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는 7 월 7 일이고 양력으로는 다음 주 화요일인 8 월 13 일이 칠석날이군요.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서 1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회포를 푸는 날이라고 하네요.
칠석날에서는 절에서 칠성각에 올라 칠성기도를 드리는 날이기도 하고,
민간에서는 장독대 앞에서 청수(정한수)를 떠 놓고 아이들을 위하여 장명기도를 올리는 날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경우와 직녀가 만나는 칠석을 앞두고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여는 남북회담소식이 전해져서
기쁘기도 하군요. 생각해 보면 참 오래 동안 티격대다가 공단의 문을 다시 연다니까, 그 일이 때마침 우연하게도
견우 직녀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칠석 날에 이어지고 보니 새로운 감회가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견우직녀가 상봉하는 오작교가 은하수에 걸려있다고 하데요. 그 다리는 1 년에 한 번씩 통교가 되는 임시다리이고요.
은하수는 우리말 속에 <미리내>라고 불려져 그대로 남아 있지요.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은 아리수라고 하지요.
그 아리수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땅과 신라,백제땅을 가로지르는 삼국의 지역 경계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하늘에 흘러가는 은하수/미리내 처럼 이 한반도에서는 서로 상통하지 못하게 하는 국경선이 되어 있었지요.
어쩌면 낙랑 공주와 호동왕자도 한반도나 중국의 어떤 아리수를 경계로 삼아 서로 이별했다가 만나고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자기 관내에는 별로 열정이 솟아나게 하는 이성이 없어서 그 누구에게도 확끌어 당기는 교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적국인 낙랑과 고구려 사이에서 느닷없이 사랑이 싹트다니 ... 이런 일은 당시의 왕이라고 하는 최고통수권자의 자식들에게 특히 발생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추정해 봅니다. 권력의 힘으로 강물이든 바다이든 넘나들 수 있는 특권세력이며, 그들은 엑조틱(exotic:이국적 용모)한 사랑의 대상을 내것으로 만들 수도 있는 유일한 위치에서 살았거든요. 하기야 졸병과 적국의 하녀가 사랑을 나눈들 어찌 신화와 전설을 낳겠습니까만...
그런데 하필이면 왜 정벌대상인 적국의 여인과 사랑을 나눴을까요 ?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하는 노래가 있듯이, 바다나 강물은 서로의 생활 권역을 나누는 경계선이며 넘지못할 장벽으로 여겨지던 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영어에서는 라이벌(rival)이라는 말이 적수라는 뜻으로 쓰입니다만,
그 말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리버(river)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 하더군요 .... 우리 인간들이란 뭔가를 선을 그어 놓고서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면 , 절대로 해내고야 마는 그런 못된 근성을 지닌 존재이니 사랑에 어찌 국경선이 생기겠나요.
자, 그러면 이쯤에서 아리수와 아리랑에 공통된 어근이라고 할 아리에 대하여 분석해 봅시다. 그래야 아리수와 아리랑의 깊은 맛을 느낄수가 있으실 거니까요.
언어학적인 접근을 해봅니다
먼저 아리는 "알(卵)"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우리가 다리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종아리에 근육이 불거지며 붓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 때 " 종아리에 알이 박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미 종아리라고 하는 말에 알이 들어가 있습니다. 본래 종아리는종알이입니다. 종은 족(足)에서 유래한 말이고, 족알이가 종아리로 구개음화하여 음의 변천이 이뤄져서 최종적으로 종아리가 되는 것입니다.
알은 신학에서는 생명의 근원이며 알에서 태어났다는 수로왕이나 혁거세와 같은 많은 시조들이 이미 난생설화로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미난 점은 우리 주변에 ~아리로 붙이는 단어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지요.
항아리,병아리, 옹아리,동아리,아가리(어원:악/卾아리)..... 이런 단어들의 공통점은 둥근 형태를 지니고있는 이미지의 물체나 현상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리는 그 원형이 "아르"이며 본래 신의 몸을 가리킵니다. 아르 또는 알에서 출발하여 고대어에서 다른 형태로 변화한 아루(在),알다(知),아래(下),아라(新)...와 연관지어지지요.
아리수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아리 더하기 수(水)라는 어설픈 해석을 낳기 쉬우나 ,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살수, 패수라고 하는 북쪽의 강 이름 처럼 아리수도 당연히 물 수짜를 한자에서 빌려와 붙인 걸로 보시면 안 됩니다.
아리수는 처음부터 그냥 아리수입니다. 여기서 <수>는 물을 가리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래는 아리ㅅ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라 사이의 벽이나 방책 또는 뚝을 가리키는 차폐물이라는 의미입니다. 일종의 장벽인 塞(새/색)입니다.
그리고 아리랑의 랑은 ....
아래 사항과 연관됩니다.
인간이 부족하여 신이 계시는 것이라기 보다는,
신이 계시면 편안하니까 사람들이 마음대로 모시는 것입니다.
신(부처/불보살)이 존재하시는 이유가 인간의 부족함 때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신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아도 아마 계셨을 겁니다.
더구나 그 분들은 인간 존재에 별다른 관심도 없으십니다.
어쩌다가 신에게 하소연하면 들어주실 듯하다가도 안 들어 주시는 일도 많으며, 이와 반대로 소청하지 않아도 그분들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 인간의 뜻을 따라 주시기도 합니다.
너무 인간과 신의 관계를 그렇게만 종속적이거나 연대관계로만 개념짓지는 마십시오.
모시는 진정한 신들께서는 자신들을 위한 인간의 축복 따위는 전혀 바라지도 않으시는 존재이거든요.
우리는 그래서 신과 함께 수천 수만년을 살아 온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종속시키는 관계나 일방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 오만스러운 자세를 보여주시는 신은 진정한 신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신의 실체를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신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고, 이에 합당한 노래를 지은 것이 바로 <아리랑>입니다.
그래서 아리랑의 랑은 곧 신의 몸체와 함께라는 의미의 민요입니다.
우리말에 "이거랑 거저랑 똑 같다"고 표현할 때 나오는 랑이 아리랑의 랑이 가지는 실체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리랑이라고 하는 말은 " 신과 함께"라는 너무나 당연한 신에 귀의 하고자 하는 인간의지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이 노래는 이렇게 해석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신과 함께, 신과 함께, 신들이시어...."
2013년 8월 14일 제마법사 청강 묘연제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