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지도자가 왜 없을까 ?
대선을 앞둔 우리가 좋은 지도자상을 구하지 못하고 대안을 구하는 처지로 전락하고만 것은 결코 역사적으로 볼 때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위대한 지도자가 성장하지 못하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1. 삼김씨를 대표로 한 장기독재가 기른 인재들의 재고가 바닥났다.
92년에 김영삼씨 97년에 김대중씨는 어떻게 보면 역사의 후유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민주시대가 도래하였지만 독재시대에 성장한 사람들이라서 민주적이고 유우머도 할줄 아는 명랑한 지도자들이라기 보다는 그들 역시 독재시대에 시달리며 어두운 그늘에서 어렵게 자라서인지 권위적인 품성을 벗지 못했다.
군사독재가 끝난지도 10년인데 아직 그 어둡고 암울한 시대의 타성이 우리사회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면서 위대한 민주 지도자가 성장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일천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나마 이제 반독재 시대에 성장한 두 사람의 시대가 가고 그 동안 그들 아래서 성장한 사람들은 위대성을 갖추기에는 역부족이었으니 좋은 지도자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따라서 독재는 그 사회에 한세대(25년)에 걸친 후유증을 남긴다는 말이 정확한 것같다.
좀 더 참고 기다려 보자.
2. 선민주의와 지역주의(분파주의)
우리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든가, 우리 지방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아직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생각은 그 사람이어야 한다든가 절대로 다른 지역 사람은 안 된다고 하는 사고로 진행한다. 그리고 좋은 지도자가 전국적으로 발 딛고 일어설 자리를 마련해 주지 못한다.
특히 최근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자기들만의 우리라는 제한적 사고는 무척이나 지도자 재목을 궁핍하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1개 주에도 못 미치는 작은 나라인데 그 가운데서도 콩알을 쪼개듯이 둘로 셋으로 나눈다.
아무래도 좋은 인재는 드넓은 지역이 함께 이견을 통일해야 좋은 사람으로 성장한다. 우리는 그 점이 쉽지가 않다. 탁월한 스포츠맨도 인구수가 많은 나라일수록 유리하듯이 지도자 역시 다를 바 없다.
나누면 지도자가 잘 나올 가능성이 떨어진다. 사람이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육성되는(키워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3. 영혼의 타락--부패, 범죄 증가
돈을 버는 것이 유일한 인생 목표인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몇 프로나 될까 ?
겉으로는 아니라 하지만 아마도 거의 금전의 지배를 받고 살 것이다.
존경하던 사람이 어느날 돈에 집착하는 지도자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대상에게 행하던 존경심은 사라진다. 자기는 그럴지 몰라도 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앞에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 유교의 전통사고가 청렴결백을 외치지만 실생활은 여전히 돈을 요구한다. 그래서 훌륭한 지도자는 처음부터 돈을 많이 갖고 있든가 아니면 금전적인 면에서의 이미지 관리를 철저히 하고 숨겨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능력 있는 지도자들일수록 영혼의 타락 속도가 빠르다 보니 그 부패와 범죄는 지도자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어찌 보면 청렴결백은 하급관리 수준에서나 지켜지는 덕목이다.
그래서 나라 전체를 끌고 갈 인재가 될 시점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들은 타락한 지도자일뿐이다. 설사 그 뒷면을 모른다고 해도 그저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기본 모순일수도 있는 점, 타락과 부패 그리고 범죄, 이 세가지는 정말 무서운 독소로서 이 사회지도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4. 도덕적 위기의식의 붕괴
컴퓨터 게임 중독자는 3만명이고, 마약중독자가 몇 명인가 ? 10만인가, 마구잡이 카드 발급 및 사용 방조로 인하여 신용불량자가 150만 여명, 못 잡고 있는 뺑소니 범죄자가 7년 누계치로 2 만명,
1년에 태어나는 미혼모 출생아가 1만 5천명 그 중에서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가 또 몇 명인가 ?
부모이혼으로 망가지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되는가 아마 통계도 없을 것 같다.
나중에 돌아와서 부모를 찾으면 그들은 참으로 기특한 한민족의 핏줄을 받은 사람이며 마치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은 것 같이 알지만 그에 아니고 여전히 우리는 고아수출국으로 낙인찍힌 나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교육에 메달리는 이유는 잘 먹고 잘 사는 차원이 아니라 남 앞에 군림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기본적인 사고의 병폐가 그대로 존속한다.
예를 들면 고시생이라든가 각종 고급자격 시험대비생이 무여 30만명이나 된다.
그저 실업율이 얼마냐로 고민하는 사회가 아니라 우리는 이렇게 도덕적으로 붕괴되고 있다.
걸핏하면 남의 약점을 잡아서 돈이나 받아내려고 하는 위자료 청구시대이고, 당연히 해야 할 법률행위도 어거지로 거부하는 자들이 너무나 늘어났다.
아이를 버리면 나라가 책임지는 복지 사회라고 자랑하고,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지 않고 공공기관에서 봐주기를 오히려 더 희망하는 탁아 전성시대이기도 하다.
그렇게 귀찮은 아이를 왜 낳는지 모를 지경이다.
어찌 이런 사회에서 좋은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라겠는가 ?
그저 위에 나오는 해당사항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대선에 나와도 좋지 않을까 ?
5. 자연파괴와 교육붕괴
자연은 인물을 만드는 기본조건이다. 훌륭한 사람이 출생하는 자리는 반드시 그만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풍수적으로 보자면, 큰 산이 버티고 있는 자락에서는 그런 인물이 나지 않으며, 오히려 작은 산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자리에서 위대한 지도자들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은 한결 같이 도시이지 농촌이 아니다.
성장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리더십에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산을 보면서 바다를 보면서 호연지기를 지니고 그 기운을 뻗쳐 윗자리로 올라서는 사람은 자신의 영달을 아래에 물릴 줄도 아는 아량을 가진다.
그러나 자신이 그런 기운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지도자로서 우리나라를 이끌고 갈 수가 있겠는가 ?
농어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소년시절에도 그러한 환경의 힘을 잃지 않고 자란 사람이 지금 대선에 나온 사람 중에 누구인지를 살펴 보기 바란다.
더구나 산업화 바람이 불어서 산의 맥을 잔인하게 끊고 바다를 메꾸어 땅을 만드는 일이 너무나 쉬워진 현실에서 자연이 과연 좋은 지도자를 만들 힘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겠는가 ?
다음으로 <교육의 붕괴현상>을 지적해야 한다.
좋은 지도자는 좋은 스승의 지도 아래에서 육성된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현실이 붕괴된 상태라고 모두들 한심하게 생각하지만 이런 현상이 어제 오늘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한다.
한 사람의 훌륭한 지도자를 만들어 내려면 좋은 스승이 열 명 이상 있어야 함을 우리는 잊고 있다.
돈 봉투에 먼저 눈을 돌리는 선생님들이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다. 리더십을 갖추게 하는 좋은 교육환경은 오래 전에 무시되었고, 오로지 일류 학교에 진학하는 것만이 교육의 목표인 듯이 만들었으니 그런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 어떻게 이 민족과 나라를 잘 이끌고 갈 수가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