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재벌 회장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 서언
나이가 들어 뭔가 이 게 진실로 사람들에게 큰 보탬이 될만한 궁금증에서 유래했는지 아니면 그저 한 번 해보는 질문인지 스스로 자성해 가면서 들고 가서 질문했어야 할 질문입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내 생각은 별로 없이 뭐든 물으면 받아 줄 걸 기대하는 분위기가 드러나서 좀 떨떠름합니다. 가만히 살펴 보면 질문한 내용이 비서실에서 작성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부분도 적지 않군요.
필자
[24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
1.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이 너무나 인간답지 못하다.
자기들 자신의 존재를 신에게 드러내 놓고 증명해 보라고하지 그래....
대체로 신은 본시 인간이 권력을 빌리기 위해서 만든 개념이라는 신수설로부터 없는 걸 있다고 생각하면 편해진다는 심리적 위안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탕에서 출발한다.
드러내 보였다가는 도전이나 극복대상이 되어 발기발기 난도질 할 터인데 과연 신이 자기 모습을 함부로 보여 주겠는가 ?
신의 존재만이 신을 보여주고 서로 느끼고 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인간인 주제에 너무 지나치게 신에게 본자를 보여다오 하는 것은 건방진 생각이다.
다만 신의 존재에 대하여 진심으로 인정하고 그 존재를 믿고 따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굳이 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살아가는 걸 방해하지 않는다. 그 것이 바로 신의 존재가 지니고 있는 본위력이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장차 신을 가리켜 만물의 창조주라고 하지 말고 신도 만물과 함께 창조되었다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나 쉽게 해석할 수가 있다. 신이 굳이 인간이나 동식물을 창조했다고 믿으면, 여러가지 불편함이 따를 수도 있다. 신은 애당초 없다고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신이 창조주라고 말하고 그래서 신의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은 마치 백화점(교회)이 있으니까 물건이 팔린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백화점이니 뭐니 ...점포가 있으니까 자기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물건을 파는 것이지, 백화점이 없더라도 물건을 팔고 살 수가 있는데, 하필 백화점(喩:유일신 종교)이라야 물건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유일한 창조주니 뭐니 하는 생각을 해도 좋다. 그러나 모든 물건이 백화점에서 팔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인정하라. 우히려 물건은 여뭇시장에서도 많이 팔리며 그 이전에 있는 유통과정에서도 수없이 거래되고 있다. 시야를 넓히면 신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신을 거래 대상이나 거래 주체로 보지 말라.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영혼의 존재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이런 말을 하시면 안 된다.
영혼에 대하여 정말 무지하다면, 생물학자가 말하는 진화라는 개념과 영혼의 진화라는 개념이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나 영혼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영혼이 진화하는 과정이나 생명체가 진화하는 과정은 동일선상에 있다. 우리 인간은 신이 창조했다기 보다는 , 아마 제 스스로 진화한 영적 생명체라고 보아야 하겠다. 저 멀디 먼 곳에서 온 우주 생명체의 영향을 받아서 어느 날부터 다른 생명체보다 더 나은 진화방향과 속도차이가 생긴 까닭에 만물의 영장이니 일컬어지면서 꼭대기 자리를 차지한듯이 느끼지만 사실은 , 모든 생명체가 겪는 고통차원에서 살펴보자면 가장 밑바닥 생명체가 아닐까 ? 이 세상에 자기의 죽음에 대하여 인간만큼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잘 살려고 버티고 죽지 않으려 애태우는 생명체가 있는가 살펴보라. 개나 고양이가 스스로 병원을 만들고 병 고치는 걸 보았는가? 게다가 인류라고 하는 동족을 그렇게 희생하고 자기중심적 방어본능을 발휘해 가면서까지 다른 생명체를 무자비하게 도륙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달리 있다는 말인가 ?
진화라는 개념이 뭔지를 다시 한 편 살펴 보고 난 다음에 물어 보셨어야 할 질문이다. 애당초부터 창조는 없었으며 진화는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생명체 유지와 환경적응을 위한 생체 변이현상으로 보면 된다. 창조와 진화는 아무 상관도 없는 별도의 일이다. 그리고 인류가 지능적 측면에서는 진화를 이루었을지 몰라도 영적으로 진화하였는지는 아무리 잘 살펴 보아도 긍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들다.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본래 인간생명이든 어느 생명이든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유종에 따라 생식하는 것일 뿐이다. 창조는 무슨 얼어죽을 창조냐 ? 그리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수명을 영원히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신께서 인간 생명을 창조했다고 하며 따라서 창조주라 여기며 전지전능이라고 하는 개념을 보위하는 유일신 종교의 개념은 다시 한번 비판받아야 한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도 그 점은 분명하다. 얘를 낳는 일은 여성이 해야 할 일이며 당연히 수태과정과 회임과정을 거쳐 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인공수정으로 세포분열을 거치게 하여 어거지로 인공포육하여 만든 인간이 과연 인간으로서 인정 받을지는 의문이다. 그들은 생명공장의 인간이라고 하는 생산품이지 인격체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창조주의 능력이 의심 받지는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유일신교에선 아마 그 일조차도 일종의 창조주에 의한 생명 창조라고 주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학이 발달하고 생명과학이 발달하여 무병 장수시대가 도래한다고 치더라도,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애당초 신에 의해서 창조된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더구나 사람이 사람을 만들고 하는 그런 일이 체세포 분열시켜 인공적으로 포육한다고 해서 생명이 신에 의하여 탄생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스스로 창조주 개념을 바꾸게 만들 수는 없다. 바로 그런 것이 고집스러운 믿음의 결점이다. 잘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 진정한 창조주이시라면 "과연 너희들의 배를 빌려 아이를 나게 할 필요가 있을까 ?" 되묻고 싶어지는 질문이다. 그때 그때 우주공간에서 만들어 갖고 택배로 보내면 될 것을.... 그러니까 이 질문은 모든 것을 신에게 기대고 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의 슬픈 질문이다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인간의 행불행을 묻는 질문은 스스로 하면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신에게 질문할 사항이 아니다. 더러 원시적 종교에서는 신을 믿는 사람이 자기 자신과 신의 구분조차 하지 못하여 이런 질문을 가끔 하기는 해도, 어느 정도 영혼이 깨인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이 아니고 신도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신에 대한 개념이 뚜렷하지 못하다. 여기 이 질문은 사제에게 질문한 내용이므로 아마도 하나님이라고 하는 전지전능하신 절대신을 전제로 묻는 걸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왜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것인가 ?
아마도 고통과 불행이 신의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만일 능력이 있으시다면 전쟁이나 내란으로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하는 인간의 최악의 불행에 속하는 불행이라도 모두 사전에 예방이 가능할 걸로 예단하는 까닭에 나오는 질문이 아닐까 ? 마찬가지 질문을 부모에게 물어도 아마 어떤 부모님이나 이에 대한 대답을 어이없다면서 기피하거나 배은망덕한 자식이라고 매도와 비난을 금치 않을 것이다. 부모가 세상에 아이를 낳을때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 여느 그 어느 부모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을 것이며, "어머니 왜 나를 이 어려운 세상에 낳아 놓으셔서 고통을 주십니까?" 하는 말에 그래 내가 잘 못했다고 정말 미안하다 모자란 내 생각 때문에 너를 태어나게 만들었다고 수긍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얘야 네가 늘 기쁘고 즐겁고 언제나 재미에 넘치는 인생을 살게 해주려고 했지만 내가 능력이 모자라 너의 인생을 대신해 주지 못하는구나 . 경제적으로 너무 미안하다...." 하는 부모의 마음이 신의 마음에서도 진정성 있게 들여다 보인다면... 아마 하나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을
어떤 역사적인 큰 인물이 악인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은 해석하기 참 어렵다.
정말 히틀러가 악인일까 ? 그렇다면 김일성은 악인이 아닐까? 스탈린이 악인이고 그렇다면 김일성도 악인인가?
그러나 사학자들 얘기로는 역사적 인물의 선악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에도 "그런 판단을 하려면 내가 죽고 난 다음 역사에게 물어 봐" 하는 정치가들이 엄청나게 많다. 살아서 사형 당할까 봐 겁나는 모양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들이 제법 많다, 뭔가 캥기는 게 많으면 꼭 그런 소릴 한다. 더 먼 훗날 역사가의 판단에 맡깁시다...라고 말하는 재주꾼들이.... 아주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신이 악인을 만드는가, 반대로 신이 선인을 만드는가 ?
시대가 그럼 악인을 만드는가 ? 반대로 선인을 만드는가?
다시 묻고 싶어진다.... 선과 악의 판단은 누가 하는가 ?
신이 하는가 인간이 하는가 ?
인간이 한다면 그걸 왜 신에게 물어 보시는지 그 점이 참으로 궁금하다.
혹시 인간이 왜 이렇게 지능적으로 악한 짓을 하는지를 묻는다면 대답 선뜻 답해 주실 것이다.
" 너는 너무 알고 싶은 게 많아서 탈이야"... 하시면서ㅡ
" 그건 말이지 스스로 자기에게 물어 보아야 하는 질문이고 그걸 내게 묻는다는 건 그만큼 선악의 구분조차 어려운 악인이 될 소양이 많다는 증거이거든... "
하고 웃으실 겁니다.
7.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당시에 내란죄로 처벌 받을 걸 가지고 과대포장해서 전 인류의 원죄를 대속한 걸로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의견은 대단히 옳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는 대단한 성인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을 믿었는지 아니면 예호바라고 하는 조상신을 모시고 믿었는지는 확실치 않아도, 인간이 지니고 살아가는 모든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하여 감정적인 논리로서 늘 강조하는 말씀이 있다.
"너희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바로 이 말에 이 질문을 시원하게 해석해 주시는 열쇠가 담겨 있다.
대신 속죄할 일이 있었다면 아마도 당시의 유태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실리주의적인 현실적응이라고 하는 아마도 역사성으로 보아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일로서 같은 종족을 배신하는 행위들이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누구를 대신해서 속죄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으신가 묻고싶다. 아무도 선뜻 쉽게 죽음을 각오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을 사랑이라고 표현하셨다. 내가 죽어 남을 살리는 행위는 흔치 않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고, 같은 민족을 사랑하고, 나아가 전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당시의 유태인들에게 그는 죽음으로서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키고자 한 절대가치는 다름 아닌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그 분이 죄를 짓게 내버려 둔 것이 아니라, 그 분은 죄를 짓기를 바라지 않았으나 예수 이후의 시대에도 인간은 끊임 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잃고 여전히 서로 갈등 속에 헤매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cf: 한민족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걸 굳이 증명해야 할 바보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되묻고 싶어진다.
성경은 어떤 말씀이라고는 하더라도 사실은 예수님은 물론이고 그 제자들의 생활 속의 신앙기록에 불과하다. 성경을 제대로 탐독하고 그 내용을 잘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런 무지막지한 발언을 하기가 참 힘들어질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은 성경이 위작이니 자료의 집대성이니 내용을 보면 모두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읽어 보면 알만한 일일 테니 구태여 묻지 마라"가 정답이다.
경전의 정확성에 대하여 한 가지만 도움말을 드리고자 한다. 성경이든 불경이든 코란이든 어느 경전이나 본인이 쓴 경전은 없다. 모두가 듣고서 기록한 것이면서 교주가 자기의 기억을 그대로 적은 게 아니라 제자들이 되살린 흔적의 기억들이다. 그러므로 상당 부분이 영계대화로 이뤄진 부분이 많다는 점을 미리 알아 두었으면 싶어진다.
말하자면 어느 교주가 신령체가 되어 제자에게 대화로서 알려준 내용의 기록에 불과하다. 그러하다면 상당 부분이 교주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성경에서 예수님 말씀에 대한 <바울과 베드로의 견해차이>가 엄청나다. 그러하다 해서 두 사람이 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저 말씀과 신령체험의 해석이 다를 뿐이다.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예를 들어서 부유함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던 부를 이룩하면 그 이후에 종교가 필요 없을 것인가 ?
권력을 추구하던 사람이라면 대통령이라는 최고통수권자에 당선되면 모든 일이 끝났다는 것인가 ?
종교의 필요성이나 종교의 역할에 대하여 실용주의적 접근을 한다면, 요즘 같아서는 종교가 기름 떨어진 차가 될 것이고 종교철학적 접근을 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별로 매력이 없을 것이다. 종교인에게만 필요한 종교로 전락해 가는 종교가 과연 종교일까 ? 아홉 번째 질문은 정말 그럴듯한 질문이다.
많은 걸 다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위상을 갖추지 못한 분의 속 마음이 들여다 보인다. 이 분을 향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유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샘 섞인 욕설을 퍼부었는가 ? 종교...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
노인장 마음에 쏙 드는 답을 드리고 싶다. 머지 않아 저승에서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 테니까 말이다.
해답은 바로 아래 질문의 답 속에 숨어 있다. 영혼의 존재란 무엇인가 ? 바로 여기에 종교가 필요한 까닭도 나온다.
이 대답은 내일 다시 시작하자...
10.영혼이란 무엇인가?
어찌보면 영혼이란 물질세계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생명의 주체 또는 핵심체를 추상적 개념으로 총체화 하여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영혼을 매우 주체적인 자아의 핵심으로 받아 들이고 이해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 이외의 영적인 존재도 인정하고 신앙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바로 여기서 영혼이라고 하는 말이 두갈래로 갈라진다.
이 두 가지는 자아의 실질적인 주체로서의 영혼이 실존한다는 주장과 더불어 정신세계에서 인간적 주체가 나타낼 수 있는 하나의 정신현상을 영혼이라고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정신적인 塊象의 파동체이며 물질은 개념에서 배제된다.)
그러니까 어떤 한 사람이 인격을 구성함에서 가장 깊은 심연 속에 숨어 있는 정신적 주체가 바로 영혼이라는 주장과 모든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정신적인 활동을 할 때에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에만 드러내는 하나의 정신체계의 집중된 모습의 실체라는 주장으로 갈라진다.
어찌 보면 뒤의 주장은 매우 실질적이며 합리적인 표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두가지 개념이 혼동되어 쓰이고 있다.
그리고는 심지어 살아 있는 사람의 정신은 영혼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죽은 사람의 정신세계만 영혼이라고 부르는 관습적인 표현도 있다. 아무튼 영혼이라는 말의 정의는 아직도 보편타당성 있게 제대로 내려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종교에는 크게 나누어 유신론적 종교와 무신론적 종교가 있다.
그리고 유신론적 종교에는 무슬렘이나 기독교 처럼 절대신을 숭상하는 유일신교가 있고, 다양한 신을 인정하고 받드는 범신교가 있다.
물론 모든 종교를 칼로 자르듯이 어느 유형에 속하는 종교라고 못 박을 수 없는 복합적 성격을 띈 종교도 있으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종교가 불교이다.
불교는 범신론적 다신교인 동시에 자기성찰을 통한 성불을 목표로 하는 견지에서의 참선이나 기타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 등의 유파를 가지고 있으며,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라기 보다는 자기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자기에게 초점을 맞추어 감히 인간이 신성을 겨냥하고 따라 잡으려는 적극적인 종교라고 보아야 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기독교에는 신을 따라 잡으려는 자는 이단시 되면서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불교는 세계 어느 종교도 갖추지 못한 외부의 힘에 의하여 자기 완성(성불)을 이룬다는 타명등의 밀교적인 완성방식을 비롯하여 참선 방식 등의 자기성찰을 통한 자리행의 자명등 방식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성불(신성완성)수행법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신의 존재가 직접 수행자 (신도)에게 작용하여 믿음으로서 인격완성을 해나가도록 이끌어 주는 방식은 그 어느 종교에나 공통된 요소이며, 만일 그러한 요소가 미신적이라고 배척하는 종교가 있다면 대체로, 교주가 스스로 신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종교인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그런 종교는 인간의 일반 상식조차 벗어난 논리를 전개하게 되고 결국 사이비 종교 또는 유사종교라고 일컬어지다가 소멸하고야 만다.
[별기 : special memorendum]
그리고 한국에서의 무신론적인 종교로서 대표적인 종교는 유교인데, 세계 어디에도 없는 조상신이라고 하는 개념을 도입하여 발전시켜서 대단히 독창적인 종교 제도를 완성시켰다. 공자의 孝 사상을 발전시켜서 조상제의라고 하는 종교의식을 완성시켰으며, 시대 별로 이기다원론이나 양명학 등의 철학과 결합하여 국가통치이념으로도 독특한 기법을 유도해낸 유일한 종교로 보아야 한다. 유교를 단지 공자을 신주로 모시는 고리타분한 보수이념적인 종교로 보지 말고, 새롭게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유교식 제사라고 하는 형식으로 보자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자기의 공통유전자의 출발점을 하나의 신으로 모시는 종교가 없다는 점에서 , 그러한 관점의 종교양태를 새롭게 해석해 보자면 이 방식도 생명 유전자의 중요성을 오래 전에 간파한 유일무이의 종교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단히 보존가치가 높은 사회적인 덕망 중시의 종교라고 본다. 오래 전부터 조상 영혼을 모시던 우리민족의 샤먼적인 기질이 유교를 수용하여 종교로 발전시키는데 한몫했을 걸로 추정해 본다.
조선왕조는 이러한 국가통치이념적 종교를 신흥종교로 만들어 긴 세월 500년간 조선왕조를 이끌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의 북한 김씨 왕조는 어쩌면 유교식의 마지막 왕조라고 표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세습이라고 하는 봉건 왕조의 유전자 세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보존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 하나로 남북한의 권력세습을 긍정한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극락(천국)이나 지옥에 가지 않고 또 다른 조금 더 나은 세계나 아니면 더 못한 세계로 이동해 간다고 한다면 참 이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조용필 공연이라면 당연히 예약을 해야 관람표를 구할 수 있고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다 하겠지만, 사후세계에 어디로 가는가 하는 것이 종교신앙이라고 하는 티켓을 구해야 결정된다면 무종교인이 갈 자리가 없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중세가 끝날 무렵 서구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면죄부: 천국행 티켓판매>였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무모한 것임을 알면서도, 아직도 여전히 특정한 종교에서는 그런 의식을 심어주고 있음은 참으로 역겨운 일이라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 믿으면 천국에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간다"는 이상한 발상을 지금 이 순간에도 굳게 믿고 그러니까 자기들이 믿는 종교를 믿어야만 한다고 강요합니다. 산신령 같은 것은 신도 아니다. 그런 존재는 존재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그 존재는 마귀의 화신이라는 등 ..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종교가 자유가 아니라 종교를 믿는 일이 자유라는 점입니다. 믿든 안 믿든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만일 인간이 종교를 믿는가 아닌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면야, 무슨 마음 걸림이 있고 불편함이 있겠습니까 ?
오로지 자기가 믿는 마음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천국을 살아 가면 당연히 사후에도 천국이 "어서 오세요" 하며 기다립니다. 더구나 특정 종교를 믿어야만 하고 다른 신앙을 하면 전혀 불가능하다는 식의 종교사상을 주입하는 일은 인간을 무시하고 인격을 무시하고 인생을 무시하는 오만이며 편견이며 또한 독선입니다.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 하나?
최근에 들어서는 천주교에서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시대적 변화를 이룩했다고 봅니다. 다른 종교보다 훨씬 낫다는 말은 하여도 천주교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최고의 종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한 것입니다. 종교신앙의 다원론도 인정하고 그럽니다. 저 역시 천주교당에 가서 배례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신교 쪽에서는 오히려 더욱더 보수적으로 이 문제를 관리합니다. 철저하게 다른 종교에 대하여 폐쇄적이며 우월주의에 빠져 있으며, 특히 한국에서의 기독교 내에서는 이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있어서 다른 신앙과 사이에서의 갈등원인으로 작용합니다. 하루 빨리 이 종교간 상호 신뢰와 개방의 문제는 물코를 터서 해결해 나가야지만 앞으로 기독교가 설 자리를 잃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천국이나 지옥과 같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모든 종교에 존재하며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은 종교를 믿지 않는 무교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 해결에 대한 아주 쉬운 해법이 하나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 본래 없었던 걸로 본다면 이 문제는 너무나 쉽게 해결됩니다. 원래부터 내가 이승에서 출생하기 이전에는 존재했던 사람이 아니고 ,단생 개념으로 어쩌다가 우연히 부모의 배를 타고 세상에 왔다가 죽을 때가 되었으니까 훌쩍 사라지는 존재라고 믿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아무런 미련도 없고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감도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크게 후회하실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남아 있습니다.
님은 장차 다가올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이기시려 합니까...? 입니다. 번지 점프대에 올라서서 여기서 떨어지면 바로 죽을지도 몰라 하는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뛰어 내릴 수가 없으나, 오히려 뛰어내리면 짜릿한 즐거움이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은 태연자약하게 뛰어내리면서 스포츠로 즐깁니다.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다음에 어디를 가든 말든 그건 죽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니 사후세계는 어떻다고 설명하며 아무리 믿으라고 해도 느낌이 오지 않을 것이 당연합니다.
이 질문은 아마도 죽음을 앞두신 회장님이 죽음 이 의 일이 무척 걱정이 되신 것 같은 흔적이 그대로 드러내서 찐득하게 묻어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사후세계에 대하여 답을 자신있게 드리지는 못하셨을 겁니다.
답을 드리지요.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님의 생각에 어느 편으로 가고 싶으냐와는 아무 상관 없이 진로가 결정됩니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는 것도 상관이 없으며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매일 죽고 다시 매일 살아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생사가 하나이기 때문에 두렵지도 않으니, 그 어느 쪽으로 가든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실 것이며, 구태여 짐 될 죄를 지을 분이 되지 않으실 걸로 확신합니다.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지 맙시다.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신께서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악인이라도 부유함을 누릴 수는 있고, 안락한 생활을 보장 받는 일은 너무나도 많다. 신에도 악신이 존재하고 선신이 존재하듯이 인간에게 선악의 존재가 분명하며, 선인이 있으면 악인도 있고, 언제나 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악한 사람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선과 악에다가 서로 연결되는 줄을 매어 놓고 당겨보아 어느 쪽으로 더 기울었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을 알기를 선하기로 바란다고 해서 너희들이 그 선함을 빙자하거나 신의 이름을 내세워 악행을 저지른다면 용서하지 않으리라."
결국 선께서는 자기를 믿고 안 믿고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신의 의지를 따르느냐 마느냐 따위도 관심 밖입니다.오로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 가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거기에 대한 경과를 살펴서 최종적인 결정을 하신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왜냐 하면 인간은 신이 아니고 신도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더욱더 믿어야 하겠습니다. 현대사회와 같이 인간 중심적인 완벽한 이기주의가 신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아래 글을 읽어 보시지요.
“천국과 지옥에는 무슨 기준에 따라서 가게 되는가요 ?”
우리들의 생명의 안착기점이 사후세계에 존재할까요 ?
천국이든 지옥이든...
인과응보라고 하는 개념이 존재하는 이상, 천국과 지옥은 성립되지만, 이 세상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천국이기도 하고 지옥이기도 하다면 사후세계에서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어 봤댔자 그 게 과연 무슨 의미일지요...?
지옥이란 그저 태연하게 죄지은 사람이 빠짐없이 벌 받는 자리이고, 아무리 착하게 살았어도 이승에서는 복을 못 받은 사람이 늦게나마 추가로 포상 받는 곳이 극락이라면 참으로 편의한 세계일 것 같습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의 의미를 나의 행복여부나 그때그때의 심리상태로 파악하고, 그것이 곧 선악이라는 개념의 판단잣대에 따라서 결정된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으리요... 하지만 아무리 사악한 사람이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라고 하더라도, 사후세계에서도 극락 갈지는 의문이고요... 반대로 아무리 착하고 선량하게 살아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이 늘 불안하고 불행했다면 가엽게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이생을 지옥 같이 살았으니 이 또한 사후세계에서 지옥으로 간다고 하면 이 건 또 무슨 모순이 될까요 ?
그래서 마음자리 하나에 극락과 지옥이 판가름 난다는 말도 잘 새겨서 들어야 하며, 자칫하다가 판단을 그르치시면 안 될 겁니다. 體와 用을 놓고 단순하게 實이냐 虛냐 하고 따지는 건 無理가 아닐까요...
실행으로 이어지는 모든 인간의 마음자리가 이승에서 더러 그다지 드러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간 선악의 죄업을 낱낱이 모두 가려서 상도 주고 벌을 주는 자리가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천국과 지옥이라는 개념입니다.
모든 것은 어떤 실천적인 행동의 존재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아무리 운 좋게 지상에서는 가벼운 처벌로 넘어갔다 하더라도, 형벌의 양이 모자랐을 때는 지옥으로 가서 다시 벌을 받게 될 것이고, 아무리 착한 사람이 사회분위기로 봐서 시대가 알아주지 않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사후 세계에 가게 되면 큰 포상을 누리는 극락세계로 인도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2013년 6월 3일 제마 법선사 서산 청강 장선생 김세환
16.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명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스스로 부유하다는 걸 악으로 보고 가난하다는 걸 선으로 본다면 권선징악의 관점에서 부자가 죄를 저지르고 부를 차지했다는 그런 어떤 죄의 구성요건 다시 말해서 그 인간의 생활조건이 또한 확실하게 사악한 상태로 규정 되어야 만이 성립 가능한 논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어떤 죄를 짓는다는 것에 대하여 이미 엄청난 사회적 통제와 구속력이 가해진다는 법률적인 의미로 보자면 이 논리는 불필요한 논리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으로 가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일과 같다는 평은 새롭게 평가해야 하는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
" 덩치가 큰 낙타가 이미 세상에서는 그 덩치보다 더 큰 바늘 구멍을 술술 통과해서 지나가고 있지 않는가 ?"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살았다면 당연히 천국은 못가는 일이겠고, 그나마 세상살이 할 때는 편하게 지냈으니 지옥으로 갈 준비나 잘 해 두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스로 생각해 봐서 지은 죄가 많을 걸로 생각하신 회장님이 아마도 죽음을 앞두고 잎을 내다 보니 혹시나 하고 이것 저것 걸리는 게 많고 두렵긴 두려우셨던가 봅니다.
그러나 정말 죄를 지은 일이 많다면 보시로서 베풀어 모두 풀어 매시면 됩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골치 아픈 개성공단을 모두 인수하셔서 운영해 보세요.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바늘 구멍을 크게 열어 주셔서 무사통과 시켜 주실 겁니다. 남북한 합의고 뭐고 필요 없이 큰 재벌에서 운영하는 개성공단이니 북한에서도 함부로 이래 저래 공갈 대상으로 삼지는 못할 겁니다.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20 번 항목자료를 보시면 이 항목의 해답이 저절로 나온다. 종교가 번창한데 왜 범죄가 끊이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공통된 내용의 질문이 중복되어 있으므로, 특별히 여기서는 이태리란 국가를 지칭하여 묻고 있는 이상 자칫하다가 이태리 국민에게 큰 실례를 범하여 국제 분쟁이 생길까 우려되어 답을 삼가기로 한다.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종교적 이데올로기와 사상적 이데올로기는 인간성으로 구성되어 감에서 일치하는 점이 많습니다. 먼저 그 정신적 분포 범위가 유사합니다. 인간 대뇌에서 작용하는 이성적 판단영역을 초월하여 감성적 판단에 의하여 기억되는 간뇌 속에 기억이 저장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입니다. 배우고 익혀서 단순한 학습만으로 기억하는 것들은 지워지기도 하지만, 인간의 사고영역 중에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심층적인 기억 속에 젖어 들어가는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요소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인간의 기본 의식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를 세뇌화 과정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종교적인 광신자나 사상적인 극단주의자는 공히 인류의 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공산주의 사상이라서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사상체계이든 종교체계이든 인간 이성을 마비시키고 ,초법적 행동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행위는 제재되어야 하며 , 이를 행동으로 실천해서 옮기는 사악한 행위가 선량한 시민들의 생활을 구속하고 방해할 경우에는 징벌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예 ; 폴랜드등 동구제국, 니카라구아등.
이 질문은 현재로서는 이미 공구권 국가들의 자유화로 인하여 이런 현상이 현실적으로 사그러 들어서 그다지 의미가 없는 내용이지만 답을 드립니다. 공산권이란 무엇인가 하면 현실적으로 어떤 양상을 보이건 간에, 일단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내걸고 정치를 하는 이데올로기란 , 기독교의 기본이라고 할 평등사상에 입각한 보편적 부의 분배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유의 개념에서 사유라고 하는 이념적 차이를 제외하고는 원초적인 기독교 원리와 공산주의의 경제적평등사상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경제개념은 유사한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미제국 특히 쿠바와 베네스웰라 같은 경우에는 미국의 독점 자본에 의한 지배가 오래 지속된 까닭에, 원하는 생활 수준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대중들이 카돌릭의 힘으로서는 무리다. 하나님도 우리의 생활을 평등하고 윤택하게 보장해 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여 사상적인 반기를 든 것일 뿐입니다. 특별히 카돌릭 신앙 국가이니까 그렇게 공산화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카돌릭은 바티칸이라고 하는 세계적 중심체라 존재하므로, 이 문제에 대하여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해왔으나, 빈민의 항쟁 대상인 피식민적 총독부라고 할만한 중앙정부는 독재체제로 압박을 가하여 저항하는 국민들을 탄압하였다가, 오히려 바티칸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밀려 나게 됩니다.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를 지속하고 있는 나라가 많지만, 카돌릭이니까 공산화 또는 사회주의화 했다고 보는 견지는 옳은 판단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 역시 최근세사에서 독재정부를 무너뜨린 주체로서 카돌릭의 역할을 높이 평가해야 할 시점입니다.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 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그 어떤 종교도 범죄를 막지 못하면서 범죄자를 용서하는데만 노력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교회이든 절간이든 어디나 그들 나름대로 인간적 참회나 잘못에 대한 회개의 장을 마련하여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범죄가 늘어나는가 하는 원인은 다름아닌 경제적 불평등을 부당한 방법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비정상적인 사람들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주거나 유혹함으로서 노예화 시켜 가지고 찰나적 소유와 지배의 쾌락에 의지하려고 드는 요상한 인간상들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착취와 지배의 구조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성범죄는 성적인 착취라고 보아야 하고 강절도나 공갈등 경제범인 경우에는 경제적 착취라고 보아야 합니다.
극단적인 범죄에 속하는 살인도 역시 생명착취로 보아야합니다.
앞으로 모든 종교는 이 문제에 대처하는 공통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경찰서가 아무리 많아도 범죄가 감소하지는 않듯이 종교집회소가 아무리 늘어나도 그러한 노력이 없는 한, 범죄는 끊임 없이 늘어날 것이며 심지어 종교를 이용한 범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갈 것입니다.
21. 로마 교황의 결정에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로마교황이 잘못을 저질렀던 중세 시대에는 그 권위가 더 대단했던 것으로 압니다.
현시대에도 교황의 권위가 강력한 것은 사실입니다. 로마는 멸망했으나 바티칸제국은 세계제국으로
살아남아 종교라고하는 테두리 안에서 엄청나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몇 달전에 전 교황은 스스로 자리를 양위하고 새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 지난 교황의 말씀 중에 시대의 흐름에 더욱 앞서가는 캐돌릭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캐돌릭교회라고 해서 세계적인 민주화 추세를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중을 대하지 않습니다 . 아래 사람의 말이 더 귀를 기울이고 혁신적인 종교로서 거듭나려 애쓰는 흔적이 역력합니다. 오히려 신교가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보수화하여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질문의 제목만 봐서는 흥미를 끌고 참 재미난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신부와 수녀가 독신이라고 말하며 그 이유를 따져 묻고 있지만 진정한 독신일까 하는 점과 더불어 왜 이 질문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므로 마치 캐돌릭에 대한 힐난을 하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종의 종교 비하와 모독하고자 하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고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독신이기를 요구하는 비구승의 종교적 위치와 닮았습니다.
그러면 질문자에게 물어 봅시다.
당신은 독신입니까 ? 만약 독신이라면 혼자 사는 이유가 어려가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만일 기혼자라면 왜 결혼하셨느냐고 묻는데 답변이 간단하게 나올까요 ?
마찬가지입니다.
신부나 수녀님들이 왜 독신으로 사는가 하고 묻는 것은 당신에게 누가 "왜 독신이나 기혼으로 사는가"를 묻는 거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일단 규칙이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 거기에 따르시는 걸로 판단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독신이나 기혼으로 사는지에 대한 답은 참으로 모호할 것입니다. 그 어떤 규제나 누구의 종용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든지 아니면 누구와 살고 있는 당신은 뭐라고 답하셔야 할지가 너무나 궁금합니다.
신부와 수녀님이, 캐돌릭에 몸담은 종교인으로서 살아가며 굳이 종교생활하기도 바쁜데 결혼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지가 의문이며, 그렇다고 해서 혼자 살아야 할지도 의문이며 애꿎은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은 특별한 이유를 찾고 계시겠으나, 별로 특이한 이유는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규칙(신앙률)이 그러니까 그렇다 이외에 무슨 답이 있을지요.
왕조 국가의 환관들도 결혼을 했는데 왜 독신을 강요하느냐 하고 항변하신다면 그건 좀 무리가 있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종자로서 그 분의 뜻에 순종하여 내 일생을 바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사람이, 결혼하여 생활을 꾸려나가면서 국가로부터 세금을 원천징수를 당하는 동일한 시민의 자격으로 과연 과연 대중들을 인도하고 설득할 권위가 설지? 우선 종교지도자의 그런 설득력과 지도력이 발휘될 때, 힘의 강약이 어떻게 나타날지 살펴 보십시오.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80~90년 대까지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진취적인 단체가 있었으나 지금은 존재하는지 조차 분명치 않습니다. 아마도 해체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기업주를 착취자로 보는 관점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관점이며 만일 당신께서 종교인이라면 이러한 관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한국사회에서 착취 이전에 당연한 보수를 미지급하는 갑을관계에서의 불평등계약이 문제가 되는 시대입니다.
종교사회도 역시 사람이 사는 세상이므로 이런 문제에 개입한다고 해서 이를 부당하다고 보는 견해는 옳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미덕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 돈으로 잘 살게 해주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는 뜻이라면 정중히 사절합니다. 왜냐 하면 돈으로되는 일과 되지 않는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기업의 눈으로 보면 수혜적 입장이 종교인이라고 해서 입 다물라고 해도 그건 아마 무리일 겁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저항적인 종교적인 단체의 존재가 눈에 띄지 않는군요. 그만큼 사회가 발전해서 그런지 아니면 무관심해져서 그런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지구의 종말은 우리가 사는 동안에는 최소한 오지 않을 걸로 봅니다.
종말론은 종교적 심취성이나 위대한 신에 대한 굴종성 같은 종교 찬미주의자들에게 가장 좋은 입신 자료로 응용되는 하나의 미끼일 뿐입니다.
그래서 종말이 정말 온다면 그런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왜냐 하면, 그 동안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종말의 실체를 그들에게 뚜렷하게보여 주고 신의 존재와 그 위력을 증명해 주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적인 세게에서 이미 파탄이 다가와서 환상적 종말이 온 그들의 눈과 귀에는 이 지구가 파괴되어 산산조각이 나는 모습이 보일 것이며, 비록 그 일이 상상에서 오는 느낌일 뿐이라고 아무리 깨어나라고 가르쳐 주어도 그들은 절대로 믿으려 하지 않고 이미 시작한 종말에 흐느끼며 오열하며, 자기등속만 구원하여 휴거해준다는 이기적인 신의 유혹에 빠져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실제로 닥치지 않는 종말일 뿐인 환상적인 종말세계에서 자기 스스로를 종말처리를 하고자 할 겁니다.
바로 그것이 종말이 아니라 사이비 종말론에 심취한 종교가 보여주는 진정한 종말일 것입니다. 지구의 종말 이전에 개별적인 사회도덕과 인륜의 종말이 오지 않기를 기원해야 할 시점입니다.
2013년 6월 9일
제마법선사 서산 청강 파사 장선생 묘연제 선심화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