고 평소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떠들 수 있는 날이 바로 모의고사 날이기 때문이다. "야! 너 몇 점 맞았어!!!!" 로 시작 된 수다는 공부 얘기에서 시작해 선생님 욕, 사회 비판, 연예인 얘기로 흘러흘러 "배고픈데 어디 들어가서 떡볶이나 먹으면서 얘기하자." 로 이어지는게 다반사였다.
모의고사 점수를 서로 비교하면서 "푸하하하하!! 난 70점인데!!!" 라면서 서로를 비웃고, "지금부터 하루에 1점씩 더 올리면 돼! 걱정마, 걱정마!"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위로를 건넸던 그 순간이 나는 참 많이 그립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한심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 그 소중한 추억들은 그 어떤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비록 고3 수능을 220점을 맞았고, 대학에 모두 '똑' 떨어졌고, 재수를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언제나 안타까운 것은 야자를 튀고, 점수에 초연해서 수다를 떨고, 보충 학습을 째고 시내를 신나게 돌아 다니면서 군것질을 한 기억은 생생한데 공부를 열심히 한 기억은 내 학창시절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때는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한 것 같은데 지금 남은 기억은 책상에서 엎드려 자고, 교실 뒷자리에서 빙고게임을 하고, 만화책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나의 모습 밖에 없다. 불현듯 '열심히 놀았던만큼 열심히 공부할걸'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9월 23일 추석특집으로 마련 된 MBC <공부의 신> 은 나에게 참 많은 감동을 줬다. 2달이라는 시간 동안 점수를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이 고3 시절의 방탕함(?)을 후회하며 고군분투했던 내 재수 시절과 참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처럼 오르지 않는 수학 성적에 머리를 쥐어 뜯어 봤고, 외워지지 않는 영어 단어에 속이 답답했던 적이 분명 있었다. "재수 땐 나도 참 많이 열심히 했었는데..." 라는 단순한 회상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고 할까.
그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지, 그 아이들이 얼마나 괴로울지 너무너무 잘 알고 있는 나에게 그 아이들의 공부는 결코 '남 일' 같지 않은 '남 일' 이었다. 내가 걸어왔고, 그 아이들이 걷고 있고, 언젠가 내 자식들이 걸어 갈 험난하고 지독한 '공부의 길'!!!!! 그 힘든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리고 두 달만에 놀랄만한 성과를 얻어 낸 아이들의 열정을 보면서 저절로 박수를 친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전직, 현직, 미래의 '수험생' 들이 아닌가.
나는 수능을 보고 두 번 울었다. 처음엔 고3 때 220점을 맞고 억울하고 분해서, 내가 12년 동안 학교에 몸 바친 결과가 고작 이건가 하는 생각에 화가 나서 울었고 두번째는 재수 시절 460점을 맞고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에, 더 이상 내 스스로 나에게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울었다.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본 뒤에 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다. 그 눈물의 의미가 자책이든, 기쁨이든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나만의 '눈물' 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보고 눈물을 흘려 볼 때에만 진짜 '시험' 이 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면에서 오늘 시험 때문에 눈물을 흘려 본 그 아이들은 진짜 '공부' 가 무엇인지, 진짜 '시험' 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공부의 신> 은 그저 대학을 가기 위한 학생들의 고군분투를 넘어서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가' '공부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그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마련해 주었다.
아마 많은 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래! 나도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극적인 여장쇼와 지긋지긋한 NG 영상에 짜증이 날 무렵 정말 특집같은 특집을 만날 수 있어 유쾌하고 즐거웠다. 제대로 된 특집 프로그램이라면 <공부의 신> 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결심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아이들이 두 달간 좋은 결과를 얻었듯이 우리도 노력만 한다면 어떤 것도 할 수 있다. 나도 이제 잠시 미뤄 두었던 토익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재수 때, 머리 싸매고 열심히 했던 마음을 되새기면서. 이 세상 공부를 하는 모든 이들이 '공신(공부의 신)' 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수능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수험생들이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기를,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한다.
이 세상 모든 전현직 '수험생' 들이여! 공신(공부를 신나게 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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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은 사람의 뇌에 파여진 홈을 따라서 여행을 다니십니다.
그분을 잘 모시려면 무엇보다도 뇌의 홈을 깊이 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생각이든 늘 하고 사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공부의 신은 홈을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참 열심히 파고 있구먼, 성과를 올려주지...."
공부하려는 사람은 늘 뭔가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오히려 잡상도 적당하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억요소들이 쉽게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뇌의 홈을 따라 공부의 신이 시키는 대로 자리 잡거든요.
한번 제말 대로 해 보세요.
2007년 9월 25일 추석날 제마선사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