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마 일기 “몸주 신(수호신령)을 살려서 사람을 살린 일도 있었지요.”
마치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차가운 미소가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언제나 귀기가 서린 사람들이 보여주는 냉냉한 미소. 오늘 같이 어두운 날씨에 가장 어울리는 공포분위기였다. 가족들도 이 여인에게서 어떤 감각을 느끼며 살아갈지가 들여다보인다.
“ 신이 온지 제법 오래 되었군요.”
명료한 진단이다. 흠칫 놀라면서 흙빛으로 변한 눈동자가 시선을 모은다.
“ 신 받은지 벌써 12년도 더 되었어요.”
“그럼 알았을 텐데, 왜 아무 느낌도 없었나요.”
가끔 신을 받아 놓고서도 이렇게 무감각으로만 일관하여 수 십 년이 지나가는 수도 있다.
이런 신들은 참하게 생긴 눈빛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대체로 잔혹한 눈빛으로 대한다.
몸주 노릇을 하기는커녕 잘못 찾아 온죄로 신이 병들어 죽어 가고 있다.
그때부터 신과 대화를 시작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이 여인은 신을 의식하지 못하므로 직접 맞대응으로 나간다. 몸주 신은 신을 모시던 증조 할머니였다.
“할미신이여, 왜 이 여인에게 고통을 주시는 거요 ? 기왕 몸주 신령으로 대령한 바에야 자칫 잘못되면 몸이 망가져 함께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데 어째서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둡니까 ?”
살려 주라는 의미이다. 여인의 몸에 실렸으면 그만한 대가를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말을 듣고만 있던 할미신은 그제 서야 입을 뗀다. 빛고을 사람이라 말씨가 남도 사투리였다.
....“ 난 아무 것도 몰라. 이야( 여인)가 그랑께 오래 됐지라. 십년도 넘었응게. 야 애미 죽는다고 할 찌 함께 죽을 거로 신줄 받아 요행수로 넘기긴 했쨔, 그 뒤루 한 번도 신받이를 해준 게 없어라. 난도 죽을 지경이여”........
신받이란 신을 맞아서 진정한 수호신으로 모시는 정기적인 요식행위다. 1년에 한 번씩 마치 치루는 제사 비슷한 것인데 이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세월만 착착 보내다가 그만 신바람이 든 것이다. (여기서 신바람이란 신을 받은 사람이 잘못하여 신과 신을 받은 이 사이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제반 내용을 다 파악하여 알아챘으니 신받이 하여 진정으로 모시라 권했다.
몸이 너무나 많이 망가져서 엉망이었다. 특히 호흡의 기 흐름이 망가져서 숨을 고르게 쉬지도 못하고 헉헉거린다.
목탁과 요령 소리가 울릴 때마다 이 여인의 숨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그러다가 수 10 분이 지나서 퍽하고 앞으로 엎어져 버린다. 몸이 쇠약하여 신받이도 쉽지가 않았다. 겨우겨우 30분 만에 의식을 끝냈다.
그리고 신을 받으면 이에 합당한 어느 정도 제자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데, 여느 때나 다름없이 그냥 중노동을 하며 살아온 처지라서 신명이 실려 목숨 값을 치러주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차츰 몸을 버리라는 쪽으로 이끌어간 것이 분명하였다. 다시 말해서 신명을 받은 만큼 자기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거칠게 살지 말아야 하는데, 그냥 평소에 하던 그대로 조금도 달라짐이 없이 몸을 함부로 내둘러 불건강하게 살았으니 신명이 자기가 실린 몸을 버리려고 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
여인의 직업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미싱공이었다.
“ 아주머니, 이젠 이렇게 살지 말아요. 그래도 밥은 제때 찾아 먹어야 할 것 아니요? 밥도 안 먹고 살다니, 하루에 한 끼가 뭐요 ? 살 빼려고 하는 짓도 아니고. 하루에 17시간이나 일하면서 어떻게 견딘다는 말이요 ?”
“ 남편이 좀 사람이 그래서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한 끼 식사도 아깝다 잔소리하는 혹독한 성격이란다. 상상도 못할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이다. 영양 부실에다가 중노동이 겹치니까 신주가 돌보지 않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원인은 단 한가지였다. 신기를 보여주는 아내가 남편으로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더욱이 남편은 00 교 신자였다. 따라서 몸주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신명의 존재를 일깨워 줘보았자 그의 의식세계에서는 그저 잡귀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여인이 너무 가여워 살려 주고 싶었다.
아니 할미를 공양하여 정성껏 되 세워 생명력을 되찾아 주고자 애썼다. 그러자 열흘이 지나서 차츰 온기를 되찾아 나갔다. 얼굴에서 귀기가 사라지고 차츰차츰 사람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수년이 흘러 잊어버렸을 때쯤이다. 난데없이 전화가 왔다. 그리고 여인은 인천 송도에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살이 쪄서 몰라볼 정도였다. 몸주 할미신은 모습이 그대로여서 다행이었다. 할미신이 아니면 못 알아 봤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남편은 신받이를 해 받은 이후로 사람이 놀랄 만큼 바뀌어서 그 여인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산다고 한다.
“ 선생님 늦게 찾아 뵈어 죄송해요. 우리 이렇게 달라졌어요.”
참 신기한 일도 다 있다. 아마도 신명세계의 조화일 것이다.
2007년 4월 7일 제마 김세환 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