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30 21:32
[제마법문] " 말로서 이기는 일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요즘 어딜 가나 말로 이기려고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일이 많더군요....
모두가 서로 그렇게 안달이 나듯이 이기고 싶어 하니 원한이 자꾸만 쌓이지요.
"지는 게 이기는 거요." 하고 편하게 웃으며 삽시다.
지나간 이야기 한마디 하겠습니다.
큰 절 주지스님이셨던 분이 속퇴해서 불교관련 신문사의 사장으로 취임하여 4 명이 함께 점심 먹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 분은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불도를 닦은 분이셨습니다.
풍채도 그럴듯하고 말씨도 보통이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안광이 후리후리하여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처음 만난 그 날 나와 꽝하고 서로 부딪치는 뭔가를 느끼게 만들더군요.
처음 만나자마자 제 1 라운드로 들어 갑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중에,
"요즘 승복을 입고 일하니 보통 갑갑한 일이 아닙니다. 법에 따르는 옷이라서 그런지 말입니다."
이렇게 운을 떼니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 스님도 아니면서 법복을 입으면 되나요 ? 그 건 안 되는 일이지요. 승복을 아무나 입으면 안 됩니다."
참 아직도 대단한 분이십니다. 승복은 스님만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하참, 그런데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승복을 입고 면담하고 천도도 하고 법회도 열며 일했습니다.
스님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 불교관련 신문사 사장도 환속을 하신 분이라서 양복차림이었고
저도 졈퍼 차림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서 함께 온 다른 사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 분에게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던 영도스님이 불러서 나간 자리이니까 불편하지만 일정 시간을 때워 줘야 할 체면이 있어 마지 못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갈 무렵, 제 2 라운드로 들어갑니다.
" 멀리서도 누가 오는 걸 알고 맑은 소리로 말하는 걸 들을 수도 있으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라고 말하자, 슬그머니 또 딴지를 걸어 옵니다.
지난 번보다 더 아니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기를...
" 에이 , 그런 정도를 가지고 뭘 ? 별 것도 아니면서....
우리가 공부할 때는 봉정암 꼭대기에 앉아서 저 아래 동네에 큰 스님이 올라 오시는가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 계시나가 훤하게 들여다 보였어...." 하십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정말 웃긴다는 얼굴로 빈정대는 말을 쏘아댑니다.
" 우리가 공부할 때는 뭔가 신기한 걸 보는 눈이 트이는 데 매이지도 않았고,
들리는 소리에 귀가 트이는 데도 매이지 않았지요. 오로지 마음자리 트는 데만 열중했었는데. 우리는...."
자기들은 선공부에만 열중했다는 뜻입니다.
요즘 말로 치자면 .... 완전 !! 무식한 술사로 보거나 병신 취급으로 들어간 셈이지요.
그런데 3 라운드에서는 먹 통 같던 제 입에서 엄청난 핵폭탄이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 눈이 트이거나 귀가 트이거나 마음이 트이면 또 뭘합니까 ?
내속이 트여서 항상 시원해야지요 ? 안 그렇습니까 ? "
젊은 법사 하나가 뭐라 뭐라고 중얼대니까 그 분은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보복사격을 하다가 된통 역공을 당하고야 말았습니다.
눈이 트이고 귀가 트이는 능력이 생기는 정도 쯤이야 별 거 아니며
자신은 마음 트이는 공부만 하던 아주 훌륭한 스님 출신임을 내세우다가 그만,
댕댕이속 같은 자기의 속내가 드러나 보여 저에게 망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분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자리를 피하던 모습이 생각나는군요.
뭔가 부끄러웠던가 봅니다.
누군가의 말에.... 대놓고 포화를 쏘아대는 일은 편협한 일입니다.
저 역시 그 날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가슴에 못을 박아서
더 이상 친해질 수가 없었다는 점이 못내 아쉽기 때문입니다.
인생 참 짧습니다.
영원한 친구,,,영도스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6 년이니
이 일이 벌써 20 년 전의 일이군요...
2014 년 9 월 30 일 제마법선사 서산 김세환 합장
* 환속 (還俗) : 스님 생활을 그만 두고 속가에 돌아와서 사는 일
속퇴(俗退) : 뜻은 위의 환속과 같으나 격이 좀 낮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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