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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돌아오는 길에 능내리에 있는 한확 선생 묘소를 참배하였지요.

늘 그렇지만 어른을 불러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요즘 시제가 어찌 돌아가는 겁니까 ?"

" 자네가 잘 알지 내가 뭘 아나 ?"

"그래도 한 말씀만 살짝 귀띔을 해 주세요"

" 그래 늘 이 앞을 지나가더니만 오늘에야 나하고 얘기를 나누니 한마디

해 드리지"

뜸들이시지 않고 말씀을 베푸십니다.

 

 

" 어느 누구나 죽고 사는 건 하늘의 뜻이지만,

죽이고 살리는 건 사람의 뜻이거든요...

 

그러나 말이요, 길이 아니면 가지 않으려는 것 같아서 걱정이요.

길이 안 보이거나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 하는데,

도무지 저러다가 여러 사람이 다치게 생겼소이다."

 

알듯 말듯 한 말씀이긴 하지만, 대충 짐작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소나무 그늘 사이로 석양이 드리울 때까지

머물고 싶었으나 왠지 그냥 머무는 게 죄스러워서

훌쩍 인사를 올리고 내려왔습니다.

역시 한확 선생께서는 세사를 꿰뚫어 보시는 지혜안을

지니고 계십니다.

 

지형은 삼돌이(巴形) 터로서 지금은 팔당댐이 내려다 보여

더욱더 명당이 되었고, 가까이에는 정약용선생 묘소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삼정승이 나온다는 삼돌이터는 산세가 휘어지면서

巴형을 보이는 곳입니다.

무덤 아래에는 신도비를 끌고 와서 죽은 코끼리의 무덤이 있습니다.

 

2013년 10월 28일  서산 청강 장선생 김세환

 

 

Cf. 아래자료의 출처는 다음 주소입니다.

cafe.daum.net/4m5m/R4y1/23

 

  ◆한확(1400~ 1456/9/11, 57): 본관 청주, 순창군수 한영정의 32녀의 장남.

 

:누님은 명나라 성조의 麗妃이셨고, 누이는 명나라 선종의 공신부인이 되셨다.

남양부부인 홍씨와 슬하에 36녀를 두었는데, 막내딸이 조졸한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추존 덕종)

부인이자 성종의 모친인 소혜왕후(인수대비)이다. 누님 덕에 1418(태종18) 일찍이 명나라에서 광록

시소경이란 벼슬을 받아 중국의 관리가 되었다.

 

Tips: 공녀(貢女)? 고려시절, 원나라의 황실 또는 귀족들에게 받쳐진 고려의 처녀들로 이 제도가 조선까지도 이어져 왔다.

개국공신 정도전이 사병혁파의 일환으로 내세운 요동정벌론으로 명나라에 압박받아 공물과 환관, 공녀를 보내게 되었다.

고려 공녀 중에 기자오의 딸이 원() 혜종의 제2 황후 기황후가 되었고, 조선의 공녀 중에서 한영정(한확의 부친)의 여식

들이 여비(麗妃)’공신부인이 된 것이다.

 

이후 1418년 세종이 즉위하자 책봉 고명을 위해 명나라에 들어가 황제의 고명서를 받들고 귀국하여

판한성부사가 되었다. 1420년 흉년이 들자 공물면제를 위해 명나라에 다시 들어가 금, 은의 공물면제

허락을 받아내는 등 중국통 외교관으로 명망이 대단하였다.

1424년 명의 성조가 북정 중 사망하면서 여비는 황제를 따라 자살하여 순장되었고, 누이동생이 1427(세종 9)에 성조의 뒤를 이은 명나라 선종의 공신부인이 되면서 다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한확은 양국에서 모두 절대적인 추앙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후 명나라 사신이 입국할 때면 언제나 선위사가 되어 접대하였다.

세종 때 중추원사, 경기도관찰사, 병조판서, 한성부판사, 이조판서를 역임하며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종이 즉위하자 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온 후 1452년 한명회, 권람, 정인지, 신숙주 등과 수양대군의 즉위를 명나라에 있는 누이와 죽은 여비의 후광으로 거사를 은밀히 도왔다.

1453년 계유정난이 성공하자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된 뒤 우의정에 올라 명나라와의 외교문제를 해결

하며 수양의 정치적입지를 도왔다.

세조가 즉위하면서 좌익공신1등에 책록되며 좌의정이 되었다. 

1456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들어가 세조의 즉위를 양위라고 설득시켜 책봉 고명을 성사시키고 귀환하는 도중 단주 사하포에서 갑작스레 병을 얻어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