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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모라는 사람이 왔다.
이 사람은 아주 급하디 급한 일로 왔다. 당장 호구지책을 마련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란다.
하는 말이,

“ 지금 저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선생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제발 살아갈 길을 열어 주십시오”

급하면 남에게 손을 벌리다가도 자신이 조그만 여유라도 있으면 남의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현대의 전형적 중년 남성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이제 나이가 52세로 직장을 가지기도 힘들다. 사업을 함께 하다가 뜻이 맞지 않아서 그만 둔지도 벌써 2년, 그 이후로 실업자가 되어 아내가 벌어 오는 임금으로 생활한단다.
졸지에 그 사람이 나를 만나러 오는 통에 나는 그의 <지푸라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 아, 그렇습니다. 저는 한 십년동안 많은 이들의 지푸라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날 조건이 한 가지 있더군요. 그 조건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무엇인가 하면---”
잠시 뜸을 들인다. 그래야 말귀를 알아 듣기 때문이었다.

귀를 반듯하게 세운 이 사람은 나의 말이 어떤 영험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고 집중한다.

“ 지푸라기가 되어 드릴 터이니, 지금 당장 물에 빠진 사람의 마음이 되어 주시고, 그리고 자신을 지푸라기보다도 더 가벼운 존재로 깊이 생각해 주십시오.  그래야 지푸라기를 꽉 잡았을 때 놓치지 않고 거기에 메달려 살아 날수가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

이 김 모라는 사람은 무척 진지했다. 나는 그의 무모한 자존심 따위를 버리고 마음을 가볍게 하라고 암시하였다.
이어 가지고 다음 말을 하였다.

“ 그리고 이제 내일부터라도 양노원에 가셔서 노인들 목욕시키는 일을 한 주에 한번 해보세요”
의아한 주문이다. 살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 양노원 때밀이를 하라니---
“그래야 합니다. 내가 지금 상태로 그냥 그대로 가면 나 역시 장차 이 노인들처럼 양노원에 쳐 박히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굳은 다짐을 하십시오 ”

선행을 하면 선과를 받아서 일이 잘  풀릴 것이다 하는 가르침에 입각한 이론이 아니라 지푸라기 보다도 가벼운 존재가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어야 자신의 모습을 즉각 알아차리고  장래의 위험에 대비한 강력한 심리적 방어선을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 사람은 내 말에 영험이 있었는지 모르나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   아마도 그는 마음이 가벼워진 만큼 반드시 재기할 것이다.

<참고>
개혁의 시대에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 애 타게 길을 열어 달라고 아우성치다가도 막상 권하는 일이 더럽고 힘든 일이라면 손을 내 젓고 “내가 누군데 그런 일을 해 ?” 하면, 그 사람이 더 이상 될 일이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지푸라기를 잡아서 살아나려면 당연히 그 지푸라기보다도 더 가쁜한  마음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아무 일이나 열심히 하여 다시 성공할 수 있는 마음 자세가 아닐까 ?
2001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