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돌아가셨다. 1978년 이후 2005년 4월 3일 까지 27년간 교황은
오로지 전쟁으로 죽어 가는 인류에게는 평화를, 억압받는 노동자들에게 행복을, 그들에게 안식을 주어야 한다는 끊임없는 종교인과 권력자들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삶을 살았다.
여러분은 기억하시는지 ?
1986년 6.29 선언이 나올 때 그 배경에 로마교황청이 있었음을----
우리나라가 그 당시 군부 독재로 탄압받아 신음하고 있을 때 다른 종교는 아부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으나 오로지 캐톨릭이 이에 대 놓고 저항하였다. 그러나 세계 정부로 일컬어지는 캐톨릭의 힘이 보이지 않게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했음을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이에 따라 기회 있을 때마다 김수환 추기경은 민주인사에 대한 탄압을 막아내는 발언으로 우리 국민에게 단비와 같은 힘을 과시한 바가 있다.
이러한 저항력의 영적인 배경에는 콜베 신부의 죽음이 있었다.
1939년 폴랜드를 점령한 독일 군부는 저항세력을 통제하기 위하여 수용소를 만들었다. 그런데 갇힌 사람들 중에 콜베 신부(1894 ~ 1941)가 있었다. 그는 아사형을 선고받은 유대인을 대신하여 자기 스스로 자청하여 굶어 죽어갔다. 교황이 된 후에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랜드 출신으로 그가 죽은 수용소 방으로 찾아가 불멸의 초를 세워두고 다시 한 번 결심한다.
" 나는 세계 어느 나라든 어떤 민족이든 인권을 말살당하는 비극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
그는 캐톨릭이 나찌의 유대인 학살을 눈감아 준 일에 대하여 참회했다.
그뿐 아니라, 6-7세기 십자군원정으로 현지인을 학살약탈한 일이라든가, 캐돌릭 고유의 반유대주의라든가, 16세기의 종교재판으로 마녀사냥을 나서서 한 일이라든가, 18세기 남미에서 선교목적을 빙자하여 수 10만 명의 원주민을 학살한 일( 이 이야기는 영화/Mission 을 감상하면 알 수 있음)을 반성 참회했다.
그는 사람들이 나찌와 같은 거대한 권력 앞에서 사람들이 짓밟히고 고통 받는 모습을 직접 눈여겨 보아온 사람이다. 그런 고통을 직접 체험한 것은 나중에 교황이 된 다음 그가 벌이는 인권운동과 평화투쟁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불행 속에서 그는 언제나 희망을 찾아 낸 사람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콜베 신부와 같은 분의 영혼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시샘 많은 자들이 말하듯 캐톨릭 교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둥 , 위선으로 비쳤을지 모르나, 그러한 반성의 눈짓조차 하지 않는 현재의 일본 관료들의 행동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라서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70년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그의 뜻을 받아 들여서 나찌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묘소에서 꿇어 엎드려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종교는 권위가 생명이기에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태어나기가 참으로 어려운 법인데, 그런 결단을 내리게 한 정말 위대한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전에 무릎 꿇고 조의를 올린다.
" 하늘 나라에서도 좋은 일 많이 하소서 ----"
2005년 4월 3일 대영계 제마회장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