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습니다. 우리 회사에 불이 났어요. 어제 어떤 놈이 2층 계단에 놓은 쓰레기통에 불을 놓아서 자재를 쌓아 놓은 것들이 몽땅 타버리고 소방서에서 급히 끄기는 했지만, 큰일 났습니다. 이를 어쩌죠 ? 사업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마당인데---"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박사장이 놀래 가지고 법장을 찾았다. 법장은 이런 일들에 대하여 이미 경고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박사장은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방화사건이 나기 사흘 전 법장이 그 회사를 찾았다.
옥상에 올라가서 새로 산 건물이니 집주인 격인 터귀신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했다. 그러자 대뜸 한 죽은 여자 무당이 나타났다. 죽은 무당 귀신들은 차림새가 요란하고 누가 보아도 죽은 모습까지도 무당이다. 묵직한 귀걸이에다가 진한 화장이 돋보였다.
" 박사장이라구 했나요 ? 어디 두고 봅시다. 내가 여기를 왔는데 인사 치레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다니 혼쭐을 내줘야지."
입과 손에서 불을 훨훨 일으켜 내뿜으면서 겁을 준다. 귀신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쯤은 자유이다.
" 그래 당신이 이 집 터귀신이요. 건물을 지켜준 것은 고맙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이 일을 잘하게 해주어야지. 그게 무슨 심술인지 ? "
자기 이름이 월선녀라고 자칭하는 무당은 이 집이 지어지기 전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살던 사람이라고 했다. 결코 자기의 허락 없이는 무사할 리가 없다고 협박하였다. 법장은 그런 말을 흔히 들어 온 터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기왕 온 김에 사실 그대로 박사장에게
일러주었다.
그렇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인 박사장이 나의 말을 믿을 리가 없다. 자신이 다니는 큰 절의 스님이 도력을 가지고 계신데, 며칠 전에 와서 기도를 해 주고 가셨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방화사건이 나자 법장은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비방을 해주었다.
그리고 4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 이번에는 진짜로 불행이 다가 오고 있었다. 사람이란 일이 잘될 때는 아무런 탈도 없이 넘어가던 일도 불행이 다가오는 시기에는 사사건건 막히기 마련이다. 조카라고 하는 녀석이 어음 장난을 치면서 돈을 해 먹고서 달아났다. 액수가
자그마치 1억5천이 넘었다. 그리고 나서 12월이 다가왔는데 갑자기 삼성에서 거래상의 관례를 문제 삼아 출입을 금지시켰다. 돈이 날아가고 큰 거래처가 끊기는 일이다. 허겁지겁 박사장은 다시 나를 찾았다. 이미 연초에 그런 불행을 예고했던 일이 있었다.
" 법장님 날 좀 살려 주시요"
"이제 시작입니다. 두고 보세요. 월선녀를 만만하게 보면 안되지요. 그 여자는 악착 같은 데가 있어서 아마도 그냥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이후 거래처에서 불량 사태가 나고 가져 간 사진 원판이 다른 것과 뒤바뀌어 말썽을 일으키는 괴이한 일 까지 생겼다. 그런 일은 상식적으로 보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 어떻게 하면 좋지요."
"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요. 우선 월선녀를 위한 기도를 올려 주시요. 아무리 귀신이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당신과 화해하는 일입니다. 지난 번 화재사건 때도 비웃었지요 ?
그까짓 귀신이 무슨 짓을 하랴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4년이 흘렀는데, 결과가 어찌 되었습니까 ?"
그러나 박사장은 아직도 귀신에게 굴복하고 싶지 않은 오기 때문인지, 오히려 법장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 글쎄요. 나는 부처님이 도와주실 것으로 믿어요. 절대로 귀신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 그럼 왜 나를 부르셨습니까 ? 나를 믿으니까 부르는 것 아닙니까 ? 나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내가 도와주려면 그 일을 거절하니 이게 무슨 이상한 일입니까 ?"
며칠 뒤 법장은 박사장이 오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무조건 월선녀를 불러 세웠다. 월선녀귀는 터 귀신이면서 동시에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심행장악력을 갖춘 악귀였다.
"너는 박사장을 곤경에 몰아 세웠다. 어쩔 것이냐 ? 박사장은 이제 망하게 되었다. 네가 다시 일으켜 세워 줄 것이나 ? 물론 너의 소행을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믿지 않은 그의 잘못이지만, 참으로 너는 악질 귀신이다. 자기 허락이 없이 함부로 건물에 들어 왔다
고 해서 불을 지르질 않나, 이제는 세월이 지나서도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해서 사업을 망하게 만들어 버리다니 ? 네가 그래 가지고 언제나 승천을 할 수 있단 말이냐 "
20년 전부터 좋은 인연을 맺은 박사장을 그냥 놔둘 수 없는 나의 마음이 그 귀신과의 투쟁심을 불러 일으켰다. 웬만해서는 귀신과 싸우지 않고 해결해 치우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법장은 법도를 빼들고 귀신을 향하여 겨누었다. 밀교애서 사용하는 수인법과 권법을
쓰면서 몇 가지 주문을 외우자 월선녀는 뒤로 나뒹굴었다.
" 애그머니, 아주 잘 하네. 별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생긴 것도 얌전해서 말을 잘 듣고 물러 설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
월선녀는 재빨리 모습을 바꾸면서 자기가 이제 악귀가 아닌 양 아양을 떤다.
" 이제 잘할 테니 그러지 말아요 "
자못 사정하는 쪼다. 하지만 귀신들은 그런 정도에서 절대로 굴복을 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는 법장이다. 손가락 세 마디를 꺾어 세우는 삼권인을 써서 귀신의 머리를 녹였다. 좀처럼 그런 일을 하지 않는 법장이였으나, 워낙 질긴 귀신임을 아는 이상 흐릿하게 대항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 파윽 스르륵 "
괴성을 지르며 서서히 사라졌다. 박사장은 옥상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얼른 올라 왔다.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자 그제서야 조금 믿는 것 같았다.
" 또 다시 귀신을 업신여길 겁니까 ? 귀신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보복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아첨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사장님이 잘못한 것은 종교를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귀신이 벌이는 일을 쉽게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을 알아 두셨어야지요 "
이 한마디를 귀에 담아 두고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나서 박사장은 결국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그 건물에서 빠져 나온 다음에야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