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짓을 저지르는 떠돌이 잡귀들"
떠도는 부평초 같이 이곳 저곳을 헤매는 유령들을 <부유령>이라고 한다.
그들은 지박령 처럼 일정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내키는대로 이동하며, 생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마치 살아 있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하여도 육신이 사라진 마당에 처지가 자유로울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할 뿐 아니라 좋은 음식을
대하여도 이를 섭취하지 못한다.
다만 혼자서 그 기(氣)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므로 부유령은 고독한 존재라고 하겠다.
한편 전생의 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행실과 유사한 짓을 하는 사람에게 아주 쉽게 의지한다.
술로 죽은 유령은 술을 밝히는 사람에게 씌워져 들어가고,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노름을 하다가 비관 자살한 혼령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런 영혼의 밀착현상을 빙의라고 하는데, 자신이 고독한만큼 인간에게 일단 빙의하게 되면 그 사람이 싫어질 때까지는 악착 같이 달라 붙어서 떠나지 않는다.
그 뿐 아니라 빙의되는 사람과 특별한 인연이 없어도 심리적으로 상통하는 과정에서 마치 일가친척이라도 되는 양 동화되어 어른 행세를 하기도 한다.
무당이 말하기를 분명히 돌아가신 아버지의 혼령이라고 하는 경우라도, 사실은 의외로 전혀 혈연관계가 없는 잡령일 경우가 많다.
이는 그 혼령이 자기 자신의 신분을 잊어 버리고 마치 대상인물의 아버지 흉내를 내는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러기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기에게 온 것으로 착각한 아들은 '아버님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하며 무당이 시키는 대로 갑자기 절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다른 유령을 보고 절해야 하는 참으로 우스운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부유령이 이를 만족해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흥미 있는 사실은 이런 부유령이 경우에 따라서는 <신 들린 듯한 연기>를 할 수 있게 도우는 점이다.
평소에는 대중들 앞에서 얼굴도 잘 못들 만큼 숫기가 없는 사람이 무대에만 오르면 갑자기 스타가 되는 기적 같은 일을 연출한다.
실제로 텔리비젼에 잠시 나왔다가 사라지는 연기자나 가수들 가운데 이런 빙의성의 인물이 꽤 있다.
그들의 특징은 한 작품에서의 특정한 연기는 잘해도 다른 작품을 시키면 전혀 소화해 내지 못한다는 점으로 드러난다.
말하자면 연기력의 보편성이라고 할까 아니면 다양성이라는 중요한 성장요소가 결핍된 사람 중에 빙의형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무대에서 히트 작을 낸 이후 후속타가 없어 오래 버틸 재간이 없다.
지금은 연기를 쉬고 CF에 나오는 정도이나, 한때는 장기공연으로 대 히트작을 내었던 중견 연극인이 말하자면 그런 사람이었다.
본인은 피로해서 슬럼프에 빠진 것으로 알고 있는 듯 하나 그렇지 않다.
그러나 연기력이 아주 부족한 사람은 그런 잡귀라도 잠시 들어와서 신명나는 명연기를 해 보고 싶은 욕망을 가질 수도 있다.
바로 그런 헛된 욕심을 노리고 영혼이 침입해 들어오는 것이다.
이따금 마약에 손을 대는 연예인이 나오는 것도 그런 영향 때문이다.
무엇인가 해내고 싶어도 더 이상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고 고정된 한계 안에서만 연기가 가능한 경우의 답답함을 마약으로 풀어 보려는 의도이며, 그 역시 빙의된 부유령의 장난이 태반이다.
그런 때는 이를테면 빙의령이 노래하고 춤추며 연기하는 것이므로 자기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을 시킬 까닭이 없다.
부유령은 비단 연예인의 경우 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이와 비슷한 형태의 영적인 간섭을 함으로써, 그들 나름대로 제 2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떠돌이 부유령의 빙의를 막기위하여 헛된 망상과 악습을 버려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