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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과 선녀는 잘 알려진 전래 동화이며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한국 뿐 아니라 스마트라와 버마지역에 이르는 동남 아시아에 널리 퍼져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남방계 설화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다만 남자가 나무꾼이 아니라 사냥꾼 또는 어부로 등장합니다.



대강 내용은 나무꾼이 선녀들이 목욕하는 데 다가가 몰래 숨었다가

제 마음에 드는 선녀 하나를 점찍은 다음 날개옷을 감춰 버리고

거의 반강제로 데리고 살다가 어느날 날개옷을 가지고 있다고 비밀을 털어 놓는 바람에 ,  

그 옷을 되찾아 입은  선녀가 하늘로 다시 승천하여 갈라서게 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착한 선녀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내밀적인 비밀을 들은 이상 하늘로 날아가 버릴 수 밖에 없다.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자식을 낳고 살다가 무정하게 도망치느냐, 그 건  너무하다.

바보같은 나무꾼이 제아무리 선녀 아내를 휘어잡을 자신감이 넘쳤다 하여도 선녀옷을 뺏길 만큼 분위기에 속아서  비밀을 털어 놓다니 입이 싸구나.. 등등





뒷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렇지만 나무꾼과 선녀가 본질적으로 무슨 연유로 만나서 그렇게 살다가 정말 홀연히 사라져야

하였는가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습니다.





잠시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다.

어떤 총각이 돈 버느라고 애쓰다가 혼기를 넘겼는데, 언제쯤 장가 가게 될지 혼사 운을 물으려고 보살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나 거기서 일하던 예쁜 보살(무당)과 눈이 맞아서 자주 다니다가 이윽고 보살에게 청혼을 합니다.

보살은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조차 조건 하나도 따져 묻지도 않고, 미리 약속이나 했던듯이 그 총각과 결혼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한 동안 아무 일 없이 두 사람이 잘 살며 아이도 낳습니다.

이상한 것은 어느날  갑자기 보살이 사라져 버립니다.

키우던 아이도 데리고 스르륵 어디론가 어름 녹듯이 사라지자 남자는 정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 주변에서 뜻밖에도 가끔 일어나는 일입니다.

원인을 잘 알 수 없는 가출 실종사건이지요.



그 남자가 저에게 묻습니다.

보살이 왜 사라졌을까요 ?

- 그 보살의 고향이 어디래요 ?

모릅니다.

- 주민등록은 있을 거 아니요 ?

네, 그런데 그 걸로는 종적을 찾을 수가 없어요.

- 부부 사이는 원만했나요 ?

그럼요, 좋고 말고요. 정말 뜻밖입니다.



그리고 한 일년 쯤 지나서 언제 그랬느냐 하며 다시 아이를 데리고 나타납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잘 살아갑니다.



제가 집 나갔던 보살을 만나서 묻습니다.



- 그 때 왜 사라지셨나요 ?

신령님이 시키셔서요.

- 정말이예요 ?



- 이상하군요. 그래도 서방님한테만은 말하고 갈 수 없었나요 ?

신령님께서 아무 말하지 말고 집을 나오라고 하셔서요, 그렇게 해야 남편의 목숨이 보전된다고 하셔서요.







우리는 여기서 나무꾼과 선녀 설화와 공통된 점을 한가지 찾게 됩니다.

"~을 발설하면 안 된다"고 금기시 하는 타부(taboo)가 설정된다는 점입니다.



선녀 설화에서는 나무꾼이 선녀의 옷이 어디에 있는지 행방을 알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금기가 설정되었으며

그것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선녀가 옷을 찾아 입고 기다렸다는듯이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현재 생활에 그 보살이 보여준 기행에서도

너의 행방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금기사항이 지켜집니다.





묵언하라는 금기사항은 곧 신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금기를 금기시하면, 입과 목청이 간지러워 참기 힘든 것이 우리 인간의 심리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쌓은 상대의 신의를 믿은 나머지

무턱대고 하나부터 열까지  비밀을 누설해 버립니다. 바로 거기에 설화의 중요한 요소가 숨어있습니다.



처음부터 선녀옷의 행방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는 금기가 설정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가 인간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밀을 누설하는 순간,

모든 행복요소는 송두리째 빼앗기고 맙니다.

.... 이를 테면 바로 그것이 요즘도 흔히 말하는 천기누설에 대한 벌칙이라고 하겠습니다.



각설하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오늘에야 비로소 여러분에게 털어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랜 옛날에는 천관녀라고 불려질만한 무당들이 참으로 많았던가 봅니다.

그들은 왕실의 일상생활은 물론이며  국가적인 대사를 판단함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아 관리하였다고 합니다.

전쟁 위험이 발생하였을 때, 승리가능성 타진은 물론이며 전쟁 개시와  지속 여부, 왕실 결혼의 모든 절차와 시기의 결정, 왕권계승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은 결정권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아마도 초기 신라시대의  6촌장이나 부여의 5대 부족장들은 천관의 역할을 겸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를 들어서 천관녀가 등장하는 신라시대 중기까지는 천관녀가 가지는  무당으로서의 기능이 대단히 중시되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분이 바로 미실이라는 인물로 봅니다.  

당시 김유신 장군은 천관녀를 사랑하다가 그만 둡니다만, 망국 가야족에 불과한 그는 사실상 천관녀와 연애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키고 나서 가야 왕실 장군의 후예인 청년 김유신이 천관녀에게 대우 받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나라를 위하여 천관녀 집에 가지 않았다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만든 교훈일 겁니다)





이 쯤 해서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고, 다시 나무군과 선녀이야기로 돌아 갑니다.







가짜 무당은 본래 사이비니까 문제가 안 되므로 이들은 처음부터 제외하고 , 진짜 무당이 과연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니다.



" 나무꾼은 무엇 때문에 선녀인 아내를 다시 천상세계로 되돌려 보내야 하였을까 ?"



금기로 정해준 선녀옷에 대한 발설부분은 아마도 잘 알지 못한데 대한 합리화를 위하여 설정한 후대의 꾸민 이야기에 불과할 것입니다. 실제로 진짜 무당은  배우자를 두고 살아가기가 무척 어려운 영적인 존재들임에 무당세계를 잘 아는 분들은 거의 모두 공감합니다.  그들은 천상 세계의 영혼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삶에서 동물적인 부분의 삶을 살면서  본능적인 행복을 맛보며 사는 일은 애당초 불가능한 사람들입니다. 그 점을 잘 알고 이해하여 주셔야 합니다. 지상세계에서 제아무리 영광을 누리고 빛나는 생활에 만족한다 치더라도 무당에게 영적인 즐거움은 별도입니다. 그래서 항상 뭔가 모자라다는 느낌을 지니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 바로 일반 여성들과는 다른 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아무리 상세히 설명하더라도 여러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생략하기로 합니다.

(그렇다고 무당을 외계인-ET계열-의 승계자로 여기시는 것은 오해입니다)



오래 전부터 무당을 아내로 삼는 일은  결혼을 하더라도 실제로는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확신을 가진 조상님들이 여러가지 부부 이별  사고를 보고 겪으면서  하나의 지혜로운 설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바로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입니다. 그냥 어떤 남자가 무당과 살다가 훌쩍 아내였던 무당이 자리를 떨치고 떠났다는 말로는 납득하기 어려우므로, 아주 친절한 마음에서 재미있는 설화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불행을 겪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무당 배척의 설화입니다.



비슷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설화에 처용설화가 있습니다.



처용 설화를 잘 살펴 보시면  안 사람으로 등장하는 처용의 부인도 무녀 중의 한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요즘의 정조의식이나 윤리의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과정을 거쳐 처용이 놀러간 사이에 처용의 아내는 역병을 몰고오는 남자 귀신과  바람을 피우다가  들킨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살펴 보면 어떻게 처용의 아내가 역병귀와 통정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그 점에서  신라 시대의 여자들은 쉽게 몸을 아무에게나 허락하였다는 등의 무책임한 추정은 불가합니다. 어차피 처용은 아랍에서 온 내과의사라는  점에서 역병귀는 처용을 무서운 사람으로 여기는 처지라고 나오는데, 더구나 병귀의 악행에 대하여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처용에게 굴종하여 쳐용의 얼굴만 보아도 도망가겠다는 약조를 하는 것을 보면, 그 아내는 귀화 외국인이었던 처용의 아내이며 동시에 의녀 역할을 하며 살아가던 무당임을 짐작하게 됩니다.  당시에 무녀와 의녀의 일은 동일한 차원의 일이었으므로 병을 치료하는 역할의 일부분을 맡고 있다가  환자와 의녀사이로 쉽게 만나 친해지고 성교를 하였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 구체적인 설명이 없지만 이 설화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로서의 역병귀는 아마도 단순히 역병에 걸린 남자였을 겁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처용의 아내도 첫 번째 이야기에 나오던 선녀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처용의 아내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 처용과 부부관계를 지속했는지 아니면 헤어졌는지 조차 언급이 없습니다.

그만큼 언급을 할 수 없는 높은 신분의 여자입니다. 아마도 처용은 처용가를 부르면서 속을 삭이며 통정사실을  모른 체 하였을 것입니다.



오랜 옛날에 무녀는 대단히 사회적 계급이 높은 여성들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는 무당의 신분으로 평가하여 본다면  해석이 안 됩니다.

나무꾼 같은 평민은 감히 넘볼 수 조차 없는 높은 신분인데 어쩌다가 넘보았다가 한 여름밤의 꿈을 빼앗기는 과정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꾸며낸 설화가 바로 나무꾼과 선녀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거기 나오는 선녀란 요즘말로 보면 무녀를 가리키는 것이며 함부로 넘보다가 신세 망치지 말라는   교훈을 남긴 것으로 보시면 될 줄로 압니다.



그런 점에서 살펴 보면 이제 또 하나의 진실을 밝힐 수가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된 덕만공주란 분도 역시 무당입니다. 출신이 다를 뿐입니다. 직업 무당이 아닐지라도 대단한 영감을 지닌 여인이었음은 이미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설화에서 여러번 역사적인 증명을 하셨습니다. 왕실 무가에 속하는 미실이처럼 무당로서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정치적인 두뇌도 남부럽지 않게 탁월하셨다고 봅니다. 그래서 신도정치에서 왕도정치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여성의 몸으로 역사적인 면에서 첨성대 같은 실용적 업적을 많이 남긴 인물이 되신 겁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보통 사람과 결혼이 불가한 무녀들과 통정하여 공연히 마음 아픈 일을 겪거나 목숨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설화이며,

지금에 와서 살펴 보면,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 당시의 무녀들은 엄청난 권력을 가진 계층이었으므로 남자 하나 둘 쯤 죽이는 것은 별 일도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 이야기가 남방계 설화라면 바다 건너온 사람들로서 계층을 무시한 결혼은 곧 파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그에 대한 노파심과 경계심을 다져주는 설화가 아니었을까요 ?






2011년   7 월  17 일  제마법사  청강/ 서산/ 장선생/ 김세환


휴가 잘 다녀요세요....
아래는 옥수역 귀신입니다.
Ghost in Oksoo- Station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350217&no=5&weekday=thu


놀라셨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