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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수련법문] "원효스님과의 대화" ..... 삼매공(三昧功)이란 무엇인가 ?





원효스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 가장 강조하시는 부분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속에서

수행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삼매라고 하는 과제에 대해서도 이런 말씀을 하시지요.


" 수행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이미 중생을 구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자네가 어찌 하면 삼매경에

들 수 있는가 늘 걱정일 거야. 너무 어리석지 않은가?  일에 열중하여 그 일 이외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마음도 두지 않는다면 바로 그런 상태가 삼매인데, 밥 먹으면 맨손이 아닌 이상 수저사용법을 익히는 것과 다름없지. 세상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어릴 때 수저사용법을 따로 익히던가 ?  밥을 먹다 보면 저절로 숫가락질과 젓가락질을 배우고 익히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수행하는 사람들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나 벽 앞에 앉아서 참선 한답시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단 말일세. 그럴 시간이 있거던 차라리 경을 외우거나 법글이라도 짓는게 나은 일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걸 배운다고들 말하는데, 일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부끄럽다. 양심이 없는 짓이다.  수많은 사람이 수행법을 찾아 헤매지만 그릇된 생각을 하는 것이지. 자기가 하던 일에 열중하여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성껏 한다면 그 게 바로 삼매가 아닌가 ?"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저로서도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구나 하는 의문과 궁금점이 생깁니다.



" 그렇다면 법사로서 일을 하는 저로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삼매로 들어가는 방도입니까 ?"


스님이 저를 보시는 눈이 뜨겁습니다.


" 그래, 자네는 나를 닮았군. 한 평생 공부하고 닦고  설법하고 기도해 주고 그런 일만 했는데, 끝까지

나는 내 자신이 스스로 성불을 했다는 느낌도 없었고 그 누구도 나에게 생불이라는 소리도 안했다.

 그런 성불이니 뭐니 하는데 관심조차 없었고, 나를 성불케 해준다는 말씀조차 큰 스님에게

들은 바 없어...누구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 기껏해야  스님은 스님인데 좀 이상한 스님 소리를 많이 들었어. 자네도 역시 그렇겠군. 난 자네가 삼매에 들어가는 방도를 묻는 게 옳지 않다고 본다. 자네는 지금 나와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   삼매에 들지 않았다면 과연 나와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는가 ?"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삼매에 들지 않았다면 어찌 원효스님과 이야기를 할수 있겠는가 하시는 그 말씀이 쾽 하고 소리를 내듯 가슴에 와닿습니다.


한참 삼매를 통하여  들여다 보는 불법에 대하여 생각에 잠겨 봅니다.


자신을 가리켜서 이미 삼매에 들어간 사람이란 말씀인지 아니면 영혼대화를 할 줄 아니까 그렇게 보신다는 말씀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시 불법의 기본 중 하나라고 할 적정삼매의 열반적정이라는 형식을 놓고 보자면 모든 사람이 그러한 불법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법치주의 기본인 범인의 준법사회성에서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만법의 기초가 되는 불법(佛法:부처님 법)으로 깨닫는 눈으로 봐도 그 말씀은 정당합니다. 공평무사한 일이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차별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식의 속세교육을 받은 우리로서는 어디까지 경쟁을 해야 하나 하는 측면에서 고민합니다. 말로만 평등사회이지 맨날 시험을 당하는 이 사회가 어디가 평등하냐고 새삼 울부짖게 만드니까요 . 하지만 불법을 공부하는 우리는 불법이 혼자 하는 공부임을 잘 알기 때문에 경쟁이 존재하지 않음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효스님의 삼매공 이론도 그렇습니다.  비록 스님 자신은 세상을 버린지 오래되었으나 애써 자신을 찾아준 저를 향하여 굳이 그렇게 말씀하심으로서 , 앞으로도 꾸준하게  노력하여 언제 어디서나 무애삼매로 이어지다가 어느날 비로소 열반을 구하라 하시는 격려의 뜻일 겁니다. 불법은 어디에 걸치는 바도 없고 떨어져 나가는 법도 없는 이른바 무관무집산(無關無執散)의 법이거든요.  따라서 부처의 영혼을 통해서 얻어지는  진리이므로 삼매를 통하지 않고 불법의 여여를 논하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스님께서 다소 어렵게 펼쳐지는  제 짧은 생각을 읽으시고 말씀을 이어 나가십니다.

말씀이라고 해도 겉으로 드러나서 말로 하는 말이 아니라 무언의 말이므로 형색이 없음으로 인하여 알아듣기가 거북하여야 함에도 전혀 그런 장애나 거리낌이 없이 전해집니다. 가얏고를 탈 때의 손끝울림 처럼 가락을 타듯이 아주 리드미컬하게 말씀들이 전해 옵니다. 누가 보아도 기이한 일입니다. 무언의 대화이니 내 생각처럼 퍼져서 감흥이 없어야 당연한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 삼매에 드는 사람들이 인연을 어찌 생각하느냐 하고 물으면 대체로 이런 말을 하지.  인연은 인연이고 삼매는 삼매라고 하더구나.

그렇지가 않거든. 무상삼매에 든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순간이라도 인연이 끊어져 반연하는 번뇌에서 벗어나고 마는데, 그런 걸 전혀 못 느낀단 말일세."

 

잠시 말씀을 끊듯이 제가 대뜸 앞서 나가니 선뜻 자리를 비껴 주십니다.

어디 한 번 얘기 해보라시듯이...


" 무상 삼매라 하면 마음에 맺힌 것이 없는 삼매지경이므로 인연이 따로 있을 리가 없지요. 인연이란 본래 생김도 사라짐도 없는 무상(無常 之 無生無滅 )의 행(行)일 뿐이겠습니다."


아마 저의 대답이 명쾌했는가 봅니다.

입술 양끝이 옆으로 벌어지며 솟아 오르는 소년 같은 미소를 띄우십니다.

그리고 아주 느린 말투로  말씀하십니다.


" 천년이 넘도록 수많은 제자를 지켜보아 왔으나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 보네.  스스로 묻고 답하지 않으니 가르침도 없고 배움도 없을 것이나, 내가 있어서 또한 자네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다고 말하니 고맙구나."


원효스님은 가르침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한 몸에서 이뤄지니 마치 나의  생각인듯 착각, 망상하기 쉬움을 경계하시는 말씀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2016.6.9.





계속





[제마법문] "원효스님은 사문의 경지을 넘어서셨다"





ㅇㅇ 금감삼매경의 입실제품 끝부분에 보시면 스님의 사문 초월적 해탈자의 자격론이 등장합니다.

잘 읽어 보시면 뜻이 통하실 겁니다. 비록 불가의 사문(수행승)으로 입문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수행을 잘 해서 열반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비록 수행중의 사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경배하여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어느 경전에도 나오지 않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서 이렇게 상세하게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것이오니, 불법의 지혜를 잘 익혀서 중생들에게 공양하여 열반하시고 주위의 모든 분들을 훌륭한 불자로 거듭나게 만드셔야 하겠습니다.

 

금강삼매경에 이러한 대중불교 대중열반이라고 하는 개념이 드러난 것을 보더라도, 이 경전이 원효스님의 작품임이 명백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거든요. 수행한답시고 자칫하면 너도 나도 다 자기가 무불통신으로 열반한 열반부처라고 경망지동으로 날뛸 터이니 말입니다.


 

 

 

 

入實際品 (후반)


佛言.三解脫者 虛空解脫 金剛解脫 般若解脫, 理觀心者 心如理淨 無可不心.

大力菩薩言.云何存用 云何觀之.

佛言.心事不二 是名存用, 內行外行 出入不二, 不住一相 心無得失, 一不一地 淨心流入 是名觀之.

菩薩, 如是之人 不在二相, 雖不出家 不住在家故, 雖無法服 不具持波羅提木叉戒 不入布薩, 能以自心 無爲自恣 而獲聖果, 不住二乘 入菩薩道, 後當滿地 成佛菩提.


[해석]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세가지의 해탈을  이룬 사람이란

허공해탈, 금강해탈 그리고  반야해탈자가 되어야 하니,

그 사람은 이치(理)에 맞게 마음이 깨끗해야 하고 그 이치를 관하는 마음 또한 그렇지 않은 마음일 수가 없다.


그러자 대력보살이 묻기를,

" 어떻게 세가지 해탈을 지켜야 하고 또한 무엇을 들여다 봐야 하겠나이까 ?"


부처님이 답하시기를,

" 마음이 둘로 갈라지지 않음이 곧 지킴(存用)이요, 안으로 들여다 보면서 밖으로는 부처님의 행(行)을 하면서 그것이 두가지로 나뉘어지지 않아야 함이라. 둘이 아닌 그 마음이 어느 하나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니, 그것을 가리켜서 들여다보는(觀) 일이라 함이라.


.... 대력보살이시여,

그런 해탈을 이룬 사람은 두가지 모습에 머물지 않는 법이며 , 집을 비록 떠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실제로는  원래 있던 그 집에 머물지 않는 사람이며,,,,  사문의 법복을 입지는 않았거나 , 바라목차의 계를 받지 않았거나 보살의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마음이 이미 지킬 것은 다 지키고  성스러운 성과를 얻었으므로, 이승(二乘)에 머물지 않는 보살도를 이룬 사람이라 할 수 있으니, 당연한 말이나,  보살의 자리에 가득차게 되어 비로소 부처의 지혜를 얻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大力菩薩言.

不可思議. 如是之人 非出家 非不出家. 何以故, 入涅槃宅 着如來衣 坐菩提座, 如是之人 乃至沙門 宜應敬養.

佛言.如是. 何以故, 入涅槃宅 心越三界, 着如來衣, 入法空處, 坐菩提座 登正覺一地. 如是之人 心超二乘, 何況沙門 而不敬養.



[해석]



대력보살이 말하기를,

" 불가사의 하옵니다.  그런 사람은 수행하려고 출가한 것도 아니고 출가하지 않은 것도 아닌 걸로 봅니다. 무슨 까닭인가 살펴 보자면 (-何以故) 그 사람은 여래의 옷을 입고 열반의 자리에 들어서 있으므로 이미 보리좌에 앉은 셈입니다. 하오니 어찌 사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미 이승(二乘)을 넘어선 그 사람을 만나서 공경 하며 공양을 바치지 않겠나이까 ?"

부처님께서 이에 대하여 말씀하시길,

" 그렇구나, 그런 사람은 열반의 자리에 들었고, 그 마음자리가 삼계를 뛰어넘었으므로 여래의 옷을 입음은 물론이고 법공의 차원으로 들어 섰거니와,보리좌에 앉아 정각을 깨우친 사람이라 하겠으니 , 당연히 이승(二乘)을 통과한 분으로서 어찌 사문이 공경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






大力菩薩言.如彼一地 及與空海, 二乘之人 爲不見也.

佛言.如是. 彼二乘人 味着三昧 得三昧身, 於彼空海一地 如得酒病 惛醉不醒, 乃至數劫 猶不得覺, 酒消始悟 方修是行 後得佛身.如彼人者 從捨闡提 卽入六行, 於行地所 一念淨心 決定明白, 金剛智力 阿鞞跋致, 度脫衆生 慈悲無盡.


[해석]


위의 해석은  삼매를 얻은 그것이 바로 열반인 줄 잘 못 알고 살아가는 허튼 수행자들에 대한 경계이므로 자세한 번역은 생략합니다.

대충 아래 문장의 내용은 그렇습니다.

"삼매에 탐착하여 공바다에서 첫자리에 들려고 하는 것은 마치 술취한 사람이 술이 깬 다음에나 열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라...."

이를 테면 삼매에 든 사람이라고 하여도 그걸로 만족하지 말고 이행(利行)을  중시하면서 정진 그리고 또 정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大力菩薩言.如是之人 應不持戒, 於彼沙門 應不敬仰.

佛言.爲說戒者 不善慢故 海波浪故, 如彼心地 八識海澄 九識流淨 風不能動 波浪不起. 戒性等空 持者迷倒 如彼之人 七六不生 諸集滅定, 不離三佛 而發菩提, 三無相中 順心玄入, 深敬三寶 不失威儀, 於彼沙門 不無恭敬.菩薩, 彼人者 不住世間 動不動法, 入三空聚 滅三有心.

大力菩薩言.彼仁者 果滿足德佛 如來藏佛 形像佛, 如是佛所 而發菩提心, 入三聚戒 不住其相, 滅三有心 不居寂地, 不捨可衆 入不調地 不可思義.

爾時 舍利弗 從座而起 前說偈言

具足般若海 不住涅槃城 如彼妙蓮華 高原非所出

諸佛無量劫 不捨諸煩惱 度世然後得 如泥華所出

如彼六行地 菩薩之所修 如彼三空聚 菩提之眞道

我今住不住 如佛之所說 來所還復來 具足然後出

復令諸衆生 如我一無二 前來後來者 悉令登正覺

爾時 佛告舍利弗言. 不可思義. 汝當於後 成菩提道, 無量衆生 超生死苦海.

爾時大衆 皆悟菩提, 諸小衆等 入五空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