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 일기 (1)
“ 벽속의 영혼 ( Ghost in the Wall )”
2005년 1월 초 새벽 1 시,
그 집 방안에는 가구류가 몇 점 놓여 있을 뿐 평범하고 아담하게 꾸민 거실이다.
구석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지 않는 이상한 환영이 있다. 기체로 변하여 움직이는 존재이므로 쉽게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뜻밖에 쉽지 않았다. 기 흡수가 되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럴 때는 아무래도 도구가 필요하다.
“ 도자기 단지를 하나 가지고 오십시오.”
그러자 그녀의 모친은 얼른 안방으로 가서 값비싼 골동품 도자기를 들고 나왔다.
“이런 것 말구요. 아무 거나 가져 오세요. 이건 너무 비싼 것 아닙니까 ?”
“ 괜찮아요. 딸 선지가 나을 수만 있다면, 이까짓 게 무슨 대수예요 ?” 모친은 딸의 신병이 낫기만 한다면 하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영혼을 퇴치하려면 이런 굳건한 정성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 대충 보아도 그 도자기는 수백 만 원 정도 할 것으로 보였다.
사실 선지가 3일 전부터 몇 번 정령을 한 다음 몸이 흔들리는 현상도 사라지고 좋아졌었는데, 아직 완벽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집에 까지 온 것이다. 영시하여 본 그대로였다. 근원 령이라 할 그 영혼은 집에서 시꺼먼 남자 영체로 살고 있었다. 그것도 신상(神象)을 모셔 둔 마루의 벽에 붙어 있었다. 아마도 신앙대상이 장치되어 있는 자리이므로 감히 접근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 모양이다. 주문을 외우자 그 영혼은 흔들거리며 벽에서 분리되어 천천히 다가왔다. 그 영체를 나의 기체 속으로 빨아 들였다.
“ 아아악 ”
그때 안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선지가 영혼의 등장으로 파동을 받아 또 다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잘게 썰어 둔 무채를 도기에 밀어 넣으면서, 동시에 왼팔을 통하여 그 영체를 쏟아 내어 도기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끓는 물을 부어 밀봉했다. 악령이 고통 받기 싫어 몸부림친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저항한다. 물론 가족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다.
---( 너 무사할 줄 알아 ? 반드시 내가 너를 죽이고 말거야. 내가 나가기만 해봐.)---
주술을 끝내자 선지는 조용히 잠들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무사한 것을 확인하였다.
3 시간쯤 뒤.
돌아오는 길에 물이 흐르는 풀 섶으로 다가가서 영혼을 담은 도기를 꺼내어 정령 작업을 한다. 아무리 악령이지만 향을 피우고 영혼을 위한 천도를 정성껏 해 올린다. 그 영혼은 선지 네 식구들과 전혀 인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2년 이란 긴 세월 동안 집에 머물면서 선지를 괴롭힌 영혼이다.
“ 저는 선지 엄마가 멀리 여행을 갔을 때 붙어 왔습니다. 생전에 00 선수였어요. 외롭게 혼자 사는 여인이라서 함께 살려고 왔는데, 여기 와 보니 딸아이가 더 좋은 거예요. 나이도 비슷하고 그래서 제가 좋아 했지요.”
그 빙의령은 영혼세계로 떠나면서 자기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있었다. 주술에 사용한 도자기를 돌려줄 겸, 집에 다시 가 보니 선지의 병이 깨끗이 나아 있었다.
무려 2년 동안 그 영혼이 들어와 영동현상(빙의령으로 인하여 몸이 흔들리는 증상)을 일으켜 고통을 주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몸이 꺼떡거리며 뒤로 자빠진다. 그리고 온 몸을 뒤틀면서 마치 뱀처럼 흐느적거린다.
이런 증상이 2 년 가까이 지속되자 모친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기치료사는 물론이며 유명 퇴마사로 불리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여러 번 치료를 시도했으나 낫지 않았다.
그들은 영혼의 정체가 어디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으며, 어디든 찾아가서 없애려고 하는 강한 의지력이 모자랐다. 그래서 고치지 못한 것이다.
2006년 12월 6일 제마 김세환 법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