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법문] “ 김 선생이 어쩐 일로 여길 다 오셨나요 ?”
뜻밖에도 방안에 들어서서 벽에 걸린 영정사진에 묵도를 올리자 양 선생님의 영혼이 나타나셨습니다.
먼저 저를 알아보십니다.
소문에 듣기로는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없었기에 살아계신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댁을 찾아와 보니 돌아가신지 벌써 3년이 지나셨답니다.
“ 이렇게 찾아주어서 고맙소. 내가 살아 있을 때는 그래도 이름 들어 찾는 사람이 꽤 있었는데 죽고 나니 별반 찾아오는 이도 없고 그랬어.”
공방 작업장은 폐쇄되어 이제 곧 사라질 겁니다. 이렇게 인간 문화재가 60년동안 작업하던 자리가 먼지 낀 채 방치되었다가 사라진다는 것이 무척 아쉬었습니다.
그러나 영감님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대통으로 만든 연죽을 몇 대 주문한 것이 영감님에게는 고맙게 받아들여진 모양입니다. 정성들여 만든 백동 연죽이라서 아마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물건일 겁니다.
양인석(梁 麟錫)님은 아주 오래 전 인간문화재 제 7호로 지정되어 전통 담뱃대를 만드는 대장인으로 지정된 분입니다.
주문한 죽대를 끼우는 작업이 다 끝나자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부인께서 손수 해주셨습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더군요.
양 선생님은 현관 밖까지 부인과 함께 나오셔서 인사를 하여주십니다.
고마웠습니다. 끝까지 부인께는 남편 분의 영혼이 함께 계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문화재... 요즘 이것 하나 얻으려고 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하지요.
양인석 님 같은 분은 오랜 전통의 담뱃대 만드는 공방 일을 하셔서 단순한 기술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예술적 경지에 올라 그 결정체로서 인정받으신 분인데, 요즘은 배워서 인간 문화재로 인정 받으려한답니다. 한심한 일이지요. 어떤 일을 가지고 평생의 업으로 삼고 목숨을 걸고 생계를 걸고 자기가 노력하여 얻는 결실인데, 그것을 몇 달 몇 년 배워서 이룬다고 간단하게 생각하는 매우 합리적인 생각의 소유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강화도 화문석, 안동 삼베 백포, 통영자개 농 문갑, 머리에 쓰는 갓 짓기, 하회 마을 탈 등등 우리 문화에 길이길이 남아 그 기술이 보전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뤄진 인간문화재 지정제도가 어느 사이엔가 “ 명예의 대상”이라기보다는 , 축재의 대상이라는 취지로 바뀌어서인지 모르나, 너무나 가볍게 취급받고 마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양 선생댁에 가보니 그런 현실이 진실로 가다왔습니다. 이어받은 제자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대상이 담뱃대이기 때문이지요.
“인간문화재는 영적인 결정체”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전통물건을 만드는 기술자라는 식의 인식부족으로 인하여 점차 멸실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었습니다.
생활양식이 달라지고 문화가 바뀌었으니, 더구나 담배를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 현실에서 담뱃대 공방의 장인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모든 생활양식이 서구화되어 바뀌어 버린다면 언제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잊어버리고 말지, 그러다가 영원히 한국 사람이라고 하는 자긍심조차 버리게 될지 알 수 없지요.
오늘 길에 타워 형식으로 지어진 큰 아파트 건물이 너무나 괴기스럽고, 저 속에 무슨 우리의 전통문화가 살아남을 여지가 있을까하는 섬칫한 예감과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2010년 5월 24일 제마법선사 서산 / 청강 /장 선생/ 김 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