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제가 스물두 살 먹었을 때의 일입니다.
먼 곳에 나가서 공부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시절에 부모님을 잘 만나서 소위 유학이라는 것을 가게 되었습니다. 막상 외지에 가보니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에 보탰습니다. 당시 시간 당 250 옌 정도 되는 주방 보조 일을 하면서 신사 한 사람을 알게 되었지요.
여름에 떠나서 겨울이 되자 단칸방 월세를 내는 생활에 자취를 하려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여름에는 이불도 필요 없이 살아갈 만한 기후라서 지냈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11월이 되었습니다. 콧물을 질질 흘리고 감기 기운이 돌자 친하게 지내게 된 마쯔자키 씨가 집으로 찾아와 “ 불편한 것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당시에 이미 나이가 마흔 중반을 넘기 신사였습니다. 그 분 역시 심심푸리로 주방을 보는 분이었습니다.
“ 네, 마침 겨울 이불이 없는데 하나 주시겠습니까 ?”
“ 물론이죠.”
그는 재미삼아 한국말을 저에게 배웠습니다.
그 말을 또박 또박 “무르- 론이지요.”하고 말하자 참 기쁘더군요.
저의 제자 노릇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자기 차에 겨울에 덮을만한 두터운 이불과 요를 싣고 왔더군요.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 분은 귀국한 이후에도 오래 동안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내는 평생의 친구가 된 사람입니다.)
저는 기쁜 마음에 어머니에게 편지를 내면서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 어머니 제가 일본에 와서 친구 한 사람을 사귀었는데 그 사람이 이불을 제게 선물했습니다. 올 겨울은 따스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 중에도 참 고마운 사람이 있더군요.”
그런데 이런 아들의 자랑 편지에 어머니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 그래, 참 잘되었구나. 그렇지만 넌 잊지 말아라. 난 너한테 무려 20여년이나 이불을 덮어주고 살았던 사람이란 걸...”
편지에 그런 글이 올라올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이가 없더군요.
공연히 슬프고 마음이 아프고 어머니가 밉더군요. 웬 생색을 다 내시나... 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가 왜 그때 그렇게 차갑게 반응하셨는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고마움은 마치 숨 쉬는 공기와 같아서 전혀 고마움을 못 느끼는 것이 인간이고, 어쩌다가 바람처럼 나타난 새로운 고마움에 대해선 대단히 민감하고 얄팍하게 반응하는 교활함이 우리들 마음자리에 숨어있다는 사실이지요. 더구나 등 돌리는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말이지요.
영혼이 되어버리신 어머니에게 전합니다.
“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제야 사죄드립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때 어머니 마음이 많이 아프셨지요 ?”
2009년 3월 29일 제마법사 김 세환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