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지식인
나는 영세계의 일을 하면서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소위 지식인에 속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정치인이라든가 의사, 대학총장 같은 이들이 나를 만날 때 그들의 마음가운데 언제나 “의외의 인사”를 만나는 것처럼 서먹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배운 지식체계로는 영세계가 미확인된 세계로서 자신들이 쌓은 영역을 위협하는 요소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영세계에 탐닉하면 사이비 지식인으로 오인 받을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담하게 예언적인 말을 해줄 때도 그들은 그저 하나의 흥밋거리로 생각할 뿐 전혀 진지하지가 않다.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마음속으로는 믿으면서도 믿는 기척을 보이면 어리석은 미신에 빠진 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운 까닭이라고 본다.
그렇다. 분명히 영세계는 일반인이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터득할 수 있는 세계나 차원은 아니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솔선하여 이 세계에 대하여 좀더 관심을 가진다면 아마도 그들이 추구하는 인간세계의 평화와 질서는 더욱 빨리 실천될 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비인간화, 무질서한 도시구성, 지나친 환경 파괴, 어지러울 만큼의 도덕적 해이 등이 그저 인간이 만든 법질서나 인륜구조만 가지고 헤쳐 나갈 과제가 아님을 그들 스스로 이미 잘 알고 있다.
영혼의 세계를 모르고서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참된 지식인들일수록 인정한다. 그러면서 엉거주춤하여, 자신이 이룩한 영달이 자칫하다가 무너지는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 몰래 숨죽이고 찾아온다. 그리고 혜택을 본 이후에는 모른 척 하기 일쑤이고, 자신은 영세계의 힘을 믿으면서도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말하고 다닌다.
그래서 여기 미국의 미시건 대학에서 20 년 간 인도사를 가르친 죤 브룸필드가 쓴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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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계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데 권하고 싶은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에서는 고삐 풀려 질주하는 현대문명 속에서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 버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아는 것은 반쪽 짜리 지식에 불과하다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 나머지 반을 찾아서 이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 / “지식의 다른 길”
죤 브룸필드 지음/박영준 옮김
다른 길은 피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수만년을 통해 인간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오면서 체득해 왔다.
이제 우리는 그것들에 눈을 돌려야 한다.
예를 들어 일면 비합리적이고 의미 없는 일로 보이는 토템문화나, 뉴질랜드 마우리족의 풍습, 비서구권의 각종 제례들에 대해 진정으로 마음을 열었을 때 우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꿈이나 각종 제의, 자연, 자신의 영혼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순간에 습득되어지거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서구중심이 아닌 비서구권 문화 , 고대 사람들의 삶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서 공생과 사랑을 배울 때 우리는 파괴와 단절로 가득한 현대문명의 폐해들을 극복할 수 있다.
/동아일보 허문명기자--2002년 5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