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산비탈에 자리한 K 군 어느 마을 어귀에 장승이 나란히 서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여장군이 바람나서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고 말았다고 한다.
여장군을 기다리던 대장군은 무려 10 년이란 긴 세월을 보내며 홀로 서있었다.
그러나 바람 난 여 장승이 돌아 올 리 없다. 이를 보다 못한 동네 사람들은 홀아비가 되어 버린 장승을 위하여 새 여장승을 짝 지워주기로 했다.
아주 곱게 깎아서 곁에 세워주자 대장군은 잠시 기쁨의 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녀는 결코 자기가 기다리던 마누라가 아니었다.
“ 마누라의 빈자리를 바라보면서 10년의 세월을 기다렸지만, 역시 나는 어느 여인도 맞지 않는가봐.”
그날로 대장군은 거기서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은 홀로 서있던 여장승을 보다 못해 얼른 뽑아내어 성대하게 장례을 지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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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이 채워지면 상대가 떠나가거나 아니면 자기가 바람이 나서 떠나야 하는 운명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 이어진지가 벌써 400년, 아직도 그 동네의 핏줄을 받은 남자들은 아내를 잃고 오래 기다리다가 재혼을 하면 반드시 또 헤어지는 고초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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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게 자네도 그 곳 출신이 아닌가 ?
다시 불행한 사태가 나기 전에 잘 헤어졌네. 결혼을 하기만 하면 결과가 뻔한데...“
그러자 청년은 ,
“ 네 저의 부모님도 그렇게 헤어지셨고, 저 역시 무참하게 여자한테 차였습니다. 자칫하면 또 반복되겠지요. 이 상태로 결혼하면 저도 장승맨츠로(장승처럼) 될 것 같아요.”
장승의 숙업이 이어지는 수도 있다는 말일까 ? 아니면 그 동네의 땅 기운 때문일까 ?
2005년 5월 25일 대영계 청강 /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