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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만드는 살

2005.08.15 11:49

xemasa 조회 수:4496

2. 영화가 만드는 살(煞) - "원초적 본능" 이란 영화를 보고서


{침대 위에서 두 남녀가 열정적으로 사랑을 한다. 절정에 이를 무렵에 여자는 남자의 침대 머리 맡에 있는 쇠 기둥에 머플러를 사용하여 두 팔을 재빨리 묶어 놓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얼음 깨는 송곳으로 상반신을 난자한다. 남자는 성감에 도취한 상태에서 꼼짝 없이 피투성이가 되며 여자의 살인 대상으로 전락한다.}

이 영화가 관객 20만명을 동원할 만큼 대 히트작으로 만든 엽기적 살인 장면의 설명이다. 만일 그런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이 지닌 가장 무서운 살인본능을 적라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것을 주제로 삼아 돈벌이를 할 만큼 영화계에도 '살이 낀지' 오래 되었다.

물론 이 영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1970년 초에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했던 "솔져 블루"가 잔혹성을 그대로 표현한 초기의 영화였을 것이다. 기병대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인디안을 무참히 학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총탄에 맞아 머리가 터져서 피가 튀는 그런 화면을 걸르지 않고 보여준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정도의 장면은 아무 것도 아니다. 괴기 공포 영화에서는 서슴치 않고 시신의 몸에서 각종 오물이 흘러 나오고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을 보여 주는가 하면, 사람의 목을 예리한 칼로 도려 내는 잔혹장면 조차 걸르지 않고 보여준다.

이는 '네크로피리어(necropheria)/오물 선호증'이라고 하는 정신병적인 인간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인간정신 속에는 더러운 것을 혐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러운 것을 선호하는 면이 잠재되어 있으며 이 정신증상이 외부로 심하게 들어 날 때에 이를 가리켜 오물 선호증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듣는 욕설 중에서 "똥물에 튀길 놈"이란 더러운 말이 있다.

이렇게 냄새 나는 욕설을 하는 사람은 자기의 심리 구조 속에 자신도 모르게 오물 선호증이 꿈틀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더러운 것을 연상하면서 상대를 그 속에 한데 묶어 버리고 자신의 울분을 토해 냄은 그야 말로 오물 선호증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이 지닌 오물 선호증 가운데서 가장 무서운 것은 아이의 태반을 먹는다든가 동물의 피를 마시고 쾌재를 부르는 몬도카네(인간의 이상행위를 르뽀르따쥐 형식으로 추적하여 만든 야코페티 감독의 영화로서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에 상영된 일이 있다.)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편 이런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일상에서의 위생 관념은 철저하여 결벽증에 가까운 모순을 보이는 일이 많아 참으로 인간 모순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 '원초적 본능(원제: Basic Instinct)'은 영화가 주는 오락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교묘하게 짜 나감으로 인하여 흥미를 유발한다.  

그 하나는 성(性)이며 또 하나의 측면은 인간의 잔혹성이다.

이 두가지 요소는 원천적으로 리비도(Libido)의 미분화 상태를 교묘하게 자극한다.

다시 말해서 성적인 쾌감과 잔인성은 인간이 만 2세경 항문기(肛門期)를 거칠때 나타내는 심리 상태의 미분화성과 유사하여 두 가지가 중복될 경우는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자극을 받는다.  

이 심리 현상이 극도로 도착을 일으킨 상태를 가지고 새디즘과 매조키즘이라 하며, 이는 학대성 음란증이라고 불러 변태적 성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살인장면과 성행위 장면을 동시에 연출하여 이 이론을 그대로 증명해 보인다. 인간이 살인을 저지를 때 느끼는 짜릿할 만큼의 강렬한 쾌감과 성행위시의 극치감(Sexual Ecstasy)을 영화 감상자로 하여금 대리 만족을 통하여 맛 볼 수 있게 하였으므로 전대미문의 인기를 끌 것은 당연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영화를 본 사람의 모방심리이다. 살인 동기가 분명하지 않고 다만 여주인공이 소설책을 쓰는 자료로서의 실험적인 살인 정도로만 인지되게끔 유도하는 영화제작자의 안일한 자세는 살인 동기가 분명하지 않은 현대 범죄와 유사하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제작자는 공연히 사람을 죽여도 무방하다는 정도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물론 영화는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어째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하는 범행동기가 도무지 불명확하다.

이는 그 동안 미국영화가 살인중독증에 걸려 이미 한계에 도달할 만큼의 내성을 가진 것으로 여기고 관람자를 처음부터 압도하는 것 같다.

차라리 여주인공이 그러한 본능적인 살인광(Mudering Menia)이라는 설명이 따라 주었더라면 그런대로 이해가 될 법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범행동기가 불명확하다. 예를 들면 변태성욕자라고 해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아무런 설명이 없고 그저 '재미로 사람을 죽인다'는 인상만을 남긴다. 이 점은 잔혹 영화의 대명사라 할 '양들의 침묵'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살인의 쾌감을 관람자에게 전달하여 나가므로, 영화를 보다가 보면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범행을 저지를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까지 만든다.

이런 영화를 보고 카타르시스로 그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정신병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은 이를 모방하고 싶은 충동을 가질 것이다.

그런 모방심리의 결과에 대하여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이 영화는 4,5회의 살해장면을 보여 주면서 오히려 지독하게도 아름다운 여주인공에 이끌려 들어 가도록 관객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남자 주인공인 형사가 결국 그 여자의 범행까지도 묵인하고 함께 정사를 즐기는 대목에서 종지된다.

잔인한 장면과 에로티시즘은 기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영화의 소재로서 여러 영화에 인용되는데, 공포영화에서 특히 그점을 악용한다.

그리고 영화'원초적 본능'에서는 끝끝내 치밀하게 조작된 의도에 의하여 범죄자는 잡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가 저질러져도 무사할 수 있다는 이상심리를 조장하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그점이 문제이다. 모방범죄는 그런 완전범죄의 허구성에 입각하여 잡히지 않을 가능성을 안고 일어 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참으로 도덕적으로 해악을 끼칠 악독한 영화이고 앞으로 살기를 품고 있는 사람들을 충동질할 최악의 영화이다. 영화 평론가인 이세웅 씨는 시사저널 6월 2주호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이 영화는 줄거리를 이어나가게 만드는 살인동기가 엽기적 흥미에 치우치고 있어, 스릴러의 껍데기를 씌운 준 포르노 필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할 말은 많지만 표현능력이 부족한 연출자와, 할 말은 별로 없으나 탁월한 표현기술을 가진 감독 가운데 후자가 더 많이 더 자주 성공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원초적 본능>은 이 안타까움을 다시 확인시켜 준 영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