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법문
92.12.29.
어느 시대 어느 마을에 고양이가 한마리 살고 있었다.
이 고양이는 몸집이 튼튼하고 성질이 포악해서 주위의 쥐들이 모두 두려워 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고양이가 조금만 화를 내면 모든 쥐들이 꼬리를 감출 정도로 위세가 당당하고 겁나는 면이 있었다. 실제로 쥐를 잡는 일만해도 참으로 잔혹해서 찢어 죽이기도 하고 시신을 발바닥으로 갈기 갈기 헤쳐 놓아서 이 광경을 목격한 모든 쥐들은 그를 악마의 화신이라고 쑥덕거릴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훌륭한 도사 한분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분은 도를 수행한지 오래 되어서 모든 생물이 지나가기만 해도 저절로 모여드는 신통력을 갖추고 있었다. 고양이 역시 그의 신통력에 매료되어 그의 모습에 이끌린채 무릎을 꿇고 조용히 법문을 들었다.
“ 이 세상에는 나고 죽음이 공평한 것,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힘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그 누구든 생명을 영원히 가지고 살아 가지는 못한다. 하물며 그 누구가 그 생명을 짖밟고 다른 이의 생명을 없수히 여기다니 그것은 가장 큰 죄악이다.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없는 생명을 빼앗는 일이야 말로 지독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때가 되면 저승으로 가지 않을수 없는 것이 무상한 삶의 기본 진리이거늘 이를 무시하고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여 자기의 힘을 과시한다면 영겁을 두고 그 죄를 씻지 못하리라. 그는 지옥에서 고통 속에 살것이다.”
도사의 말에 감명을 받은 고양이는 그날 밤을 지새면서 자신의 과거를 참회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죄를 씻을수가 없을 것 같아 어떻게 하면 그 죄를 씻고 참다운 생을 살아 갈지 고민하게 되었다. 고요한 밤중에 자기의 업보를 생각하며 다가올 미래에 닥칠 갖가지의 지옥 속의 고통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음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자기가 지은 악업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쥐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사흘 밤이 지난 새벽이었다. 그 마을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고양이가 쥐들에게 다가 가서 그들과 친구가 되겠다고 집집 마다 찾아 다니며 악수를 하고 화해를 요청하였다.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참으로 속죄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서는 쥐들이 저마다 한마디 씩 쑥덕거렸다.
“ 저게 이제 와서 참회한다니 정말일까 ? 믿을수 없는걸...”
“아니야, 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참회한 것이 확실해. 우리가 믿어 주지 않으면 누가 믿냐 ? 그러니까 지난 일일랑은 덮어주고 고양이를 용서하자”
“ 그래도 그렇지 좀더 두고 봐야해, 아직 경솔하게 믿을수는 없어. 언제 또 바뀔지 알게 뭐람 ?”
쥐들은 지혜를 모아서 그 고양이의 변신에 대하여 모두 한마디 씩 하며 앞으로 두고 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세월이 흘렀다. 일주일 쯤 지나자 고양이는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들에 나가서 사람들이 먹다가 버린 음식 찌꺼기를 입에 대어 보기도 하고 몰래 밥을 지어 먹어 보기도 했지만 살아 있는 쥐를 잡아서 금방 요리해 먹을 때의 그런 싱싱한 맛이 있을 리도 없고 자꾸만 자신의 참회가 원망스럽고 후회스러움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쥐들을 찾아 다니며 화해를 요청한 이상 그들의 생명을 손상한다는 일은 자기의 체면에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고양이는 한가지 꾀를 내게 되었다. 그야말로 머리에 반뜩 떠오른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 그래 이렇게 하자. 쥐들 끼리 싸움을 붙히는거야. 그러면 자기들 끼리 죽이고 살리고 하다가 전쟁 통에 나는 먹을 것이 많이 생길 것이다. 야, 이건 기가 막힌 아이디어야 ! 고양이가 그냥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지. 이 마을에 생선이 나지도 않고 기껏해야 쥐고기인데, 그것마저 나에게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살아 ? 할수 없지. 내가 살생을 할수 없으니 그들이 스스로 물고 뜯게 만들어 나는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식사를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역시 나는 천재야. 고양이로서의 자격이 있어. 어리석은 쥐들이 서로 물어뜯어 죽이게 하는데야 내가 죄 될 것도 없고 참으로 기가 막힌 지혜가 아닌가 ?”
고양이는 쥐들이 서로 싸움을 하도록 이간질을 시작했다.
밤중에 몰래 부자집에 처들어 가서 쥐들이 모아둔 양식을 말끔히 걷어 가지고 다른 쥐의 집 창고에 쌓아 두었다. 그러자 쥐들은 난데 없는 도난 사건에 서로 의심을 하기 시작하고 쥐들 끼리의 집단적인 난투극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어떤 쥐는 머리를 잘린 상태로 넘어져 있었고 다른 어떤 쥐는 몸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집단 패싸움이 끝 나자 가족들은 각기 자기의 가족들 시신을 거두어 집으로 갔다. 그 때부터가 고양이의 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하룻밤이 지나자 동네의 모든 시체들이 감쪽 같이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다. 쥐들은 서로를 의심하였다. 동쪽에 살던 쥐들은 서쪽에 살던 쥐가 틀림없이 그런 짓을 했다고 믿으며, 반대로 서쪽에 살던 쥐는 동쪽의 쥐들이 시신마저 훔쳐 가는 흉악한 짓을 한다고 굳게 믿었다. 서로에게 짙게 깔린 불신감은 드디어 대규모 분쟁을 자초하였으며 그 틈에서 고양이는 아주 많은 소득을 얻을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땀 한방울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쥐를 포식할수 있었던 것이다. 쥐들은 오랜 세월 누가 무엇 때문에 전쟁을 시작했는지 모르고 끝 없는 살육을 이어 나갔다.
이제 돼지 처럼 살이 쪄 몸을 운신하기가 어려워진 고양이는 아무 걱정 없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시신을 갈가마귀 떼와 나눠 가지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골치 아프게 살생을 할 필요도 없고 자기들 끼리 죽고 죽이는 살상전을 벌이는 쥐떼들을 비웃으며 세월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그렇게 쉽지 만은 않았다. 그 마을에 다시 도사가 찾아 온 것이다.
도사는 모든 짐승을 그전 처럼 모은 다음에 이렇게 고양이의 죄를 질타 하였다.
“ 배가 고파서 살생을 하였다면 그것은 차라리 자연의 법칙을 잇기위한 자구책이리라. 하지만 처음의 동기가 어찌 되었건 수 많은 살생을 저지르도록 얕은 꾀로서 어리석은 중생을 속인자가 이 가운데에 있다.”
그러면서 도사는 고양이의 눈을 뚫어져라 짜려 보았다. 그러자 고양이는 갑자기 눈을 뜰수 없게 되었고, 이 세상이 모두 암흑 천지로 변함을 느껴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사가 법력을 사용하여 악독하고 교활한 고양이의 눈을 마비시킨 것이다. 고양이는 그 동안 동네의 치안을 담당하고 태연 스럽게 보안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니 도사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런 괴물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도사는 이어서 말하기를 고양이의 가장 간악한 부분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 자비로운 마음에서 엉뚱하게도 자기가 죽이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헛되이 희생 시켰는가 ? 손을 더럽히지 않고 서로를 해치게 만드는 것은 살생보다 더 무서운 죄가 된다.증오의 마음을 갖게끔 간악한 음모를 꾸민 자여. 너는 귀족 처럼 행세하며 수많은 쥐들이 서로를 죽이게 한 죄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
쥐들은 옛날에도 그랬던 것 처럼 그제서야 고양이의 음모를 눈치 채고 고양이의 죄를 무섭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보안관 행세를 하며 그 어느 편도 들지 않던 고양이의 속셈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게된 쥐들은 고양이에 대한 복수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고양이에 대한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눈이 멀어버린 고양이는 한꺼번에 달려드는 수 많은 쥐의 공격 앞에 무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쥐들은 그 동안 무엇때문에 그토록 서로 증오하고 고양이를 두려워 했는지 자신의 본능적인 공포심에 대하여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고양이에 대한 공포심, 그리고 그에 대한 진실한 간파력만 있었더라면 많은 희생을 치룰 까닭이 없었다. 사악한 고양이가 사라진 쥐의 마을에는 다시 행복이 찾아 왔다.
* * *
이 우화를 읽으면 여러가지의 관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역시 힘센 자와 힘없는 자 사이에 개재되어 있는 묘한 생명의 갈등구조가 눈에 띈다.
강자가 약자를 포식하는 구조는 영구불변의 진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해진 틀을 벗어나서 함부로 행동하다가는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가를 역력히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사회구조도 여기 나오는 고양이와 쥐의 관계를 그대로 들어내 보인 면이 많다. 그 증거로서 아직도 강대국 앞에서의 한국은 고양이 앞에 쥐이며, 부자와 빈자의 갈등도 역시 그런 범위에 든다.
그뿐 아니라 동서간의 지역 갈등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고양이와 같은 교활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 이 세상은 영원히 갈등구조를 벗지 못할 것이므로 이 이야기는 그점을 경고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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