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예비 작업
: 귀신들은 자기의 활동에 방해가 되는 존재를 교묘하게 처단하여 무력 화 시키는 악독한 꾀를 부린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벌써 지난 봄에서 부터 비롯된다.
이0자씨의 남편 되는 사람의 남동생이 늦도록 장가를 들지 않았다가 갑자기 혼담이 진행되더니, 그 다음 주에 함을 지고 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번도 가 본일이 없는 그 집이 내 눈에 훤하게 나타나는 순간 웬 여자가 아이를 업고 현관에서 안으로 들어 가는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내가 본 그대로 이0자씨에게 말하자 그 여자의 정체가 누구이냐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지 확실치 않으나 몰래 집안으로 들어서는 영체라면 좋은 인연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역시 그 영체는 상당한 힘을 가진 악령이었다. 그 영혼은 다름 아닌 그 신부의 빙의령이었다.
혼사는 예정대로 치뤄졌다. 하지만 그 집으로 들이려던 함은 부모가 계시는 친가로 행선지가 바뀌었다. 결혼식이 있고 나서는 시집 식구들이 모두 이명자 씨를 소외시키는 분위기였다. 쓸데 없는 미신 따위에 집착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특히 시부모는 함을 받아 주지 않은 아들 내외의 소행이 괘씸하여서 늘 심사가 불편함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시아버지가 그집을 다녀 간다는 연락을 해왔다. 나는 처음부터 그 결혼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시집을 오는 것은 인간이 시집 오는 것이 아니라 원귀가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 들어 오는 여자는 그 집에 원한이 있는 원귀가 환생한 사람이므로 반드시 시집 식구들을 해치리라고 이야기하였었다.
그러나 남편도 그 말을 믿지는 않았다. 다만 뭔가 께름직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결혼의 혼수 함을 받기는 싫었다. 아무튼 세월이 흘러서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시아버지가 오신다는 통지를 받지 이0자 씨는 긴장했다. 어쩌면 좋은가 ?
혹시 여기에 오셔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 그런데 일은 엉뚱하게 벌어지고야 말았다.
시아버님이 오셨다가 변괴를 당하면 공연히 그녀가 주의를 준 말이 씨앗이 되어서 그런 변괴스런 일이 벌어졌다는 누명을 쓰게 되어 있는지라, 그녀는 자신이 인사를 드리러 갈터이니 그대로 계시라고 전화를 드렸다. 운명적인 원한령의 침입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을 벌이고야 말았다. 시아버님은 무사히 넘어 갔다.
한데, 딸네 집에 들려 며칠을 자고 간 이0자씨의 친모가에게 악령의 살이 날아 가고 말았다. 그 집에서 먹은 음식이 체했는지 속이 답답하다 하시면 집으로 돌아 가신 분이 불과 열흘만에 유명을 달리 하였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나는 어째서 그런 일이 생겼을까 곰곰히 따져 짚어 보았다.
이0자씨는 결혼식에서 당한 수모를 나에게 와서 이런 식으로 표현한 일이 있었다.
“ 시집 식구가 다치든 말든 나는 상관 없어요. 선생님도 이젠 막으려고 하지 마세요.”
“ 그게 무슨 당치 않는 말이시요 ? 시집식구가 되었든 아니든 그 누구도 악령의 영향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지 않게 하는 것이 당연히 내가 할 일이요.”
내가 한 이 말에 대하여 이0자씨는,
“ 아니에요. 누구든 당해 봐야 알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완전히 병신 취급을 하니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 ”
말하자면 결혼식에 모인 친척들이 한결 같이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데 대한 그녀의 억울함이 일종의 저주로서 작용한 셈이다. 그래서 시집 식구가 다치든 말든 나는 상관 없다는 식의 마음이 한 동안 이어졌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본래 악령은 기묘한 술책을 자주 동원하는 까닭에 처음에는 말할 수 없이 좋은 신부로서 평이 나게 하는 법이다.
예상했던 그대로 새로 들어온 신부는 시집식구들과 아주 잘 어울렸다. 사근 사근하고 애교에 넘치는 그녀의 행동거지에 대하여 한번도 느껴 보지 못한 정감을 느끼는 그 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미욱스러운 이0자씨를 경원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9월 초의 어느 날 그녀는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 , 선생님.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요.----”
무엇이 그녀의 어머니를 해쳤는가 ?
물론 그 신부의 빙의령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이0자씨 본인에게 있다. 나는 처음부터 본인이 시집식구들한테 미련하게 ‘누가 다친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 했었다. 결국은 일시적이나마 그녀가 스스로 저주의 염을 가지게 되고 악령은 그 힘을 역이용하여 오히려 친모가 다치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0자씨가 차츰 영계의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믿지 않게 될 것이며, 자신이 앞으로 마음대로 그 가족들을 농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고약한 귀신일수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모두가 믿음을 가질 무렵부터 괴이한 일을 벌이기 시작하고 그 못된 일의 책임을 엉뚱한 사람에게 전가 시킨다. 악령들은 늘 다른 이들에게 그들의 악행을 덮어 씌움으로써 인간 상호간의 불신과 반목을 조성하고 그 힘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0자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어리석음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약점을 드러낸 사례이다.
친정모가 돌아 간 마당에 다시는 그 악령에 대한 얘기를 입밖에 내지는 못할 것이고,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그 집안을 온통 들쑤셔서 해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다.
930921 법장거사 (김세환 법사의 법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