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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법문] "깨달으면 뭐가 달라지나 ?"

깨달음을 얻는 그 순간  사람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궁금합니다. 다시 말해서 살아있는 부처와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깨우침이라든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과정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그 누구도 과학적으로 검증을 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뇌파를 그리는  뇌파 측정그래프를 보면  알파파의 분포가 늘어나서 통상적으로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형평사고나 다면관찰 사고나 통시적 사고나 그런 면에서 생각하는 차원이 많이 변한다든가, 어떤 상황에서도 천하태평으로 마음이 끄떡도 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그런 따위의 이야기는 이미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는데, 그런 두뇌작용의 변화를 제외하고 뭔가 변화를 하는데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들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그럼 뭐가 또 달라지는지에 대해서 알려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가 깨달았다는 말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그렇다는 이야기니까 너무 과장되게 생각하지는 마시고 잠시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1) 번뇌(걱정) 가 사라지니 생각에 터울이 없어집니다.


고정관념이나 습관적 사고방식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인간성이 변합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의 차원이 달라지니까 감정을 표현하는 마음도 변화한다는 그런 말입니다.



(2) 영혼사고가 이뤄지므로 두뇌사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절대이성적 사고로의 이동과 변화가 생깁니다.


두뇌사고를 할 때는 모든 사고를 물질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형이상학적인 추상개념은 어떤 현상을 통해서 확정시키는데,

두뇌작용을 통한 생각에 의한 생각이 아니라 영혼이 직접 개입하여 생각하므로 , 당연히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던 공포라든가 불안감이라든가하는 잡다한 훼방요소가 없어져서 맑고 고요한 생각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거듭 말하자면,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본각(本覺:불성으로 움직이는 사고방식)이 모든 것을 좌우하므로 우리가 말하는 인간적인 취약요소라 할 격한 감정적 사고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3)  관찰하는 눈매(시야와 관찰력)가 달라집니다.



깨달은 사람의 눈은 맑고 고요하며 교교한 빛을 띕니다..  왜냐 하면  뇌파가 변하여 이뤄지는 일로서 항상 알파파와 씨타파가 교차하는 가운데 베타파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불성을 지닌 영혼으로 전환된 영혼이 깃든 사람은 당연히 우리들 개인의 일 뿐 아니라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한 눈이 트여서 본질을 꿰뚫어 봅니다. 누군가 이런 깨달은 분을  속이려고 하여도 이미 그들의 속을 모두 다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고 계십니다.

어느날 그분이 찾아 온 사람이 자기를  알아 보나 못알아 보나 하고 찾아온 사람이 직접 제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 스님께서는 제가 무엇 때문에 온줄 아시나요 ?"

... 그러자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

" 자네는 자기 일에 대한 조언을 들어 보려고 온 게 아니라, 내가 자네를 알아 보는가 하는 것 하고  무엇이 궁금한지 아는지 모르는지 시험해 보려고 왔군 그래. 기껏 여기까지 와서 자기일이나 묻고 가지 왜 늙은 중이 공부를 했는지 안 했는지나 물으려 하는가 ? 그렇게 시간이 남아 도시는가 ?" 하셨답니다.




 


(4)  사고의 방편요소가 언어감각에서 행동이나 실존감각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서 모든 걸 생각하지만 깨달은 사람은 영혼의 작용이 형상화하여 감각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그냥 우리가 머리로 생각하면 모든 걸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어떤 개념으로 요약하기 쉬우나, 깨달음을 얻은 분들은 신기할 만큼 본질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정확한 구도를 압니다.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는 이유는 바로 직관이라고 하는 감각적 요소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논리구조가 전혀 아닌 감각구조로서의 사태파악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예로써,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사악한 사람인지 즉석에서 간파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합니다. 물론 드러내서 내색은 하지 않으므로 악인들은 그런 낌새조차 못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악인들과의 다툼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선한 사람들이라면 그분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받게됨은 당연할 일이겠지요.




(5)  통합적인 영혼 시야로 중생을 위하여 삽니다.


깨달음을 얻은 분들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초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그 중에서 가장 우리 눈에 띄는 일은 역시 귀신을 잘 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영혼이 어떤 상황인지, 어떤 문제점을 안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과거의 내력까지 간파합니다. 그렇게 만들어 주는 능력은 바로 신령파가  생김으로서  뇌파의 작동에 변이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인생이 꿈 같은 것임을 모르고 삽니다. 하지만 때달은 이들은 지금의 삶이 꿈이란 걸 이미 깊은 지혜안으로 느끼고 살아가므로 인생에서의 허튼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고, 오로지 실상(實相)으로 여겨지는 일만 있는 그대로 행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삶이 단순하고 명료하며 속임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고한 지혜안으로 인하여 고매한 삶을 더없이 살다가 갑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삶이란  중생들 위한 삶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말할 때에도 생기가 넘치며 온화하면서도 방관자적인  "내버려 두세요" 가 없으므로, 언제나 중생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시는 보살로서의 삶을 꾸준히 이어갑니다.




(6)  모든 것을 수용하며  모든 일들을 긍정하면서도  정의로움을 잃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어떤 이상한 사건이 벌어지면 자신이 깨달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마치 선각자인듯이 여기는 가짜들은 한사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깨달은 이들은 무엇이 왜 옳고 그른지를 가르침을 바라는 이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말합니다. 그리고 해결방안도 내놓곤 하십니다.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 뭐 다 그렇고 그런 거야"하는 식의 방관자적인  말을 하지 않으며, 죄를 짓고 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자들에게도 참회하고 재생하도록 광명을 주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아직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들은 사회적 사안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 중생들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지요"하고 너스레를 떨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엉터리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조차 소홀하게 생각하며 잘난체 하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파당을 지어 편들고 하는 일은 일체 하지 않으나, 세상에 옳고 그름이 있음을 일체중생의 입장에서 대변하여 대중들이 스스로 깨우치게 만드는 분들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존경 받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지난날 김수환추기경 같은 분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7) 시공을 넘어서서  담대하고 획기적이며 모든이들이게 도움이 되는 예언을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분들 중에 오대산 상원사에 계시던  탄허 큰스님이 예언적 말씀을 자주 남기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한학을 전공하시던 분인데 어느날 불도에 출가하시어 크게 업적을 남기십니다. 그리고 한량들과도 자주 어울려 학문을 논하시기도 하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는 이들과도 한담을 즐기시던 분입나다.  625 사변처럼 나라에 무슨 큰일이 생기랴 치면 "또 난리가 한 번 나겠구만" 그러시면서 크게 한숨을 쉬셨다고 합니다. 월악의 달그림자가 호수에 비취면 나라가 번창할 거라고 예언이 유명하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70년대 초반에는 직접 들은 말인데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의 관상이 참 좋아... 세상이 좀더 나아지겠네." 하셨습니다.  탄허스님은 상원사 뜰에 가면 자주 만나뵙고 예를 올립니다만, 제가 거기 가까운 자리를 정한 것도 오대산이 만다라(曼茶羅)를 상징하는 山이며, 이런 큰 스님이 아직도 영혼으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문수보살을 돌봐주시는 스님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훌륭한 예언이 가능한 것은 다름 아니라 시공을 넘어선 영혼의 감각기관이 열리셨기 때문이지요.

제가 매년 연말이 되면  작성해 올리는 다음 해의 국운에 대한 예언도 비슷한 차원이라고 받아 주시면 됩니다. 도움을 주시는 신령분들의 말씀을 참고로 해서 작성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서 그렇게 해주시는 겁니다.


전쟁예언_월악산.jpg



(8) 함께 앉아 있으면 아무 이유도 없이 행복한 느낌이 든다.


"스님과 함께 앉아 있으니까 참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처럼 타인이 편안한 느낌이나 즐거운 느낌,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힘을 가리켜서 "복덕기(福德氣)"라고 합니다.

일반인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드물쟎게 계십니다.  심지어 새들도 다가와서 그런 분의 어깨와 손에 아무 거리낌 없이 앉습니다. 그 힘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  누구는 신비한 힘이라서 아마도 종교적인 신앙심이 두터워 그분이 모시는 신령님이 항상 가까이 계시기 깨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이미 깨달아 우주와 상통하시는 분은 어떤 중생과도 대화를 나누며 언제나 그 대상에게 뭔가 해 주려는 마음자세를 지니고 사십니다. 은연 중에 그런 힘이 전달되어 모든 중생들이 푸근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행복기를 지니고 계시지 않고 독기가 서린듯이 비판에만 열중하고 공격적인 성품이라면 아무리 인격적으로  수양을 했다고 치더라도, 독한  기운때문에 그 누구도 진심으로 따르지 않을 겁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뭇중생을 대할 때 전혀 터울이 없고, 평등한 가운데 살아가는  증명을 보여야 진실한 각인(覺人)이라고 할만 합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표현하는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이처럼 깨달은 각인들에게서 용솟음친다 하더라도, 물론  이 사회가 아름답고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는 절이 되리라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만, , 그래도 우리가 혹시  깨달은 사람이 되거나 종교적인 부처가 된다면,  이 세상은 최소한 우리들이 살아갈만한  즐거운 삶의 현장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9)   기계문명으로 찌든 세상이 인간적인 문화가 넘치는 세상으로 변하게 만든다.


요즘에 문제가 되는 화가의 대작(代作:   조수가 화가 대신  그림을 그리는 일) 논쟁과 형법상 사기죄의 구성 요건시비 등은 어쩌면 영혼이 들어가지 않은 상업화된 그림이 판을 치는 사회가 되어서 일어난 일일지도 모릅니다.  르네상스 시절에 레오날도 다빈치 역시 자기의 스승의 그림 일부에서 "천사그림 부분"을 대신 그렸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튀는 월출한 기법으로 전체적 그림의 이미지가 변하니까, 오히려 스승은 그를 조수의 자리에서 떼어내어  독립시킵니다.  놀랄만한 천재였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주문생산 방식의 그림을 그리는 일에 익숙한 조수(어시스턴트)들이 똑같은 대작을 합니다만, 왜 시비가 벌어지는가요 ? 바로 영혼의 타락 때문입니다. 그림의 일부작업만 보좌하는 역할이 아니라 나중에 서명만 할 뿐 전체적으로 대신 그리고 서명만 화가가 한다면, 그 그림은 이미 조수의 그림이지 화가의 그림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돈을 더 많이 벌려는 목적에서 , 기계문명이 불러온 대량생산이라는 상업적 의도가 영혼을 파는 일에 동원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상업적 문명의 정신이 예술적 문화를 지배하고 이용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깨우치고 훌륭한 부처님 같은 분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 같은 명작들 수준이라야 높이 평가할 뿐이며, 그림을 그리지 않고 생산만 하는 자를 화가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올바른 예술혼을 잘 지켜나가게 해 주시는 영적인 수호자의 역할을 해줄 분들이 점점 많아져야 예술이 예술다워지고  꽃필 수 있으니, 우리가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해나가야 합니다. 비단 그림세계뿐 아니라 모든 문명은 정도를 가는 문화적인 테두리를 구성하지 않으면 반드시 쇠퇴하고 마는 현상이 바로 영적인 힘의 쇠퇴에서 비롯되며,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  영혼의 지도자들이 될만한  깨달은 분들이 뭐가 다른지를 재평가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예술계에도 그런 분이 많이 포진해 계셔야 합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갑자기  " 자네 부적은 잘 그린 편은 아니지만 정말로 혼이 살아 움직이는 걸 느끼게 해주네" 하시던 큰 스님의 격려가 생각납니다.  선진국대열에 포함된 나라인면서도 아직껏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혹시 우리가 그러한 면에서 많이 부족해서가 아닐까를 생각해 봐야 할 시점입니다.





(10) 결론 ..... 우리나라는 특히  깨달은 분이 많이 계셔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으로 살아 남으려면, 문명국으로서의 국위를 유지하고 높은 수준의 민족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면서, 국내적으로는 경제력과 적절한 국방력과 외교위상을 갖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화 라는 명분 아래 이를테면 '글러벌라이즈'라고 하는 개념을 잘못 받아들여 자기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우리의 민족적 영혼의 정체성을 바로 잡아야 하며, 영적 정체성은 어떤 일이 있어도 유지발전시켜 나가야 할 대한민국의 국민고유 권한이며 의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훌륭한 부처님들이 많이 탄생해야 한다는 일차적 발전조건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부처가 깨달은 사람이라고 해서 국가적인 위상을 무시하거나 한반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엉터리 인류박애주의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태어나신 훌륭한 부처님들은 더 많은 부처님을 만드는 일을 하셔야 하며, 우리나라가 융성한 세계적 문화국가로서 지구상에 영원히 지속되게 만드는 영적 지도자가 되어 앞으로 태어나고 자라날 후세대를 양성하고 인류를 위해 공헌하는 일에 이바지 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비하하는 국민은 언젠가 타국의 노예로 전락된다는 점은 이미 지나간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므로, 여러분께서는 앞장서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주시기를 다시 한번  간곡히 청합니다.


 

2016 년 5월 25 일 서산 원효 청강 묘연제 선심화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