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일기] “ 사랑받기 위하여 다시 태어난 부인의 죽음 ”
가난한 어느 부부가 불교를 열심히 믿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수십 년 동안 착실하게 초하루 보름을 빼뜨리지 않고 법회에도 나가며 정말 건실한 신도로서 그 절에 다녔습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잘 살게 되고 드디어 부자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그 절에 다니게 되고 나서 부자가 된 사람이라면 바로 이 사람이라고 법회 때마다 신도들에게 자랑하며 부처님의 가피를 받은 사람이라고 자랑하셨습니다. 그 부부는 절의 불사에 나서서 요사채도 새로 개축해 드리고 하면서 자신들의 모든 발복은 절에서 입은 가피라 생각하고 갖은 정성을 다 하여 공을 들입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 절에 나오기 전까지는 청계천에 있던 구석진 공구상에서 시작하여 아무리 성실하게 꾸준히 일했어도 잔돈 한 푼 제대로 만져 보지 못했던 생활 형편이었으니까요. 부부는 부처님 가피로 스패너나 플라야 같은 자동차 전용 공구 공장을 운영하다가, 큰 마음 먹고 투자한 공장부지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바람에 그 반절을 팔아 변두리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상장기업으로까지 성장 시키고 그 업계에서도 성공사례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서로 아끼고 열심히 일하던 부부가 사별을 겪게 됩니다. 언니가 사는 춘천에서 돌아오던 길에 아내가 교통사고를 만나 명을 다합니다. 이제 겨우 갓 쉰 살의 나이를 넘긴 부인으로서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 당연히 곁에 있던 정든 부인을 잃게 된 남자는 너무나 갑작스레 다가온 불행에 어이가 없었든가 봅니다. 부처님도 원망스럽고 스님도 원망스럽습니다. 그래서 따져 보려고 스님에게 찾아 갔습니다.
“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을 겪는 건지 좀 알려주세요.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한 것 도 좋으니까 저를 좀 설득시켜주세요...스님.”
이제 좀 잘 살아 볼만 하니까 왜 내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는지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자기를 설득해 달라 합니다.
정말 난처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스님은 이럴 대 대처할 방도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 뭐라 말해야 마음이 좀 편해질까요. 이것이 다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각박하고 그렇다고 해서 업장이라고 하여도 꼭 들어맞는 말은 아니고, 누구나 이럴 때는 설명을 하기 어렵겠지요. 나는 잘 모르겠으니까 내가 잘 아는 법사를 한 번 찾아 가보도록 하세요. 그 분이라면 아마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그런 의문에 답을 해줄 거요.”
그 스님은 자신이 공부하시다가 풀어내기 어려운 질문이 생기면 곧잘 저를 찾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신도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는데 풀어 볼 방도가 없으면 저를 만나서 방도를 구해 보라고 슬며시 보내시기도 했었습니다. 저를 찾아 온 그 분이 바싹 저에게 매달리십니다. 여차여차하여 저를 찾아오신 사연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더군요.
이야기가 시작된지 한 참 시간이 흘렀습니다.
서글픈 사연을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입을 떼고야 말았습니다.
“허허 참 기가 찬 일이 다 있군요.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있군요. 당신께서는 두 번 씩이나 그 여인을 속이셨군요. 가난에서 벗어나면 좋은 일 많이 한다고 하셔 놓고는 그저 절에다가 보시하는 그런 정도의 일만 하고 , 실제로 당신께서 이 여인을 위하여 진심을 보여준 일이 뭐가 있으신가요. 그래서 그분이 당신 곁을 빨리 떠나신 겁니다. 전생에서도 이 여인은 당신의 관록과 조정에서의 큰 성취를 위하여 갖은 수모와 모진 고초를 겪어 가면서 도왔는데, 이생에서도 다시 반복하셨군요. 이상하게도 부인한테 해드린 게 아무 것도 없군요. 당신께서는 함께 사셨다기 보다는 혼자 사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가까운 부인을 위하여 최소한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과 봉사를 하셨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 부인의 힘으로 오늘의 당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 도와주고 애를 썼지만 전생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고마워하는 아무런 기색이나 정성을 전혀 보여 주지 않으시니 일찌감치 떠나버릴 수밖에요.. 너무나 빨리 가신 이유는 단지 그 한가지뿐입니다.“
전생에 빚진 것을 받으러 왔는데도 남편이 빚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다시 일이나 하고 당연한 일처럼 버티니 그냥 훌쩍 떠나감으로서 갚음을 하는 것이라고 일러드렸습니다.
남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우셨겠지요.
“ 그런 말을 어찌 믿겠습니까 ?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한다고 했습니다. 불편함 없이 쓸 만큼 마누라 용돈도 충분히 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아니 잘 못 보신 겁니다.”
“ 그래요 ? 진정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참으로 기가 막혀서 더 할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더군요.
눈물이라도 가득하게 흘린다면 저도 이해를 하고 동정을 할 여지가 생기지만, 그 분은 자기의 전생 업장이라고 하는 데 대하여 반발하며 정말 오만하기 그지없더군요.
“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셨다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면 그게 사랑하는 겁니까 ?”
“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
“ 당신께서는 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돌아가시고 나니까 저한테 까지 오셔서 그런 질문을 하는 거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배우자가 일찍 세상을 버리고 떠나면 남은 사람의 죄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렇게 무엇이 원인인지 그것만 찾으려 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자기내부가 아닌 밖에서요. 그러실 수는 없습니다. 당신께서 진정 부인을 사랑하셨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더 오래 함께 살아 계시다가 당신의 관 뚜껑도 덮어 주셨을 분입니다. 당신께서는 물질적인 것, 감각적인 욕망 그런 것만 만족하면 우리 인간이 다 행복하고 사랑을 느낄 것이라고 주장하실지 모르지만, 당신께서는 무슨 인과법이니 뭐니 그런 것만 찾아다니시면서 , 진정 부인이 왜 그렇게 빨리 저승길을 서두르셨는지 진정한 이유를 알아보려는 마음은 없으시고 그저 무슨 업장이냐에만 매달리시지 않습니까 ?”
자칫하면 싸움이 될 것 같아서 자리를 거두고 더 이상의 긴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스스로 생각해 보면 깨우칠 수 있는 일일 테니까요.
그리고 나서 한 달쯤 지나서입니다.
스님이 연락을 해옵니다. 사십구제 천도식 주관을 저에게 해 달라 하십니다. 스님도 아닌 저에게 절에서 하는 천도를 맡아 달라 하시기에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러 제 집무실에 까지 찾아 오셔서 간절하게 청하십니다.
“ 대충 얘기를 들었어요.... 그 양반 부인 천도해 주면 정말 고맙겠는데... ”
그런 간절한 스님의 청을 내치기는 힘들었습니다.
천도재하는 날입니다.
“ 지난 한달 동안 저는 기도만 했습니다. 제 아내를 위한 기도만 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겪은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가슴이 시큰하게 저며 오면서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움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 제 아내를 만나게 해주세요. 선생님은 아내를 만나게 해 주실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눈에서 비로소 진정한 눈물이 흐르더군요.
....그래 이제야 자기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랑의 대상이었는지를 죽고 나서야 깨달으셨구나 !.....
천도재가 막바지에 이르러,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불러 부부가 살가운 대화를 나눕니다.
“ 여보 미안해요. 당신에게 내 마음을 담아서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애. 너무 미안해 ”
.....“ 네,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오래 오래 잘 살다가 가시면 좋겠어요.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는 아무 여한이 없어요.”
뜻밖입니다. 무슨 말이라도 앙갚음이라 생각되는 불만스러운 표현이 한마디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말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여인의 진심입니다. 아무리 섭섭하여도 이미 죽은 몸인 자신이 원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무엇이 사랑인지도 모르고 “ 잘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던 남편이었습니다.
천도를 잘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여러 가지 착잡한 심정입니다.
세상에 과연 얼마나 많은 배우자들이 서로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살다갈까 ?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문제일 뿐, 어쩌면 부처님도 하나님도 별 관심이 없으시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사별한 이후로 지금까지 제법 오랜 년 수가 지났음에도 재혼을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아내가 죽고 나서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아마 다음 생에서는 더 좋은 부부로 오래 오래 잘 살다가 가시겠지요.
2010년 9월 15일 제마 법선사 서산 청강 장선생 파사 김 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