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일기] “너도 마찬가지란다”
5 년 전 쯤의 일입니다.
한 남자가 아내의 불륜행동에 대하여 성토하면서 어찌 해결하면 좋으냐고 상담하러 왔습니다. 당장 헤어지고 싶다고 울며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일부러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오시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영혼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타계하신 지가 이미 10여년이 넘었다합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영혼을 만나자 제게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지요.
“ 어머니,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몇 년이나 믿고 아끼던 마누라가 어떻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배가지고 와서 태연하게 낳아요 ? 저는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헛살았어요. 아들놈이 날 때부터 저를 전혀 닮지 않았어요. 크면서 하는 짓도 그렇고 몸집도 너무 차이가 나고 ..... 그러다가 혈액형이 0형이라 애매한 혈액형이라서, 미심쩍은 마음에 할 수 없이 병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해 본 거예요. 그랬더니 친자 관계 불성립 판정이 나오고 제 아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
아내가 전에 사귀던 애인과 혼전에 관계를 맺어 생긴 아이를 남편의 아이인 것처럼 슬쩍 속이고, 마치 허니문 베이비로 임신을 해서 그 아이를 낳은 것처럼 위장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들통이 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어머니는 담담하고 냉정하게 대꾸를 내주십니다.
“ 알겠다. 너의 마음은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그래도 참고서 함께 살아야 해.. 세상일이란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야. 모르고 살아갔더라면 그냥 지냈을 거 아니냐 ? 그냥 내버려 둬라.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러자 아들이 전혀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로 되묻습니다.
“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 제 자식이 아닌데 , 왜 내가 키워야 해요 ?”
“ .................................. ”
한참 동안 응답이 없으십니다.
그러다가 짐짓 결심을 하신 듯이 깜짝 놀랄만한 말을 하십니다.
“ 영식(가명)아,,,, 사실 너도 네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란다. 나 역시 네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어. 결혼하여 인연 맺고 살아갈 여유가 없어서 그만두고 바로 네 아버지와 새로 혼인을 했지만 네 아버지는 너를 기른 분이 아니고 다른 남자야. ”
자기부친도 진짜 부친이 아니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갑자기 아득해지더군요....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여러 시간 동안 비탄 속에서 침묵을 지키다가 돌아갔습니다.
어머니 영혼의 말을 듣기 전에 어쩌면 자신은 현실에서 벌어진 일에 더 큰 충격을 받은 탓이겠지요. 그런데다가 자기도 그런 운명을 타고 났음에 크게 놀랐겠지요.
어머니의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후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본인이 외아들이고 부친도 오래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머니의 영혼이 하시는 말을 믿고 더 이상 아내의 불륜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정해진 운명 속에서 살아가야 할 부부 인연이었나 봅니다.
모친이 다른 남자의 씨앗을 품고 다가와서 결혼하여 자기를 낳고, 또한 자기 아내 역시 다른 남자의 씨앗을 품고 와서 결혼을 하고....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과응보입니다.
그 남자는 자기 아내를 용서하면서 이렇게 스스로 되뇌었을 겁니다.
“ 사랑하는 내 아내의 아이이면 또한 내가 사랑하는 아이여야 한다. 어차피 나도 그런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났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깨달아 알지 않았는가 ?”
모르고 살면 그냥 지나쳐 넘어가는 일이라도 일단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엄청난 불행을 안겨 줄 수 있는 일들이 바로 이런 일들입니다. 나에게 그런 일이 없다고 해서, 제 3자의 일에 지나친 엄격성을 요구하는 일은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게 됨을 기억해 둡시다.
용서하는 일, 관용을 베푸는 일이 곧 부처님의 일이 아닐까요 ? 천하의 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놈이라고 욕하고 경멸하는 마음이 솟구칠 때에는 그런 면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 만일 내가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라면 어쩔 것인가 ?”
2011년 10월 7일 제마 법선사 서산 청강 장선생 김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