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일기 " 신들린 고목나무 이야기"
<서울 홍릉에서 이문동으로 넘어가는 길과 서초동 사거리 북편 그리고 동대문 바로 옆에 있는 고목은 사연이 있는 나무들이다. 잘라 버리려고 하면 반드시 인부가 다치는 사고가 나서 손을 못 댄다. 정말 그런 신이 들린 나무가 왜 그렇게 많이 있는 것일까 ? >
1960년대초 동래에서 기장 쪽으로 가는 데 있는 어느 동네에서 고목나무로 인한 마을 사람들의 불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 마을 초입에 회나무가 한그루 자리잡고 있는데 도로를 내느라고 마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톱질을 해댔다고 한다. 그러자 톱질을 하던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쓰러지더니 결국 거기에서 일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생겼다. 불과 1년 6개월 사이에 5사람이 피해를 입었는데 본래부터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단 한 사람만 무사했다. 결국 도로공사는 회나무 곁을 피해 가야만 했다.
고목나무의 처리문제로 의뢰가 들어 온것은 그런 사건이 있고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의 머리에서도 고목나무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가가 조금 쯤 힞혀질 무렵이었다. 마을의 이장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다.
“ 우리마을에 여차 여차한 사연을 가진 회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그냥 베어 버리자니 마을 사람들의 반대가 심하고 그대로 세워 두자니 길을 낼수가 없습니다. 무슨 묘방이라도 있으시면 좀 일러 주십시요.”
공사의 총책임자와 협의 하였으나 절대로 그 나무를 치우지 않고서는 공사가 안된다는 강경한 답변만 받았다며 무척이나 답답해 했다. 나무를 베어 버릴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
마침 부산에 볼일이 있어 가는 길에 괴이한 나무를 만나 보기로 했다. 가보니 정말 대단한 나무였다.
“ 여기 이 나무는 정말 오래 된 좋은나무인데 어떻게 보호수 지정도 안하고 있습니까 ?”
보호수 지정이라고 하면 시군에서 나무를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하는 행정조치인데 엉뚱하게 그런 말을 하자, 이장은 씩 웃으면서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켰다.
“ 법사님, 이 나무는 마을이 생길 때부터니까 아마 500년도 더됐을 겁니다. 그렇지만 마을 사람들이 뭘 압니까 ? 그냥 나무는 나무지요. 지정해 놓으면 우리가 이 밑에 와서 앉을수가 있습니까, 쉴 수가 있습니까 ? 그냥 울타리나 쳐 놓고 뻐언히 바라보는 낭구(나무)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
사실 속내로는 나무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데 이장은 나름대로 보호수 지정이 안 된 이유를 늘어 놓는다. 나무가 의식을 가지고 마치 사람 처럼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서 회나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 엉. 그래 ? 불안하다구 ? 그럼 어쩌지 ?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할 게요 ”
--“ 나는 절대로 이 자리를 뜰수가 없어, 만약 벤다면 마을 후손들을 그냥 두지 않을거야 ”----(나무 속의 조상신 )
“ 쓸 데없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요”
엉뚱하게 나무와 대좌하여 말을 하고 있으니 이 법사란 사람이 미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마을 사람들의 표정들이다.
나무의 신령은 다름 아닌 그 마을에 살던 촌장급의 조상신들이었다. 마을은 이씨와 정씨가 주축을 이루는 집성촌으로 한 50가구 정도되는 부촌인데 마을의 형태는 배 주둥이가 긴 방주형이었다. 풍수도 좋은데다가 나무신령화 한 조상신들의 도움으로 마을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사는 듯이 보였다.
“ 나무에 사고가 안 나게 공을 들이려면 아무래도 돈이 들터인데 어렵겠지만 비용을 걷어 주시겠습니까 ?”
비용이 들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장은 너무 액수가 많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 힘 들겠지만 해보겠습니다. 마을을 살린 다는 데야 그 정도는 각오합니다”
일주일 내에 비용을 주기로 했다. 꿇어 앉아서 나무의 신령에게 기도로서 통고를 했다.
“ 걱정 마십시요. 도로가 나는 곳에서 50보 정도를 비켜 세워 가장 좋은 동남향으로 모실 터이니 제발 가만히 마을을 지켜 주십시요 ”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나무를 뿌리둥치채 파둘러서 한달만 세워 두라고 말했다. 일주일 뒤 비용이 입금되자 법장은 이장에게 통보하였다.
“나무를 베면 안됩니다. 배수로 쪽으로 이전합시다. 이 돈은 다시 마을로 보낼테니 나무 이전비용으로 쓰십시요 ”
이장은 감읍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저희는 나무를 베어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나무도 살리고 마을도 살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불안한지 사실 마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나무이야기 뿐이었습니다 ”
이리하여 그 마을에는 지금 회나무가 그냥 그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에 수호목으로 가만히 버티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
98년 8월 29일 김세환 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