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살은 무업에 종사하는 여성인데 가끔 자기일에 회의를 느끼면 상담을 오곤했었다.
법장이 이 세계로 들어온 이후에도 여러번 만났으나 그녀는 자기 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소리를 하면 대놓고 욕도 할 줄 아는 용기있는 무녀라서 높히 평가하는 터였다.
그러던 윤보살이 어느날 시집을 간다고 했다.
시집을 가고 축하를 받고 그리고 몇달 쯤 지나서였다.
"법장님, 큰일 났어요 ! "
"왜요 ? 무슨 일인데요 ?"
" 주인이 새벽만 되면 바깥으로 돌아요."
이게 뭔 소린가 ? 신접살림이랄 것도 없지만 그런대로 규모를 갖추고 사는데 신혼 일주일도 안되어 자꾸만 신랑이 새벽만 되면 바깥으로 나간다고 한다. 혹시 감춰 놓은 색시가 따로 있어서 그런가 하고 뒤를 밟아 보기도 했단다.
" 글쎄 슬며시 일어나서는 뒤도 안돌아 보고 집 근처에 있는 시민공원에 가서 추운 날씨인데도 우두커니 앉아있는 거예요. 누굴 기다리나 했지만 그게 아니고 해가 뜰때 쯤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거지 뭐예요, 정말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예요 "
몽유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숨은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법장은 윤보살에게 두분이 한번 찾아 오라고 말했다.
윤보살의 남편은 박씨였는데 8.15해방 때까지만 해도 집안이 괜챦게 살다가 육이오 사변 때 몰락하여 거지신세가 되었다가 다시 재기하여 동대문시장에서 포목가게 도매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이 50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자 신세타령 겸 윤보살을 만났다가 눈이 맞았다고 말했다.
법장은 필시 무슨 보이지 않는 곡절이 있다 싶어서 두 사람을 앉혀 두고 먼저 남편인 박씨의 선조령들을 불러 세웠다.
"누구든 박씨의 뒤를 봐주고 있는 영가들은 다 모이시요. 나하구 얘기 좀 합시다 "
그러자 박씨의 뒤끝에서 슬그머니 몇 사람의 영가들이 나타나더니 짜증이 난듯이 말했다.
" 난 이 아이의 할매요. 글쎄 어디 장가들 데가 없어서 무당집구석으로 장가를 들어 ?
못된 년놈들, 우리 집안이 그래도 양반인데 쌍것중에 아주 천한 무당을 마누라로 삼다니 -- 절대로 함께 재울 수 없어--"
법장은 그럴 줄 알았다 싶었다. 하지만 할 말을 참고 이번에는 윤보살의 조상령들을 불렀다.
그러자 이쪽은 더 가관이다. 윤보살 쪽은 외할머니가 나타났다.
" 흥 , 지까짓 것들이 뭐 유세를 부려 ? 정말 아니꼬운 것들이-- "
말하자면 두 집안의 귀신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면서 신랑을 밖으로 끌어 내는 것이다.
신랑은 영문도 모르고 자다가 밖으로 불려 나와서 싸움에 휘말리는데 재미 있는 점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데 있었다. 전혀 밖으로 나온 기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법장은 두 집안의 귀신들이 그러지 말고 서로 화해하도록 종용했다.
어차피 두 사람이 살게 되었으니 집안의 격차 같은 것이 뭐가 문제냐 ? 서로 외로운 사람들 끼리 만났으니 잘 살게 밀어 줘야 할것 아니냐 ? 그게 조상된 도리가 아니냐 하고 별 소리를 다하면서 설득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법장은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 내가 귀신들 한테 메달릴 것이 뭐냐 ? 살아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몽땅 쫓아내 버리자 "
법정에서도 화의가 안되면 법관의 판결로서 종결짓는 것과 같다.
법장은 도력으로서 그들을 물리친다고 윤보살 부부에게 말하자, 그들은 내말에 기꺼이 찬성했다.
물론 그들은 조상령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법장이 그들을 모두 물리쳐 버리고 다시는 간섭을 못하게 하자, 새벽에 나가는 일도 없어지고 지금 그들은 포천에서 아주 유명한 무당이 되어 일을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