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5 14:02
[제마주술] " 아이 낳는 도끼주술 "
혼인한지 몇 년이 지나서도 아이가 안 들어서는 까닭으로 마음 고생하는 부인에게는 특별난 주술법으로 도끼를 배게머리에 놓고 자면 아이를 가지게 된다고 하여 무당들이 권유하는 일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주술법을 과연 언제 누가 어떻게 무슨 사연을 가지고 확정시켰을까요 ?
민속백과사전에서 찾아보자면 도끼는 본래 막힌 혈을 뜷어서 수정이 잘 되게 작용한다는 그러한 속설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원시시대부터 도끼를 주술법으로 사용해온 우리의 조상님들께서 굳이 임신과 연관지을 만큼 의학지식이 많았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양으로 보나, 힘으로 보나, 어쨌든 도끼는 내리치는 힘이 강한데다가, 아마도 농경사회에 접어들 무렵부터 땔감으로 장작을 패는데 쓰인 용도가 퍽이나 우람차므로 , 남성적인 생식의 힘을 상징하는 유감주술법으로서 도끼부작을 활용한 주술법이 민간에게 쉽사리 채택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면 특별나게 이 주술법에 연관되어 등장하시는 인물이 한 분 계십니다.
누구신가 하면 사명대사도 아니고 서산대사도 아니신 그야말로 오래전의 원로급에 속하시는 우리의 원효스님이시지요....
이분이 어느날 서라벌에서 " 수허몰가부 아작지천주 (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라 하셨다지요.
그렇게 나타내신 노래를 뜻으로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 그 누가 자루가 빠진 도끼날을 나에게 주겠는가 ?
(그것이 주어진다면 내가 빵빵한 도끼자루 역할로 끼워져 완벽한 도끼가 된 다음에 )
하늘을 받칠만한 대빵 큰 기둥뿌리 하나를 멋지게 깎아서 세워 보겠노라."
나중에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이라는 훌륭한 아들을 낳았으니, 신라 유학의 기둥뿌리 하나를 정말 제대로 만든 셈이지요.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이런 말을 하셨더라면, 아마 영락없이 여성을 깔보는 유언비어 유포라 하여 미투운동에 걸려들어 메스컴에 제시딱 올라가 고생께나 하셨을만 합니다만, 오래 전의 통일신라 시대에야 별로 그럴만한 빌미도 없었고 , 오히려 왕의 귀에 그 노래소리가 들어가서 원효스님이 바라던대로 요석공주와 부부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따지고 보자면 , 자루가 빠져서 없는 쇠부분만의 도끼를 가지고서 입면도로 잘라 스캐닝 해보면
과연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상징하므로 너무나 신기합니다. 그 시절에 그걸 이미지로 해석하고 대뜸 그 숨은 뜻을 알아차려서는 요석공주의 재혼 인연 맺는 일로 추진하신 왕족들이 계셨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인 해프닝은 두고두고 큰 주술적인 기법으로 남게 만들었으며, 그것이 뭔가 하면 바로 요즘도 통용되는 잉태 기원 목적의 도끼주술법입니다. 아이 못낳는 부인이나 딸만 낳는 부인에게 이 주술법이 통용되어서 이따금 기쁜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우리 원효대사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2018년 3 월 14일 원효대사님, 묘연제 보살님 , 장선생님
[참고자료]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도끼
내용
쐐기를 닮은 쇳조각 한쪽에 날을 내고 반대편 두꺼운 쪽에 날과 평행으로 긴 자루를 박았다. 나무를 찍는 데도 쓰며, 날 반대쪽인 뿔로는 돌 따위를 깨기도 한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河緯地)가 남긴 ≪유권 遺卷≫에 도끼를 가리키는 ‘부(斧)’ 자가 보이며 ≪몽어유해 蒙語類解≫에서는 이 글자를 ‘독ㅅ긔’로 새겼다. 한편, 정병하(鄭秉夏)는 그의 ≪농정촬요 農政撮要≫에서 ‘독긔’로 적었다.
도끼에는 때림도끼·양날도끼·손도끼의 세 가지가 있다. 때림도끼는 볼이 좁고 자루가 길어 굵은 장작이나 뗏목 따위를 패는 데 쓰며, 양날도끼는 날을 위아래 양쪽에 낸 것으로 한쪽은 날카롭게, 다른 한쪽은 이보다 조금 무디게 내서 용도에 따라 쓴다.
손도끼는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작은 도끼를 이른다. 도끼가 닳아서 더 이상 벼릴 수 없게 되면 ‘날달기’라 하여 V자형의 쇳조각을 덧씌워서 새 날을 붙인다.
장작을 팰 때 바탕나무인 모탕이 필요하다. 크기와 형태는 일정하지 않으나 단단한 나무 뿌리 부분이 모탕감으로 알맞다. 이것은 도끼날이 상하는 것을 막아 주는 동시에, 도끼질을 하는 데 적당한 높이를 유지해 준다.
나무가 굵어서 한 번에 팰 수 없을 때는 찍은 도끼를 뽑지 않고 다른 도끼로 마주 찍는데, 이것이 ‘맞도끼질’이다. 혼자일 때는 먼저 찍은 도끼 자국에 쇠쐐기를 물려 꽂고 반대편에서 찍는다.
6·25전쟁 무렵까지도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는 가을철에 2, 3명이 도끼를 가지고 동아리를 지어 장작을 패러 다녔다. 각 집에서는 초가을부터 겨우내 땔 통장작을 미리 사들였으며, 늦가을 무렵 이들을 불러 때기 알맞도록 패서 처마 밑 같은 곳에 쟁여 두었다.
이들은 각기 도끼를 가지고 다녔으며 모탕까지 제 것을 쓰는 이도 있었는데, 흔히 단골관계를 맺어 해마다 같은 패들이 일을 맡았다.
한편, 여유가 없는 집에서는 미리 패놓은 장작을 시장에서 사서 썼다. 한 아름 정도로 묶은 것이 한 단, 다섯 개씩 늘어 놓아 정자(井字) 모양으로 100개씩 쌓은 것이 한 강다리이며, 이 밖에 차곡차곡 가로세로 여섯 자로 쌓은 것을 한 평이라 일러서 사고 파는 단위로 삼았다.
도끼는 신의 상징이나 예배의 대상물이기도 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양날도끼를 신성시하였고, 크레타섬의 남부에서는 제단 위에 도끼를 올려 놓은 예배당이 발견되었다. 또, 도끼로 점을 치며 도끼에 마귀를 쫓는 힘이 있다고 믿는 곳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작은 도끼 서너 개를 끈으로 꿴 것이나, 이를 넣은 주머니를 부인들이 허리에 차기도 하였고, 특히 혼인 첫날밤 신부는 이 도끼들을 요 밑에 깔아 두었다. 또, 이렇게 하면 아이를 못 낳는 이도 잉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도끼에는 여성의 생식기를 쪼개서 막혔던 부분을 뚫는 주력(呪力)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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