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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란 무엇인가 ?

2006.11.22 15:06

xemasa 조회 수:6154

영혼이란 무엇인가 ?

(1) 영혼은 특수한 존재이다.

영혼은 물질이 아니다. 일종의 광파와 유사한 활성체로서 질량이 없으면서도 에너지가 존재하는 정말로 특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의 물질과는 전혀 다른 유사활성체로서 빛에 버금가는 신비한 존재이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개념인 기체라고 불리어지는 일이 간혹 가다가 일어난다. 그러나 영혼은 기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기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애매한 존재인 영혼을 어떻게 인간의 영혼이 인지할 수 있을까 ?
그 과정은 과연 어떻게 이뤄지는가 ?
쉽게 설명하기위하여 아래와 같은 실제상황을 예로 들어가면서 설명해 보기로 한다.
우리 인간은 광선이 닿지 않는 암흑 속에서는 먼지를 볼 수 없다. 보이지 않던 먼지가 광선이 비춰지는 순간부터 시각을 통하여 인지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투사( prospection)처럼 혼의 존재가 인간의 영혼을 통하여 인지되는 것이다.
지하실의 작은 창구멍을 통하여 빛이 파고들어서 먼지가 뿌옇게 비춰져 기다란 원통형 통로 같은 것을 만들듯이, 영혼의 존재가 투사되는 것이다.  
그럴 때 먼지는 대상이 되는 영혼이고 빛은 인간의 영혼이다. 이 과정은 인간두뇌 속의 기억체계와는 전혀 상관없이 <투사>를 통하여 인지된다.

그렇지만 중요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아무에게나 다른 영혼의 존재가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시스템이 갖춰진 사람에게만 이 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영매체질(psychic's condition) 의 개념과 유사하지만 정확하게 영매체질이니까 이 능력을 가진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럴만한 영적 수용 시스템이 갖춰진 사람이라야 가능하다는 의미로서 , 실제로 평생 영적 체험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일 같이 영적인 일을 경험하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아도 이 점이 자명해진다.

이러한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


(2) 영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인가 ?

선천적으로 영적인 면에 예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살아가면서 점차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하게 증명된 바가 없다. 쉽게 말해서 무당 중에 선천적인 신탁수용 능력을 타고나는 <강신무>가 있고, 혈통적으로 세습되어 나가는 <세습무>라는 구분 개념이 있지만, 어느 쪽이든  영적인 능력 면에서 별 다른 차이가 없다.  무당이 되는 과정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아애 이런 면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런 세계는 너무나 소원한 것이라서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면,
“ 새벽에 꿈자리가 사나왔으니 오늘 하루는 조심해라.”
“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으니 , 위험한 데 가지마라.”
이런 주의하는 말을 어머니가 아들에게 하거나 할머니가 손자에게 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일상적인 우리네 생활인데, 서양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 그건 미신입니다. 악몽을 꿨다고 해서 현실에서 그렇게 조바심을 낼 일이 없습니다.” 할 것이다.
이는 엄청난 생활풍습의 차이라고 본다.
그러나 꿈을 의식하든 하지 않던 간에 그러한 꿈을 꾼 경우에 교통사고라든가 하는 유형의 나쁜 일이 벌어지면 미리 심리적으로 방어를 한 사람은 살아날 확률이 높지만,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사람은 더욱 큰 상처를 입거나 심지어 목숨을 앗길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어째서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 많을까에 대하여 곰곰이 연구해 본 결과 이런 결론이 내려졌다.

---“ 우리는 수천 년 동안 한반도라고 하는 지정학적인 취약지역에 생활터전을 마련하고 살아 온 결과 외침은 물론이고 정치 세력변동에 따른 내란이 끊임없이 닥쳐왔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일로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하여 방어기제를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일종의 심리적인 방어 시스템이 유전되어 나감으로서 영혼 속에도 장치된 것이다. 방어의 필요성이 별로 필요치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영적으로 민감한 영혼을 타고 나지 않지만,
항상 위험 속에서 이를 회피하거나 막아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이러한 영적 감응 능력이  진화하거나 또는 고래의 본능적 능력을 지키는 쪽으로 발달한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우리나라에는 무당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공식 통계가 나와 있지는 않으나 대체로 30 만 명 가량의 인구가 이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무당과 유사한 일을 하는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은 인구가 영적인 일에 종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비록 무당은 아닐지라도 종교인으로서 천도하는 일을 하거나 점을 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까지 포함한다면 대체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영적 사업에 종사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그들 모두가 영적인 사람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어느 정도의 영 능력이 없이 그 일은 해내기 어려우므로 그 정도의 인구가 된다고 볼 때, 우리나라 전체 인구 4천 5백만 명의 약 2.2 %에 해당한다.  
비근한 예로서 가까운  미국이나 일본 같은 경우는 서울의 미아리고개처럼 도회지 어디를 둘러보아도 점집이 수 10군데 모여 있는 곳을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영적으로 사는 사람이 외국에 비하여 많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3) 영적인 능력이 생기게 만드는 요소들

영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야 별 관심대상이 아니지만 때때로 영적 능력이 생기게 만드는 요소들이 있다.
충격, 의문, 명상 이렇게 세 가지 길이 있다. 영 능력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 가지 길에 서서 꾸준히 갈고 닦으면 반드시 영 능력이 생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세 가지 과정을 거치신 분이다. 처음에 카피라 성문 밖을 돌아보고 중생들이 생노병사하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그들의 아픈 생활을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어째서 나는 이렇게 왕자로서 편하게만 살아야 하는가 ? 이게 사는 것이란 말인가 ? 영원히 사는 법이 과연 무엇일까 ? 여러모로 고민한다. 이 과정이 바로 의문을 가지고 대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나서 성을 떠나 스승들을 구하다가 결국 스스로 자기 혼이 스승임을 깨우치고 설산으로 향한다. 이 부분이 바로 명상이다.
충격 >  의문 > 명상 이 3단계는 누구나 수행자에게 반드시 요청되는 중요과정이다.
그럴듯한 직책 맡아서 위세나 부리고 힘주려 하는 이들은 평생 이 과정이 다가올 까닭도 없을 것이며 큰 그릇으로 커지지도 않는다.

★ 충격이란 문자 그대로 충격이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거나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아니면 인생길에서 큰 상처를 입고 도저히 일어서지 못할 상황에서 영능력이 생기는 일이 흔하다.
그 예로서 무당 들 중에서 애인에게 버림을 받고 그 날부터 울고불고  몇 십일 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방에 칩거하다가 신을 받았다고 하면서 뛰쳐나오는 경우가 바로 이런 현상이다. 내면을 살펴보면 신이 온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하여 자기 영혼이 다시 재가동되기 시작한 일일 뿐이다. 쉽게 말해서 그 동안은 인간적으로 뇌에 의지하여 살다가 비로소 영혼의 존재가 충격으로 인하여 겉으로 드러나서 활동하기 시작한 일이다. 오직하면 , 경희대 명예교수님이신 서정범 교수님이 이런 내용의 말을 하셨겠는가.
“ 무당들은 정신적으로 무척 외로운 사람들이예요. 사랑을 받지 못한 애정결핍증환자들이 대다수입니다. 물론 실연의 고통을 겪은 이들이 많지요. 저는 신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들은 어떤 알 수 없는 기를 가지고 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많거나 적은 신기를 가지고 태어나는 이유도 이런 한 맺힌 과정이 역사적으로 누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병석에 누워서 죽을 날 만 기다리던 환자가 갑자기 일어나서 병이 다 나았다고 외치며, 그날부터 영 능력이 생겨 타인 점을 보는 일도 있다. 그런 경우는 병고라고 하는 고통이 그에게 충격을 주어 “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고 하는 사생결단의 의지가 발동한다.
그 의지가 마음을 움직이고 드디어 살아 있는 영혼의 커튼이 서서히 열려 젖혀지는 일이 바로 영 능력의 발현이다.

↺ 두 번째 요소가 의문이다.

의문이란 집중을 말한다.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사람이 영적 능력이라고 하는 것을 빌어서 돈을 좀 벌어 보려고 한다면, 거기에 아무런 의문이 있을 수가 없다. 뭘 해도 안 되고 , 시도하는 쪽 쪽 망해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는데, 대체로 그냥 무너지기 일 수이지만 , 이따금 이런 상황에서도 ,
“ 나는 왜 이 모양일까 ?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해쳐나갈 수가 있을까 ?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내가 잘 못한 일은 무엇이며 어찌하면 내가 다시 일어설 수가 있을까 ?” 한다면,
이것은 대선사에게서 화두를 받는 일과 어느 모로 보나 차이가 없다.

“ 왜, 왜, 왜, ??? ”
충격을 받아 놓고 나서도,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사람의 영혼이란 충격을 받아야 제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으며 의문을 강하게 지니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하여 강력하게 집중하면서 돌진하라고 권한다.

ទ 그 다음 과정이 명상이다.(불가에서는 이를 가리켜 참선이라고도 말한다.)

영 능력은 글자 그대로 자기 영혼의 능력이다.
영혼의 능력은 명상을 통하여 뇌기능을 쉬게 해야 나타나기 시작한다. 뇌라고 하는 신체부분은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시적, 통관적인 감각을 무시하고 오로지 육신으로 전달된 정보만을 가지고서 일하게 만든다. 그래서 개인 차이가 들어나는 경우에 머리가 좋으니 요령이 좋으니 통찰력이 있느니 어쩌니 하는 얄팍한 부분적인 능력 차이로 말을 하게 된다.
명상은 충격을 받은 자가 그 의문을 깊이 새겨서 뇌의 기능을 쉬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명상을 통하여 어떤 사람은 부처님이 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자기의 영적 능력을 틔우는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일이 불가하더라도 최소한 사람이 현인을 만드는 결정적 성과를 내어준다.

이에 드는 대표적인 사례가 시인 고은 님의 경우이다. 그분은 불가에 귀의하여 큰  스님으로 귀착할 뻔한 분이다. 하지만 선사상(禪思想: 선을 중심으로 한 모든 사념체계의 정립)과 禪詩想(선을 주체로 한 시 정신)으로 점철된 그 분의 시대정신은 특정 종교에만 머물지 않고 만 중생의 영혼에 빛을 주는 좋은 시와 담화로써 감명과 전률을 선사한다.  그런 경우가 바로 오랜 명상 생활을 통한 영적 사고와 심상의 안착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분은 언젠가는  노벨상을 반드시 수상하실 것이다.

수행과정에서 아나함. 사다함. 아라한의 과정이란 이런 단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야식이니 말라 식이니 하는 용어도 뇌 의식 구분이 아니라 영혼의식의 구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충격을 받기 싫어하고 곱게 자란 사람들이 그저 쉽사리 영 능력을 얻겠다고 힘쓰는 일이다. 더구나 신을 받으면 그날부터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이란 정말 눈뜨고 못 볼 일이다.  그들이 신을 받아 보았댔자  소용이 없다. 신은 자기의 영혼을 통하여 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천시하는 무당들이 무당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쓰라린 신고를 겪었는지를 안다면 그런 가증스러운 말이 안 나올 것이다.

그래서
“무당도 못 되는 것이 무슨 수행자냐 ?”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to be continued
2006년 11월  22일  법산/ 청강/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