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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수련의 기본 게시판



1

영자



영혼의 입자를 영자라고 이른다면

영자들이 모여서 이룩하는 일이 무엇이든

보람과 가치가 있는 일이 된다. 


영혼을 그저 파동이라고 보지 말고 입자로

구성된 존재로 설정하면

비근한 예로서 태양의 빛과 유사하다.

태양의 빛은 물질인 동시에 파동이다.


애완용 돼지 한마리가 맡겨진지 얼마 안 되어서

잡아 먹혔다고 기사가 났군요.


애완용에서 식용으로 바뀌어 버린 비극적인 일이

영자의 존재를 그저 존재하지 않는데  명칭만 있는 걸로

여겼기 때문이듯이,

우리 인간의 혼도 마찬가지라 보겠지요.

정신세계에서 머리 속을 맴도는 유령같은 존재로 보고 그저

있을지도 몰라 하며 늘 미정의 상태로 부정해 버린 까닭에

불확정적인 시야에 머물게 되고

죽음에 이르러서 조차 흔들리며 찾으려 하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지요.



종교를 빙자하여

때로는 장식용 촛대에 올라타서 잠시 빛이 되기도 하지만

어차피 자신이 빛을 발하지는 못하는 까닭에

늘 암흑 속에 머물기 좋아하다가  종국에는 마성을 띄기도

하고요.




2


얼-마음-정신-귀신 / 영혼


머리속 어딘가에 분명히 영혼이 자리하는 데가 있긴 한데

그 때의 영혼이란 정신세계를 관장하는 대명사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을 관장하는 영혼을 가리킬 때는 이라든가

마음이라는 아주 엉터리 용어를 대입하여 적당히

얼버무리기도 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어이없게도 영적인 자아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사실상 영혼을 마음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실용적일 수도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마음이란 말이 무척이나 보편화되어

속임수로 쓰기 쉽기 때문이며, 이를 제대로 챙긴 사이비 교주들은

마음의 과학이니. 마음의 종교니 떠들면서 어리석은 종교신자들을

잘도 속여왔다.  그리고 사이비 신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마음의 안정이라는 둥

떠들면서 안도의 숨을 쉰다. 종교의 가치는 거기에 있다나 .


하지만 영혼이란 미립자로 존재하면서부터는 육신은 물론이고

인간이 존재하고 관여하는 모든 곳의 물질이나 공간이나

심지어 인간의 기억 속에조차 머물수 있는 신비한 점착력을

지니고 있는 소자이다. 그래서 이렇게 부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귀신같은 존재이지만 아직 살아 있는 인간에게는 정신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3



출생 령의 미립자



악인이 많아졌다고요 ?

선인이 줄었겠지요 .

가난한 사람이 늘었다고요 ?

부자들이 줄었겠지요.


악한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선한 시람도 늘어나야 하는데

아쉽게도 악한 사람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느끼시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부자들도 늘어냐 하는데

안타깝게도 부자들은 쉬쉬하고 종적을 감추지요.

그래서 사는 게 거지같은 알부자가 많아집니다.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현상이 곧 영혼의 문제입니다.

그게 왜 영혼의 문제냐고요 ?

보통 그러지 않습니까 !

부자가 될려면 어느 정도 태생적으로 타고나야 한다고들.

뭘 타고나야 하냐고 되물으면

태어난 배가 남달라야 한다고들 주장하쟎나요.

그랬었군요.


듣고보니 참 새삼스럽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귀로 또 들으니

정말 눈물 나네요.

가난한 종손의 영적 미립자가 출생시에

개입되지 말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차라리 스님의 자손으로 태어난 설총 같은 그런 분이 부끄럽긴 커녕,

더 부럽군요.

불교의 미래를 내다 보고 성리학의 효시(曉示)를 이루셨으니까요.





4


영적 유전자의 신비한 작용


영혼은 육신의 어머니이거나 아버지는 아니지만

우연하게 결정된 육신이라고 하는 연줄에 매달려

길게 늘어진 인연의 고리입니다.


거듭 태어난다든가 하는 망상에서 벗어나고

아무리 해탈을 이룬다고 해도,

한번 살다가 간다는 점에서 아쉽기만 한 나의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그래서 윤회육도가 생겨난 것입니다.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윤회란 저절로 자기가 스스로 끌고 가는 일종의 망상입니다.

염라대왕님도 어쩔수 없이 쇠고랑 채우기 싫어도

스스로 자기 목에 걸고 걸어가는 자들의 지옥 길을 막지는 않습니다.



영혼의 작은 소자들이 서로 얽혀서

여러 사람으로 다시 나눠지면서

그때마다 힘 센 미립자들끼리 자리다툼을 하며

운명을 결정 짓곤 하지요.

매우 습관적으로 현실의 도둑놈이 도둑질하던 자로 다시 태어나는 까닭은

그런 생의 습관이 그들로서는 보람있고 아름답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미립자는 한쪽으로 쏠려 있는듯이 보이면서도

때로는 아주 미세한 하나의 입자가 되살아 나서

마치 요즘의 산불처럼 큰 불길을 만들어 버리면

전체 영혼의 소자들이 호응하여 인격의 개조가 이뤄지곤 하지요.


영혼은 정말 과학의 대상이며 이런 일을 해오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영적으로 정말 허망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숱하게 여러번 인간영혼을 개조하는 일을 경험해 보면서,

어찌 그렇게 악하던 자가 선하게 변하고

반대로 방심하고  내버려 두면

그렇게 선하던 자가 얼마나 포악하게 변하는지의 원인을

이제는 잘 알아 차렸던 까닭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결코 하나님 같은 영적인 절대자의 심판이 두려워서

성품을 스스로 바꾸고

흔히 속되게 말하듯이 개가 사람이 되는 듯한

개과천선(改過遷善)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5



영혼은 시공을 넘어간다



과거와 미래를 담은 그릇으로서의 현재만이

오로지 존재하는 인간이

마치 영원한 존재인 걸로 착각하고 사는 까닭은

각자의 영혼이 별도로 존재하며

각자에게 ,

매우 안타깝게도 시간과 공간이라고 하는

한계를 설정해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간이란 영혼이 나의 생명체를 유지시키는 표지이며

공간이란 육신이 존재하는 것을 드러내는 감각적인 의식체계입니다.


정말 우리는 교묘하게도 이러한 시간과 공간, 다시말해서,

시공이라고 하는 마술속에서 살아 갑니다.


그러나 영혼은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죽은이나 산 이나 대화가 가능한 까닭도 그렇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영혼의 존재가 느끼기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표지를 가리키며

공간은 육신이 살아서 호흡하는 느낌에서부터 이미 일정한 제약을 드러내므로 육신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비좁으면 곧바로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갑갑하다, 갇힌듯하다.

정말 아이로니 하게도 죽은 영혼들은 시공을 넘어섰으면서도,

살아 있을 때의 습관에 의하여 마치 살아 있는 듯한 감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영체를 움직입니다.

빙의하는 까닭 역시 그러한 생명체의 움직임을 즐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앙갚음을 하려고 달겨드는 영혼들 역시 그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을 지니므로 당연히 살아 있을 때의 고통을

그 대로 드러냅니다..... "살려주세요" 하면서도 자기기억을 그대로 유지하며

복수합니다. 물론 숙주가 되는 사람은 빙의령의 희생자가 되지요.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희생자가 바로 연산군입니다.

“내 아들이 이 다음에 왕위에 오르거든 이것을 전하고 꼭 이 원통함을 풀어 달라더라고 전해주시오.”

그 어머니 사약을 받은 윤비가 결국 아들 연산군 몸에 실려 복수를 자행하고야 맙니다.

우리는 귀신이 되어 수천년이 지나서 지구상 어디에서든 태어날 수 있으며

빙의령으로 그냥 그대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당신도 역시 그렇게 될수가 있습니다.




6


원효스님이 말씀하시는  영혼의 깨달음



우주가 어떤 한 사람이라고 가정하여

그 우주가 망상을 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우주의 망상이 바로 체공(體空)이라고 하는 실체입니다.

체공이란 이를테면 우주를 하나의 몸으로 보는 셈이지요.

따라서 체공은 곧 진여가 열리는 문을 가리키며

수행자들은 이를 얻어 보려고

일평생 목숨을 걸어봅니다.

거기서 얻어진 진리를 가리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같은

인간이나 생명체들은

우주의 법칙에 의하여

순종해야만 하는 순리에 따릅니다.

그것을 가리켜 인연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인연에 따르는 행위를 가리켜서

수연(隨緣)이라 말합니다.


그 중에서 자기가 긍정하고 따르는 인연의 해석 방향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서 이미 지녀온 무명의 망습을 제거해서 얻는 깨달음을 시각(始覺)이라고 합니다.

시각에서 얻어지는 진리를 "반야바라밀"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시각이란 인간의 머리와 상통하는 자기영혼이 깨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멍청하게 살다가 비로소 깨달음을 행하여 정진하여 얻었으므로,

비로소 시(始)라는 글짜가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전혀 오염되지 않은 자성(자기혼)을 밝혀서 깨달음을 얻는 일을 가리켜서

본각(本覺)이라고 합니다.

이를 가리켜 번대망념 현자공덕의 (翻對妄染,顯自功德義) 라고도 부르지요.

더러워진 생각을 훨훨 털어내고 나서,  자기의 숨은 덕을 드러내고 깨친다는 뜻입니다.



인연 따라서 수연하면서  우주의 법칙에 의하여 성사되는 일들은 삶과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므로

근원적으로 생멸을 없애므로써 깨친다고 해서 생멸문이라고 부르며,,

전혀 변할 까닭이 없는 자성을 잘 들여다 보고 자성이  불변하는 부분과  체공 변화하는 부분을

다시 완전하게 하나로 합치 시키는 과정을 가리켜서 진여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생멸문과 진여문은 서로 진망(眞妄)이 얽혀서 섞이기 때문에 ,

이 두개의 문을 따로 나누지 않고 한꺼번에 열어젖히는 영혼의식의 혁명적인 구조개편이

바로 돈오방식에서의 해탈과 열반이라는 과정인 것입니다.

 

 

2019 년  5 월 15 일  제마선사  원효, 서산,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