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3 14:59
[제마법문] 내마음의 여덟 부처님들
1
언젠가 수유리 화계사에서
10 살 정도의 어린 시절 공부를 하던 때의 일이다.
거기의 견향스님은 늘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띄고 사신 분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러시지만
누가 뭔 이야기를 해도 늘 싱긋이 웃음을
보여주시는 분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화계사는 숭산 행원스님의 조실인데
거기에 또 더 큰 스님도 계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그 자리를 떠올리며
무슨 까닭으로 견향스님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있을까.
미군들이 화계사에 와서
둘러보자 당시에 아직 고교생이었던
견향스님은 영어로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마침 뜨락에 일제시대에
만든 보살상이 놓여 있으니
미군들로서는 그게 뭔지 무척이나 궁금했던가 보다.
왜냐하면 그 보살상은 얼굴이 특이하게 생긴데다가
약간 보라색을 띈 돌로 깎아 만든 멋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웟츠 디스 ?"
대답을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막힌 답이 견향스님의 입에서
" Zee - Zang ~ 보오살 "
그러자 미군들은 모두 따라한다.
" Oh, Zeeeee--- Zaaaang Bo----- Sal"
그날부터 견향스님은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들로부터
지장보살 님이라는 별명이 붙으면서 갑자기 보살님으로 등극하셨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아직도 그분은 내 마음속에 늘 지장보살 님이시다.
화계사에 가시면 여러분도 그분을 한번 만나 보시라.
속수로 지금 여든 가까이 되셨으니 예를 올리실 때도 조금쯤
유의 하시기 바란다.
2
성보스님은 나에게 15 살 때
2 년간 태권도를 가르쳐 주신 스님이다.
아무도 내가 꽤 높은 유단자인지 모른다.
그분 덕에 그렇게 되었는데
지금 나이가 들어 보니
그 어린 시절에 추운 겨울날 자재암 관음폭포 앞에서
다리를 치켜 올려서 앞차기 뒷 차기 돌려 차기를
열성껏 훈련시킨 그분이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참으로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그분을 만난것은
대구였다.
병역문제를 해결해 주신다고
날 데리고 그 먼데 까지 가서
고생을 대신해 주신 일이 생각난다.
몸의 건강은 물론이고 신변에 대한
여러가지 사항을 지켜주신 정말로 고마운
은인이다.
이 분이 안 계셨다면 아마 나는
허약한 몸으로 요절했을 것이다.
어찌 내마음의 부처님이 아니시겠는가.
속성이 청송 심씨였고 고향은 전주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살아 있는 동안 다시 만나기
어려운 분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더욱 나의 마음속에 부처님이 되셨다.
세화나... 너 이거 아냐 ?
여자가 초야에
처녀인 척하려면 달거리 때 초야를
맞으면 되거든....
하시던 얄궂을 만큼 장난꾸러기 스님이기도 했다.
3
만유스님은
누가 보아도 스님이셨다.
둥글고 원만한 상이 쭈그러지지 않아서
늘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분이셨다.
그런데도 괴퍅한 면이 있어서
뭔가가 먹을 것을 숨겨놓고
조심스레 누군가와 나눠먹는
희한한 버릇을 갖고 계셨다.
어느날인가
뒷방으로 잠깐 오라고 해서
곶감을 두개나 빼서 하나를 내가 먹으라 주시면서
이런 말을 하신다.
"아, 이제 이 곶감을 마저 다 먹고 나면
고향생각이 날 것 같다."
공부하러 일본에 갔을 때
그말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먹으라고 주신
곶감을 나 역시 하나하나
빼먹다가
보니,,,, 겨우 하나만 남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하나를
먹을 때까지 1 년이 넘게 걸려
나중에는 돌맹이처럼 딱딱하게 굳었었다.
만유스님의 그말씀은 이내 나의 말로 바뀌게 되었다,
"곶감 한 개 마저 다 먹으면 집생각 날것 같아..."
어디로가든 나의 자리를 찾지 못하던 시절에는
고향과 집은 늘 부처님의 본래 마음을 잃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 본딧자리를 가르쳐 주신
만유스님 역시 나의 부처님이 되셨다
4
친구이자 스님이자 또 해괴한
모습의 수행자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영도스님은 지금부터 약 12 년 전에
지병으로 입적하셨다.
동갑에다가 모시던 분이 같다는 동질감으로
인하여 꽤나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렀던 분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영혼세계의 지식을 많이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모자라 더 터득하고 싶어서
자주 나의 얼굴 보기를 원하곤 했었다.
중생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려는 방편으로
풍수라든가 부적이라든가 하는 방술에 취향이
높았으나, 돌아가기 몇년전부터는 관심이 사라지고
그 대신 선사에 대하여 높은 관심을 두셨던 걸로
되새긴다.
스님일 수 밖에 없었으므로 게다가,
이미 큰 스님이 아닐 수가 없는 상황이 되자,
지금까지의 모든 게 번거롭고 가치가 별반 느껴지지
않으셨음이리라.
그래서 크고 작은 중생의 인연에
대하여 늘 관심이 많았으니,
요즘도 가끔 영도야 하고 부르고자 하면
이름 보다도 먼저 그 얼굴이 더 빨리 다가온다.
그러니 어찌 나의 부처님이 아닐 수 있으랴.
나이 들어서도
선사와 퇴마사를 순식간에 오가는 일로 지새는
나같은 어리석은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영도스님은 제도권에 갖힌 안타까운 자유인이셨다.
친구 영도를 위하여
영도스님을 위하여
여기에 삼가 조사를 올린다.
"봄이 겨울 가는 소린줄 알다가
여름오는 소리로 들리자 마자
가지도 말고 오지도 말라 버럭 화를 내니
설악의 봉우리엔 눈이 내리더라....
4 월 하고도 27 일날
아직도 모든 계절은 그저 겨울이어라"
5
무량사의 김시습 선생님은
생육신으로 세상 버리신지
500 년 가깝지만 여전히
대단하신 분이다.
영정을 모신 사당 건물에
계시지 않고
주로 산신각에 머물러
만수산 산신으로
중생들을 인도하여 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흰색의
두루마기를 걸치신 모습은
사대부의 표표한
생전모습 그대로이다.
어째서 그렇게 흰색옷을
즐기시냐는 질문에
응답이 매우 찌릿하였다.
전각의 삼불님들께서는
황금색옷을 새로 갖춰 입으셨지만
이 절에서 모시는 영가분들을
위해서는 여전히 소복을
입고싶다고 하신다.
극락전에 계신 분들은 몇년전에
개금불사를 하여
화려한 황금색 옷을
입고 계시며,
예전의 석고로 만든
음울한 분위기의 옷은
벗어 던지셨다.
해가 가면 달이 뜬다고 했으니
세상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어찌 우리 마음대로 유지 되겠느냐고
가슴아린 말씀을 귀띔해 들려주신다.
참으로 훌륭하신 선현이시다.
몇년간 아미타불의
황금색으로 개금하신 모습을
뵙기가 역겨워
무량사를 찾지 않던 나로서는
김시습 선생님같은
마음의 부처님을 만나고 싶기에
여전히
고풍창연한 무량사를 참배한다.
6
종교가 다르면 마음의 부처님으로
모실 수 없을까 ?
장선생님은
나에게 오실 때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않으셨다.
신의 유산을 상속받으라는 책을 구상하고
일부 글로 옮길 때
이분은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도와줄까 ~ ?? 하면서
오셨다.
문장력이 대단하시다는 점은
소문으로 익히 알고 있었으나
정말 장선생님께서 나에게
오실 줄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정한 카톨릭 신자분이셨다.
내자도 카톨릭 신앙을 좋아하고
그래서
이분의 믿음을 존중한다.
가끔
양평의 풍수원 성당에 들려
참배올리는 까닭도
이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신의 유산을 상속받으라는
책을
완성시키고 나서
그만 가실 줄 알았으나
2 0 년 가까이 머물르고 계신다.
최근에는
잘 찾지 않았으나
이분의 무덤가에는
참으로 멋진
무덤 둘레석이
아래 뜨락에 추념비로서
반달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장선생님은 진정한
애국자분이시다.
그리고 영원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진실로 사랑하시는
부처님이시다.
반달이라는 동요는
정말 장준하 선생님이
거쳐온
일생을 그대로 새겨놓은 듯하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마니가
물 길으러 갈 때
치마끝에 찰랑찰랑
채워 줬으면....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애국자는
그렇게 민주나라를
만들다가
독재에
희생되시는가 보다.
7
아주 낡은 일본식 목조건물에
대영계의 창시자인
구마모토 아끼라 선생이 계셨다.
87 년의 겨울에
그곳을 방문하여
무언의 인가를 받았다.
hanawa nanno hana ,
hahaomi hana
번역하자면
꽃이라면 무슨 꽃
어머니 생각하는 꽃
what a flower it is ...
respiring mother's breath
이렇게
일본의 단가는
간략하게 의표를 찌르는 싯구를 가리킨다.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여
훌륭한 단가를 보내 주었는데
답장을 안 보내서 미안하다
...고 하셨다.
그날 이후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가지
모습으로 보여주시는
신령치료에
뜻을 펼쳐 보라고 하신다.
그 분의 인정을 받아
대영계라는
책을 번역해 내고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닦아 왔다.
물론 그동안 여러차례
변신을 거듭했으나
얼마나 길고 먼 길인지
아직 그 끝을
보지 못하여
무엇이 끝인지
잘 모르겠으며
아마도 자신이 스스로 해야하는
나만의 길에서
끝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이라...
이젠
많은 제자들이
다시 이 길을 간다.
나라와 민족을 초월하는
영혼과 진실된 믿음의 세계로.
아마도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마모토 선생님도
빼 놓을 수 없는
나의 영능자이시며 부처님이시다.
8
부르나 존자를 만났다.
부처님의 설법을 잘 하시던 분이니
설법의 요체를 물었다.
"설법의 요체라기보다는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말이 나오기 이전에 먼저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님의 뜻이 제대로 전해집니다."
설법제자로서 최고의 덕망을 보여주신
분이므로 설법할 시에는
이분이 나의 가장 큰 부처님이시다.
곁에 계시던 가전연께서는
"비유비공이니 역유역공이라야 하지요"
아마도
존재함이 사라져야 공도 사라진다면
존재함이 있어야 또한 공도 존재함이라는 뜻일 게다.
가전연 존자는 부르나 존자를 도와주시던 분이다.
논리정연하여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논리를
지니신 분이다.
게다가 부처님 제자분들 중에서
수보리 존자와 목건련 존자 그리고 아누르타 존자는
분명히 영능력자들인데,
무엇 때문에 오늘날의 부처님 믿는 사람들은 영능력자들을
제자로 두신 부처님의 참뜻을 잘 알지 못하고
거역하는지 모르겠다.
참선하다가 수행자에게 신이 오면
미쳤다고 해서 정신병원에 보내는 실정이다.
이래 놓으니
부처님의 시대보다 영적 수준이 훨씬 못한 상태가 아니겠는가.
신이 오면 다 미친 사람인가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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