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를 벌여서 오히려 절을 망치지 마라
2년전에 우리나라가 왜 살기 힘들어졌는가 하는 이유를 따져 물어 본 일이 있었다. 그러자 절에다가 대불 조성이니 쓸데없는 사찰건조물을 많이 지어서 정기를 흐려 놓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나왔었다. 이는 절 뿐 아니라 풍수로 봐서 묘소에도 적용되는 논리인데 석물을 많이 새운 묘소는 그 자신이 살을 맞는 일이 많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절이나 묘소나 모두 우리의 정신세계와 연관된 건조물인데 거기다가 쓸데없이 돌을 마구 깎아 가지고 쌓아 놓는 바람에 기의 소통을 막아 버리고 진정한 정신세계의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소치란 참으로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는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이므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
최근에 돌아 본 절---법주사, 내소사, 향일암, 화계사, 상원사, 승가사, 직지사, 선운사, 실상사--- 하나같이 모두들 불사를 벌이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불사를 끝낸 상태였는데 거의 모두가 옛 정취라고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원형을 파괴하고 엉망을 만들어 버렸다.
사찰에 좋은 건조물이 들어서는 게 배가 아파하는 소리가 아니다. 법장은 오래 전부터 한국불교의 병폐를 가슴 아파해 왔는데 말로만 듣던 절들이 정말 다가가 보니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어 가고 있었다. 부서져서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개수라는 명목 하에 엉뚱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1계단이 지나치게 화려한 경우
승가사의 사례 돌계단을 108계로 만들었는데 너무 묵직하여 절 전체를 휩쓸어 내리는 형국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전혀 균형감각이 없이 조성되었고 대웅전 마당에까지 판석을 깔고 용석을 설치하는 등 이게 궁궐의 마당인지 아니면 절 마당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게 화려의 극치를 달리는데 도리어 조잡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옛날에 있던 탑이나 디딤돌, 기단부위등을 가로석으로 끼워 넣어 옛것이 무시당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늑한 옛 느낌은 지워져 버리고 마치 중국무술영화의 무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2 옛 건물이 무시당한 경우
내소사에 가보니 오른 쪽 귀퉁이의 부지를 새로 내어 요사채 등을 새로 짓고 있는데 문제는 본래 오래된 절에 대한 투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둥이 퇴색되고 벽채가 갈라진 모습이 처량하기만 하다. 오래 된 건물은 오래된 마누라 얼굴이고 새로 조성한 것은 새마누라 얼굴이니 아무래도 새 계집에게 돈들이고 싶은 것처럼 그것도 인지상정이겠으나 역사성과 문화유물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이건 너무 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조성해 놓으면 옛 건물이 질투를 일으켜 가지고 반드시 불을 지르게 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화계사도 그래서 요사스러운 무리들이 침입하여 97년도에 화마를 입은 일이 있다. 오래된 대웅전보다 3배나 큰 극락보전을 지어 놓고 절하는 모습이 좋기는 하여도 옛날 흥선 대원군이 지은 법당의 부처님은 울고 계셨다. 왜 우십니까 물으니 여보게 여기 좀 와서 만져 보게나 하시는 것이다. 다가가 보니 이런 일이 있나 부처님이 새카맣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올라가서 먼지털이라도 해야 하는 건데--
새 건물이 옛건물을 싹 가려서 들어서면 보이지도 않게 해 버린 작태라니, 그렇게 해놓으면 어쩌나 스승이 제자에게 깔려 죽는 일이 생긴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3 물돌을 가져다 쓴 경우
상원사에 가보았다. 여기는 돌계단의 턱이 얼마나 높던지 기운이 없는 노인네는 올라가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물론 왼쪽 옆구리로 돌아가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어디서 강돌을 그렇게 큰 걸로 구해 왔는지 이치에 맞지도 않는 계단을 만들어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볏가마니나 군인들이 참호 벽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미학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계단을 그렇게 만들다니 한심했다. 강돌로 계단을 만든다는 발상이 과연 무엇 때문에 어디서 나왔는지 두고두고 미스테리이다. 자연석을 구하려면 어울리는 것을 구해야 하는데 물가에 있던 돌을 빼다가 계단 석축을 쌓는 일은 금물이다. 둥굴어서 시멘트 접착반응도 안 좋고 언젠가는 세월이 가면 서로 간격이 떠서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는 동학사 바로 옆에 있는 절에도 해당된다. 담장을 둥근 수석으로 쌓았는데 아마 몇 10년이 지나면 무너질 것 같다. 돌은 성질이 요상해서 자기가 본래 있던 자리로 굴러가려는 성격이 있어서 그들의 말을 잘 안 들으면 나중에 사고가 난다.
4 지형적인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
중원의 미륵사지는 내가 자주 들려 기도하는 도량이다. 그곳에는 신라시대 이래의 훌륭한 미륵불이 조성되어 있다. 그 주위는 잘 보존되고 있으나 문제는 그 뒷편 몇 마장 떨어진 곳에 이상한 돌무더기가 올라가고 있는 일이다. 이래서는 절대로 안된다. 불사를 하는 일을 반대하거나 막는 것이 아니다. 용들이 승천하는 기둥이 수십개 씩 들어 가 서양의 판테옹을 연상케 하는 사찰이 건립되고 있다. 미륵이가 그런 짓을 하라고 시켰을까
나라가 망하는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 지형적인 면을 고려해 볼 때 이는 거대한 사찰을 들임으로써 본래의 미륵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원의 미륵불은 호국의 신장으로서 그 힘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뜻을 모르는지 알고도 그럴는지 모르나 거대한 사찰이 건립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자리는 아담한 암자 정도가 자리해야 마땅한 곳이었다.
5 기와를 잔뜩 쌓아 놓은 경우
밤을 새워서 향일암에 가보니까 불사시주를 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힌 기왓장이 길가에 뒹굴고 있었다. 어떤 것은 숲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새 기왓장을 시주한 사람들의 정성은 어디로 갔는가 아마도 기와장이 남아 돌아가서 생긴 일인 듯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기와시주를 받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망가지면 나중에 새로 끼워 주려고 쌓아 놓은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렇게 많은 기와가 필요 없는 것을 알면서도 소액의 돈이니마 수없이 많은 사람이 다녀가니까 모으면 큰돈이 된다 싶어 기와 불사로 머리를 쓴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아주 노골적으로 기둥은 얼마 서까래는 얼마 하는 식으로 팜플렛에 찍어서 배포하고 있다. 이게 무슨 꼴인가 그렇게 돈이 없으면 일을 안하면 되지 않을까 무리해서 돈 거둬 가지고 불사라고 할 수 있는가 예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권선문이라고 해서 책자로 만들어 얼마를 내겠다고 싸인을 받는 식으로 신자들에게 돌렸다. 비단 그 절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웬만한 절은 모두 그런 식으로 불사를 한다. 어디 돈 없는 놈이 절에 다니겠는가 ! 그렇다면 입장료는 무엇 때문에 받는지도 알고 싶다. 불국사 같은 데는 일년 수입이 수십 억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그런 절에서 작은 절에 불사비용을 좀 대주면 되는 것 아닌가
6 아예 건물을 새로 지어 버리는 경우
절에 가면 대웅전 같은 것은 함부로 뜯어 내지 못하나 요사채 같은 것은 낡았다고 해서 그냥 싹 들어내 버리고 새로 짓는 것이 유행이다. 요사채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자리인데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생각에서 그러는지 불사를 할 때 보면 우선적으로 손을 댄다. 지장도량으로 유명한 심원사는 2년전 요사채를 완전히 뜯어내고 2층으로 다시 지어 버렸다. 낡은 건물을 헐어내고 다시 지으면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옛날에 찾아오던 사람들의 마음은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사라져 가는 마음의 고향을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낡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스님과 인생사와 법담을 나누던 정취를 뺏어 버릴 권리가 어디에 있는가 묻고 싶다. 그리고 절의 개수 작업에 들어가면 어째서 요사채 부터 손을 대는지 궁금하다. 현대식으로 지으면 편리할지는 몰라도 절로서의 맛을 없애 버린다는 점을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 실상사의 경우도 그렇다. 유명한 범종을 보관하는 자리를 들여다보면 건물부터 해서 너무나 관리가 소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요사채는 아주 깔끔하게 들어서고 있다. 누가 우선인가 법당의 부처님이 우선일까 아니면 스님들이 우선일까 불법승 삼보라고 하고서는 어째서 승이 우선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