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라는 필사본 소설책이 장희빈으로 알려진 장옥정을 몰아내는데 큰 공로를 세운 일이 있었습니다.
조선조에서도 언론을 이용한 정치적인 데마고지(정적을 모함하는 흑색선전)가 먹혀들었던 최초의 사례라고 봅니다.
사씨 남정기는 한자로 謝氏南征記입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이 책은 지금 시대에도 통용될 정도의 비유법을 잘 써서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상한일입니다.
사씨남정기에 나온 착한 여인의 성씨가 하필 왜 謝씨였을까 ?
謝에서 말씀 言을 빼면 射가 되고 그 뜻은 "쏠사"입니다.
쏜다 , 화살을 쏜다입니다. 슛 ;;;;;;;
저자 서포 김만중 선생은 아마도 그 이름에서 암시성을 찾으신 다음에 이름을 지으신 것으로 압니다.
남정기에서도 정복한다는 뜻의 칠征자를 썼지요.
당시 세력을 잡고 있던 남인들을 친다는 뜻이지요.
말하자면 군사교본에 가까운 서적입니다. ㅎㅎㅎ
연산군 시절의 장록수 (중종반정 때 척살됨)
성종 시대의 장옥정 (아시다시피 사약 먹음)
고종 시대의 장귀인 (민중전에게 모살 되었다고 함)
이렇게 세번 장씨가 등장하여 조선조에 유명한 여인으로 비칩니다.
왜 이 장씨를 논하냐고요 ...
조금 시대가 지나가 보면 압니다.
<힌트>
조선왕조의 전주 李씨 가문과 그다지 좋은 기억을 담고 있지 않은 세 명의 張씨녀 귀신들이 어떻게 보면 조선조를 망하게 한 요인인지도 모르지요.
길 長에다가 활 弓짜를 합하여 만든 글자인 張씨가 오얏 李를 쏜다는 그런 도참설이 가능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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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김만중(金萬重:1637~92)이 쓴 고전소설.국문본으로 목판본(경판)·필사본·활자본이 있고, 그의 종손인 김춘택(金春澤:1670~1717)이 쓴 한역본이 있다. 필사본은 주로 〈남정기〉 또는 〈사씨전〉으로 되어 있는 것이 많다.
명나라 유현이라는 명신(名臣)과 최씨부인 사이에서 주인공인 연수가 태어난다. 연수는 재질이 뛰어나 15세에 급제해 한림학사에 제수된다. 유현은 여승 묘혜를 통해 덕이 뛰어난 사소저 정옥을 며느리로 맞이한다. 사부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자 스스로 유한림에게 취첩을 권유한다. 유한림이 사양하던 끝에 교씨(喬氏)를 첩으로 맞이한다. 원래 사악한 성품의 교씨는 아들 장주를 낳은 후로는 차츰 더 간악해지기 시작한다. 그뒤 사부인도 아들 인아를 낳자 교씨는 문객 동청과 결탁해 사씨를 모해하기 시작한다. 동청과 교씨는 유한림의 재산을 빼앗아 함께 도망쳐 살기로 하고 시비를 통해 아들 장주를 죽여 사부인의 소행으로 모함하기에 이른다. 교씨는 사부인을 내쫓고 정실부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유한림도 교씨와 동청의 모함을 입어 승상 엄숭에 의해 행주로 유배되고 동청은 유한림의 정적 엄숭의 도움으로 계림태수 벼슬을 얻게 된다. 시비 설매는 교씨로부터 인아를 살해하라는 사주를 받았으나 양심의 가책으로 도리어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러던 중 천자의 특사를 입어 유배지에서 돌아오던 유한림이 우연히 교씨와 동청의 행차를 만나 설매로부터 전후의 모의 사실을 듣게 된다. 동청 일당의 추격을 받은 유한림이 강에 투신하나 여승 묘혜에 의해 구출된다. 유한림은 사부인을 극적으로 만나 사죄하고 엄숭은 죄가 드러나 천자에게 버림받는다. 동청 또한 추방되어 죽음을 당하고 교씨는 냉진과 사통하다 냉진마저 죽자 결국 기녀로 전락한다. 유한림은 그후 좌승상으로 승직되고, 사부인의 권유로 임씨 추영을 첩으로 맞아 후사를 잇고 안아도 되찾게 된다. 교씨를 살해해 원수를 갚고, 사부인은 내훈과 열내전을 지어 후세에 길이 전한다.
이 작품은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책봉한 사건에 대해 숙종을 깨닫게 하기 위해 쓴 '목적소설'이다. 이러한 소설창작 동기에 있어서의 목적성과는 별도로, 이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17세기 중반 이후 강화되기 시작한 가문의식이다. 임진·병자의 양 난 이후 피폐화된 현실, 특히 예송(禮訟)과 그에 따른 수차례의 환국(換局), 그리고 사족 가문 내부의 처첩갈등과 같은 여러 문제가 그 반영으로 제시되고 있다. 가문창달을 위한 기본적 요건으로 충·효·열 등의 계서적(繼序的) 질서가 강조될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으로 현실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해 작품 구성의 많은 부분이 신비적이고 환상적 요소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교녀·동청·냉진과 같은 악인형의 인물형상을 통해 조선 후기 사회의 단면을 일정 정도 반영함으로써 반봉건적인 요소나 측면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후대 소설 창작의 모범이 되면서, 많은 모방작들이 산출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17세기 중·반기에 들어 본격적인 소설시대를 열어주었다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최근 이 작품과 매우 유사한 구성이나 지향, 주제의식을 보이는 〈창선감의록 彰善感義錄〉을 중심으로 이러한 초기 장편소설 발생의 측면에 주목해 '규방소설'이라는 유형이 새로 설정되기도 했다.
2010년 6월 22일 청강 김 세환 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