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테두리 밖을 얼마나 볼 수 있나요 ?
<질문>
오랜만에 머리를 짧게 깎았더니, 머리 모양이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워 보일 것 같다는 생각했습니다. 늘 같은 것만 접해 온 가족과 친지들에게는 그 테두리 밖의 것을 생각지 못하고 테두리 밖의 것은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또한 그저 제가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사람이길 바라기 때문이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테두리 밖의 것을 늘 바라던 저는 과연 테두리 밖의 것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요? 그것 또한 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그러나 정말 테두리 밖의 것이 주어졌을 때 저는 얼마만큼이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한계는 없지만 한계를 긋는 것은 자신이겠죠. 보이는 세계에서는 가능성의 한계가 그어질 수밖에 없음이겠죠.
(혜능 스님조차 마음이 없다는 한계를 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겠죠)
선생님, 감사합니다.
<답변>
육조 혜능 선사님은
모든 것을 한 뭉치로 봐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본래 하나라고 했을 뿐이지요.
인간은 날 때부터 자기라고 하는 한 뭉치로 모든 것을 가늠하려는 버릇
에 길들여져 있었지요.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때가 낀다는 소리냐 !
(本來 無一物 何處 惹塵埃)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수행이 마음에 때 끼는 것을 제거하는 일만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수수하게 알겠지만,
당시에 수 십 년 동안 마음의 때 벗기는 개념으로 수행한 이들에게는 벼락같은 말로 뇌리를 때렸을 겁니다.
오히려
본인이 쓴 <학소재/鶴巢齋> 이야기 중에서
“ 조금 전 까지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 이놈이 ?”
하는 말이랑 다를 바 없지요.
학이 어디 갔는지 찾으니까 비로소 없다는 말입니다.
요즘 같은 미친 세상에서 마음조차도 없다는 혜능선사님의 말씀을 곧이들을 사람이야 별반 없지만,
한 순간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마음의 흐름은 양자의 운동과 닮아서 아마도 그의 눈으로는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하셨을 겁니다.
머리 열심히 다시 기르세요. 어차피 자라는 머리카락이겠지만....
2006년 10월 31일 제마 법선도 김세환81
<아래 참고하세요.>
제목: 학이 어디 갔나요 ?
7년 전의 일입니다.
Y 대학교의 교수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예순 살이 넘어 경륜이 지긋하신 분으로 도를 닦았다는 소문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마침 작은 산채를 하나 지어놓고 있는데 영단거사님이 그 분을 데려 왔습니다.
석축을 올라 마당에 이르자,
“ 아 참 좋네요, 학소재라 ... 그럴 듯합니다. 근데 학이 어디 있나요 ?”
학소재(鶴巢齋:두루미의 둥우리)라고 빗장문 앞에 매단 표찰을 보고나서 던지는 농담입니다.
아무 소리 않고 뒤뜰로 처음부터 있지도 않는 학을 찾으러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 조금 전 까지 여기 있었는데 어디 갔지 ? 이놈이 ?”
교수님이 한 술 더 뜨십니다. 신이 난 모양입니다.
“ 부끄러워서 도망쳤나요 ?”
잠시 동안 머뭇거리다가, 한마디 했습니다.
“ 새로 학이 한 마리 온다고 샘이 나서 어디 간 모양입니다. 조금 지나면 돌아오겠지요.”
영단거사가 교수님과 주고받는 법화(法話)에 복장을 터뜨리며 웃습니다.
2006년 10월 24일 국제연합의 날 제마 김세환
註: 여기의 鶴은 鶴(두루미)이며 같은 음으로 學(배운다)의 은유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