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의 죽음
배우가 영화촬영에 임하는 일은 당연한 직업행동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자칫 영혼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
인기 영화배우 최민수 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나는 아직 모래시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 쉬면서 자기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모래시계에서 그는 사형수가 되어 목을 메다는 역할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나 떨고 있지 ?"라는 대사는 지금도 우리들 마음에 저리게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은 "연기자라면 그 정도야 각오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렇지만 목을 메다는 연기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한동안 모래시계 이후 최민수 씨는 한 동안 출연을 자제하고 이미지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외에도 <취화선>의 남자 주인공도 그랬었고, <만다라>를 찍고나서 전무송 씨도 그런 경험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배우 이은주 씨가 자살하였다. 그것도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여주인공이 영화에서 죽은 2월 22일 날을 선택했다.
소문을 들어 보니, 영화<주홍글씨>를 촬영하면서 많은 충격이 있었던가 보다.
자기의사와는 달리 옷을 벗어야 했고, 나중에 차 트렁크에 갇히는 시신 역할도 한 모양이다.
한마디로 우울증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영적으로 상처 입고 죽은 것이 분명하다. 연기자들은 특히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어려운 역할을 맡으면 자기도 모르게 비관하게 될 수가 있다.
우리가 아이들이 놀 때 절대로 장사지내는 놀이는 못하게 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무의식 세계에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야 말로 위험하다. 연기자들은 연기에 몰두하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배역에 충실해지며, 단순히 역할 연기가 아니라 그 인격을 그려내기 때문에 역할이 끝나더라도 자칫 잔상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가 있다.
우울증이라고 단순히 생각하지 말아 주기 바란다. 이은주 씨는 아마도 그 역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여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것 같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진심으로 좋은 곳으로 가길 기도한다.
이하----참고자료
'주홍글씨' 출연후 정체성 혼란 겪어
[세계일보 2005.02.23 10:21:00]
배우 이은주씨의 자살은 영화 ‘주홍글씨’에서 전라로 출연한 게 큰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22일 그의 유서에서 드러났다.
모두 3장으로 쓰여진 유서에는 “근본적인…원인…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없을 텐데. 왜 내게 그런 책을 줬는지. 왜 강요를 했었는지. 왜 믿으라고 했었는지”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
‘책’이라는 단어는 영화계에서는 통상 시나리오를 일컫는 말이다.
유서에서 이씨는 “잘 웃고, 잘 울고, 잘 자고, 얼마나 밝고 예쁜 아이였는데… 지금은 내 감정 하나 조절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며 스스로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어 “매일같이 되뇝니다. 일년 전 오늘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자존심도 바닥을 쳤고… 더 이상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중략) 엄마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 내 상황과 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지난 1년간 출연한 영화는 ‘주홍글씨’ 한 편이었다. 이 같은 표현을 볼 때 이씨가 영화 ‘주홍글씨’ 출연 이후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주홍글씨에서 이씨는 전라로 등장하는 정사신을 촬영했으며, 트렁크에 갇혀 피로 범벅이 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 장면도 있다.
한석규와 불륜, 엄지원과 동성연애 등 결코 쉽지 않은 표현을 해내야 했다.
지난해 10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출연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영화 속 인물(가희)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 바 있으며 특히 트렁크 신에 대해서는 “딱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지옥 같았다”고 토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