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주사는 누가 세웠을까
운주사는 도교 사찰이었다. 이 절의 신비를 더해 주는 칠성석은 전통 불교에서는 좌시하는 신앙대상이지만 도교에서는 칠성신이라고 하여 높이 평가하는 신령이다. 그렇다면 누가 세웠는가 절에서 도교신앙을 할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 창건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전통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물론 일반 절에도 칠성각이 있어서 천신 숭배사상이 곁들여지기는 하지만 전통불교에서 그런 신앙을 위하여 절을 짓지는 않는다. 밀교에서 북진묘견보살이란 신앙 대상이 있어서 그 존재가 확인되기는 하여도 그렇다고 해서 그 대상을 위하여 절을 창건할만하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 절을 세운 사람들은 칠성신앙을 돈독하게 가진 도교의 신봉자들임이 확실하다. 처음 절이 창건될 당시는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절의 형태가 아니라 도교적인 의미의 사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존재하는 사찰에서 조금 떨어진 입구 쪽에 보면 건물 터가 남아 있는데 아마 거기가 본래 창건당시의 사원 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 하면 기존 개념의 사찰 배치형식으로 보아서 절을 두고 전후좌우에 무작위적으로 천불 천탑을 세운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되는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2. 운주사는 천체도이며 고려초기에 중국에서 귀국한 사람들의 절이다.
1999년 4월 중순 KBS역사탐방 프로에서 운주사의 탑 배치도가 우리나라의 여름 천체도의 일등성∼6등성 까지 별자리 표시와 일치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정말 연구자의 논문에 따르면 천체도와 탑의 배치가 기가 막히게 일치함을 눈여겨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놀라운 발견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천불 천탑의 비밀도 여기서 풀리게 되었다. 운주사의 탑이 별자리와 일치한다면 당연히 운주사란 절은 천체와 연관된 절이 분명하다. 법장은 현재의 운주사 법당에 조용히 앉아서 이런 사실의 검증에 들어갔다. 기도를 올리자 대불님이 나타나셔서 이점에 대하여 명확한 말씀을 하셨다.
이 절은 신라가 망하고 후백제가 득세했을 당시에 창건된 절이며 당시 중국 남부와 산동 지방에 흩어져 있던 한반도 출신의 이주민이 1000명 가량 대거 귀국하여 이 지방에서 살게 되었는데 구성원의 대부분은 해상무역에 종사하였으며 칠성신을 신봉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늘을 보고 별자리를 작성할 정도로 천문에 능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원을 짓게 하고 다시금 옛날 처럼 그들이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
그들은 후백제가 망한 후에 고려의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雲住寺는 運舟寺라고도 하며 때로는 運柱寺라고도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이 모두 배를 움직이게 하는 선박의 항행술과 연관되어 있다. 탑자리가 별자리와 일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기도터는 1200년전 이땅에 다시 돌아온 사공들이 힘을 모아서 조성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번영하려 한 뜻이 이뤄지지 못하고 껍질만 남아 오다가 이 터에 절이 하나 서있게 되어 구름이 머문다는 운주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터가 매우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다--1999년 5월 3일 아침 10시 30분경--
cf 백제방, 신라방이라고 하여 중국에 나가있던 수많은 우리 동포가 백제와 신라가 망하게 되자 세력을 잃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왔고 고려 초에 왕건은 이들을 규합하여 견훤의 세력과 겨누었으며, 지금의 나주 지방에서 토호세력들이 이들을 도왔음은 역사적이 사실이다. 그 토호세력의 중심축이 바로 돈을 벌어서 귀국한 우리나라 출신의 중국교포들이었던 것이다.
3. 와불은 부처님이 아니라 상제님이다.
운주사에 가면 와불이 서쪽 산에 누워 계신다. 그것도 머리가 낮은 쪽으로 하여 천연 바위에 세겨진채 오랜 세월 누워 계신다. 사람들은 그 부처를 와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부처는 부처가 아니라 도교에서 말하는 상제님이다. 옥황상제인 것이다. 부처님 옆에는 협시보살이 계시지만 절대로 여자는 두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 있는 바위에는 옆에 여성적으로 붙어서 기대고 있는 보살상이 누가 보아도 영낙 없이 상제의 부인상이다. 부처의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모습만 부처이지 그들은 절대로 부처가 아니다.
4. 와불은 조성 당시에 일으켜 세우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이 아니다.
천지개벽사상이 생기자 나중에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세상의 개벽이 일어난다고들 믿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와불이 일어서게 만들려 했던 사람들이 분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바위 밑둥에 채석하려고 손댄 흔적이 역력하다. 아마 그들은 이 모진 세상의 개벽을 원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와불을 처음 바위에 세긴 사람은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려 한 것일 뿐이다. 그들은 결코 이 와불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나중에 만들어진 전설에 의한 조작이다.
와불이 일어서는 날 개벽이 일어난다는 말이 퍼지면서 와불이 새겨진 후 천년이 지난 뒤에 바위에서 뜯어내어 그들을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의 기술로는 불가능한 공사였기 때문이다. 주위에 많은 부처상들이 있으니 이것도 세우려 한 부처라고 믿기 쉬우나 이 와불 만큼은 전혀 다른 신앙대상이다. 도교의 상제님 부부이므로 하늘을 향하여 새겨진 것이며 지금도 그 의미는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이 와불 옆에는 이 바위에서 분리시켜 가지고 만든 입불상이 있다. 만약 이 부처를 일으켜 세워서 뜯어 내려고 새긴 것이라면 굳이 그 옆에 무엇 때문에 수호하는 듯한 입불상을 만들어 세웠겠는가
(6번째 그림 참조)
5. 탑 모양이 왜 이리 색다를까 새겨진 문양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이코메트리에 의한 의미해석)
운주사의 탑에는 이상한 기하학적 무늬가 새겨져 있다. 엑스자 모양의 무늬도 있고 십자가 모양의 무늬도 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XX자도 있는데 아무리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앞에 서서 뜻을 물어 보았다. 당연한 듯이 그 형상이 어떤 뜻으로 나타났다. 엑스자 모양은 사통팔달의 방향성을 의미한다고 했다. 동서남북은 물론이고 3차원의 세계에서 보는 전후좌우 까지를 모두 말하는 방향성이다. 엑스자 모양으로 새겨진 방향은 선으로 연결되는 방향이 아니라 방면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넓은 대우주의 방향성을 입체감 있게 가리키는 조타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 모양의 꽃 잎이 있고 그 둘레에 쳐진 마름모(능형)는 무엇인가 이역시 우주의 기호로서 만다라를 상징한다. 금강문이라고 할 능형 가운데 십자의 화문을 새겨 우주를 하나로 통합해서 보는 상징물로 삼았다. 그러므로 이 탑은 북극성을 상징하는 탑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탑들이 웅장하다기 보다는 거의 마른 모습으로 아주 색다른 느낌을 준다. 키는 큰데 볼륨감이 없다. 이런 형식을 갖춘 예는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탑들은 별자리의 위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배의 돛대를 상징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뻗어 나가게 하는 힘있는 배라고 간주했을 때 이 탑들은 모두가 돛대를 상징하는 셈이다. 돛대가 일렬로 서있는 모습은 법당 뒤산에 올라가서 보면 금방 일직선임을 확인인 할 수 있어서 사실증명이 매우 쉽다. 운주사의 배를 움직이는 돛대라고 보면 의미가 정말 달라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