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마법선도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풍수
  • 풍수
풍수 게시판

풍수 주거지 선정을 위한 풍수법

2009.04.11 23:42

xemasa 조회 수:26198

지역 선정을 위한 풍수법

  

가. 이사 갈 지역을 고를 때는 이런 점을 고려하라.

  

1. 가능하면 주택에서 살아라.

  

주택이라면 우리가 오래 전부터 익숙했던 삶의 터전이다. 그런데 20여년 전부터 몰아친 아파트 바람은 마침 투기 붐을 타고 재산가치의 보존수단인양 인식되어 도시인의 주된 삶터로 잘 못 알려져 왔다.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무시당한 채 마치 인간이 가축이라도 된 것 처럼 콩크리트 쟝글에 같혀서 하루하루를 맥 없이 살아 간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수 없는 반인간적인 행위이다. 봉천동 산 꼭대기의 달동네에서 화장실에 줄 서가며 살던 어느 가족이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모아서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처음에는 깨끗한 환경에 만족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파트’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삭막하고 인간이 살곳이 못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연장 하나를 빌리려 해도 서로 문 열쇠를 열어야 하고 사전에 전화를 하여 양해를 얻어야 하며, 옆 집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알리지 않으면 모르고 지내야 하는 그런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산꼭대기에서 살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무릎이 겨울이 되어 시리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아파트가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되었다. 추운 겨울을 나는데야 따뜻한 아파트가 나을 것 같았으나 벽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밤 공기가 도저히 비교가 안 될 만큼 쓰라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머지 않아서 다시 변두리의 전세방을 얻어서 나갈 예정이다.

땅은 온기를 가진다. 여름에는 열을 식혀 주고 겨울에는 따스한 온기를 복사하여 인간이 지녀야 할 온기를 유지 시킨다. 하지만 아파트는 그렇지 못하다. 모든 열량을 인공으로 생산공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열도 태양열과는 무관하게 일정하다. 그러므로 자연스럽지 않은 온도는 인간의 몸을 병들게 만든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호흡기 질환은 시멘트가 품어 내는 라돈(Radon)이라는 기본적인 방사성 독성에 오염된 상태에서 시작되어 철저하게 습관성으로 변하고 급기야 알래르기 체질이라는 이상한 명칭의 병을 가지게 한다.

인간적인 훈기가 부족한 소외공간의 아파트, 인간의 체질을 무시하고 능률 위주로만 조성된 아파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그 편의성 때문에 서서히 죽어 가는 삶을 의식하지 못한 채 오늘도 그 곳에서 산다.

여유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우리는 다시 일반 주택으로 돌아 가야 한다. 특히 신경성 질환, 관절통,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다면 하루 라도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제 가능하면 아파트에서 벗어나 살자. 아파트에 오래 살다가 건강을 망치눈 날에는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타지 못하고 곤돌라를 타고 내려 오는 시신이 바로 당신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자.

그리고 또 한가지 측면에서의 아파트가 가지는 폐해는 이런 것이다.

정신적으로 상승지향주의와 소외된 환경에서 오는 이기주의에 휩쓸린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현대 산업사회가 가지는 사회심리적 병폐이기도 하지만 구획으로 정리된 아파트 생활은 자신도 모르게 그 쪽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 경게해야 할 일이다. 너구나 자연과의 통교가 단절된 상황에서는 인명경시풍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매일 같이 높은 곳에 오르내리는 생활을 하다가 보면 인생은 오르내리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고 특히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 생활에만 익숙한 아이들은 계급 의식이 자기도 모르게 싹 틀 것이 뻔하다. 적은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아이는 그보다 큰데 사는 아이에게 열등감을 가지며, 이는 일반주택에서는 별로 느끼지 못하는 점임을 감안해 볼때 사실상 심각한 문제이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이 가져오는 시야 협착과 자기 중심주의적인 사고는 이미 아파트 군락에 위치한 국민학교 아동들에게서 나타나는 성향이라고 한다.

이런 면들은 아파트 생활 환경이 가져오는 사회심리 현상으로서 아직 이렇다 할 대책 없이 팽개쳐져 있다.

“이번에 이사갈 대는 어디로 갈까 ?” 그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에 아파트는 일단 대상에서 제외시키자. 정신건강과 육체 건강을 위하여 주택에서 살자. 흙을 밟으며 화초를 마당에 키우며,계절 따라 곤충과 새를 볼 수 있는

땅으로 가까이 가자.

  

cf.

󰠆󰠏󰠏󰠏󰠏󰠏󰠏󰠏󰠏󰠏󰠏󰠏󰠏󰠏󰠏󰠏󰠏󰠏󰠏󰠏󰠏󰠏󰠏󰠏󰠏󰠏󰠏󰠏󰠏󰠏󰠏󰠏󰠏󰠏󰠏󰠏󰠏󰠏󰠏󰠏󰠏󰠏󰠏󰠏󰠏󰠏󰠏󰠏󰠏󰠏󰠏󰠏󰠏󰠏󰠏󰠏󰠏󰠏󰠏󰠏󰠏󰠏󰠏󰠏󰠏󰠏󰠏󰠏󰠏󰠈

󰠐 *고층 아파트 성인병 위험 높다*󰠐

󰠐󰠐

󰠐 1. 고층빌딩증후군 : 저혈압증세 있으면 귀울림󰠐

󰠐 생리불순, 현기증,시야 흐림,무력증, 두통발생󰠐

󰠉󰠏󰠏󰠏󰠏󰠏󰠏󰠏󰠏󰠏󰠏󰠏󰠏󰠏󰠏󰠏󰠏󰠏󰠏󰠏󰠏󰠏󰠏󰠏󰠏󰠏󰠏󰠏󰠏󰠏󰠏󰠏󰠏󰠏󰠏󰠏󰠏󰠏󰠏󰠏󰠏󰠏󰠏󰠏󰠏󰠏󰠏󰠏󰠏󰠏󰠏󰠏󰠏󰠏󰠏󰠏󰠏󰠏󰠏󰠏󰠏󰠏󰠏󰠏󰠏󰠏󰠏󰠏󰠏󰠋

󰠐 2. 성인병 : 영양과잉 + 운동부족 > 당뇨병, 뇌졸증 유발가능성󰠐

󰠐 ----佐佐木 昭彦의 소견󰠐

󰠐 50대 여성의 두통을 수반한 고혈압 발병󰠐

󰠐 ---- 逢坂文父교수의 소견 /층별 고혈압발병률󰠐

󰠐 단독주택 = 3%󰠐

󰠐 1-2층 아파트 = 5.9%󰠐

󰠐 3-4층 = 9.6%󰠐

󰠐 5층 이상 = 12.4%󰠐

󰠉󰠏󰠏󰠏󰠏󰠏󰠏󰠏󰠏󰠏󰠏󰠏󰠏󰠏󰠏󰠏󰠏󰠏󰠏󰠏󰠏󰠏󰠏󰠏󰠏󰠏󰠏󰠏󰠏󰠏󰠏󰠏󰠏󰠏󰠏󰠏󰠏󰠏󰠏󰠏󰠏󰠏󰠏󰠏󰠏󰠏󰠏󰠏󰠏󰠏󰠏󰠏󰠏󰠏󰠏󰠏󰠏󰠏󰠏󰠏󰠏󰠏󰠏󰠏󰠏󰠏󰠏󰠏󰠏󰠋

󰠐 3. 스트레스 : 독일주재 영국군과 그 가족의 임상결과󰠐

󰠐 고층아파트의 거주자 병원진찰률이 주변 거주자의󰠐

󰠐 160% 이상임󰠐

󰠐 ----- 과밀성 ,공간의 고정성, 기밀성,󰠐

󰠐 격리성, 자연과의 비접촉성,󰠐

󰠐 지면으로부터 괴리 / 스트레스 원인󰠐

󰠉󰠏󰠏󰠏󰠏󰠏󰠏󰠏󰠏󰠏󰠏󰠏󰠏󰠏󰠏󰠏󰠏󰠏󰠏󰠏󰠏󰠏󰠏󰠏󰠏󰠏󰠏󰠏󰠏󰠏󰠏󰠏󰠏󰠏󰠏󰠏󰠏󰠏󰠏󰠏󰠏󰠏󰠏󰠏󰠏󰠏󰠏󰠏󰠏󰠏󰠏󰠏󰠏󰠏󰠏󰠏󰠏󰠏󰠏󰠏󰠏󰠏󰠏󰠏󰠏󰠏󰠏󰠏󰠏󰠋

󰠐 4. 병원균 감염 : 따뜻한 공기, 계단과 승강기의 통로 역할증가󰠐

󰠐 고층 거주자는 저층거주자의 3배이상 호흡기질환󰠐

󰠐 (알레르기, 기관지 질환,폐기능 저하)󰠐

󰠉󰠏󰠏󰠏󰠏󰠏󰠏󰠏󰠏󰠏󰠏󰠏󰠏󰠏󰠏󰠏󰠏󰠏󰠏󰠏󰠏󰠏󰠏󰠏󰠏󰠏󰠏󰠏󰠏󰠏󰠏󰠏󰠏󰠏󰠏󰠏󰠏󰠏󰠏󰠏󰠏󰠏󰠏󰠏󰠏󰠏󰠏󰠏󰠏󰠏󰠏󰠏󰠏󰠏󰠏󰠏󰠏󰠏󰠏󰠏󰠏󰠏󰠏󰠏󰠏󰠏󰠏󰠏󰠏󰠋

󰠐 5. 임신.출산이상 : 일본 東海대학의 사사끼 후미오(佐佐木文夫)교수󰠐

󰠐 1989 -92년간 요코하마 거주 주부 1천5명 /3년이󰠐

󰠐 상거주 대상 조사󰠐

󰠐 <유산 및 사산 비율>󰠐

󰠐 단독주택 : 5.6 %󰠐

󰠐 아파트 1-2층 : 6.3 %󰠐

󰠐 3-5층 : 8.3 %󰠐

󰠐 6층이상 : 13.2 %󰠐

󰠌󰠏󰠏󰠏󰠏󰠏󰠏󰠏󰠏󰠏󰠏󰠏󰠏󰠏󰠏󰠏󰠏󰠏󰠏󰠏󰠏󰠏󰠏󰠏󰠏󰠏󰠏󰠏󰠏󰠏󰠏󰠏󰠏󰠏󰠏󰠏󰠏󰠏󰠏󰠏󰠏󰠏󰠏󰠏󰠏󰠏󰠏󰠏󰠏󰠏󰠏󰠏󰠏󰠏󰠏󰠏󰠏󰠏󰠏󰠏󰠏󰠏󰠏󰠏󰠏󰠏󰠏󰠏󰠏󰠎

동아일보 93년 11월12일자 20면 참조

  

  

2. 고층 아파트에도 길지(吉地)와

흉지(凶地)가 있다.

  

아파트는 수백 수천 가구가 밀집된 집단 주거지이므로 한가구 당의 입지 길흉이 있고 없고를 밝혀내기란 어려운 일로 볼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 에는 굳이 입지의 길흉이 따르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의 이다. 어떤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일단 주민의 생활이 시작된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일반주택과는 다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대규모 공사에 의하여 수천가구가 살아가는 까닭에 한 번 잘못 선정된 입지는 수백년을 두고서 사람들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선정된 몇몇 아파트 대단지는 전햐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곳에 단지로서 자리 잡았다. 먼저 서울의 동남쪽에 위치한 분당지구의 아파트 단지는 손방(巽方)의 음살풍을 그대로 끌어 들이는 위치에 있어서 그 곳에 대규모의 주거단지를 형성함으로 인하여 풍습의 타락은 물론이고 공무원의 기강을 쇄신할 수 있는 풍수의 힘을 약화시켰다. 옛부터 손이 지나치면 건(乾)의 쇄진을 촉진하고,자신과잉에 사치와 낭비를 막을 길이 없다고 했다. 여기서 서북에 해당하는 건은 곧 국기를 상징하는 청와대의 행정부를 말함이니, 국가의 기강이 흐트러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아파트 단지의 적격지가 날이 갈수록 부족해짐으로 인하여 평지에다가 건설하는 일이 많아졌다. 분당이나 일산이나 평촌이나 산본등의 신도시적인 개념의 아파트들은 거의 평지에 건설된 콩크리트 단괴(團塊)이다.

그러다 보니 교통이나 문화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나머지, 기(氣)의 이동에 대한 검토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고층 아파트 건설은 최소한 30미터 높이의 산을 건설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대공사이다. 그런 거대한 콩크리트 덩어리가 평지에 들어 서면 그 지역의 기 순환에 막대한 변화가 생긴다. 말하자면 새로운 산이 생김으로서 기의 이동과 차단현상이 생긴다는 의미이다. 이런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은 결국 인간의 생활에 악영향을 끼친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는 안되는 대표적 흉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반이 무른 매립지나 사면 경사지의 경우이다. 거대한 중량의 아파트가 내리 누르면 견디지 못할 것이 뻔한 곳에 태연하게 건설된 안양의 모 아파트 단지는 언젠가는 붕괴될 것이다. 둘째, 주위반경 3 킬로미터 이내에 100미터 이상의 높은 산이 없는 곳이다. 이런 곳은 차가운 북풍이 몰아 치면 막아 줄 장풍대(藏風帶)가 없으므로 인하여 주민의 건강생활에 막대한 피해가 온다. 서북방으로 거칠 것이 없이 탁 트인 곳에 신도시를 건설한 일산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된다. 세째, 산의 중턱을 넘어선 곳에 세워진 경우이다. 이는 1970년 봄 소 잔등에 해당되는 자리에다가 아파트를 건설하여 갑자기 무너져 내린 와우(臥牛)시영 아파트의 경우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이다. 그 아파트는 산의 중턱을 훨씬 넘어선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네째 산을 절개하여 깎아 낸 자리에 세운 아파트의 경우이다. 그런 곳에는 최소한 30년이 지날 때까지 집을 지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산이 가지고 있던 지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대문이다. 말하자면 땅속에 아파트를 파묻어서 짓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라고 다섯 번재로 흉지는 강가나 호수가에 바로 붙혀서 짓는 경우이다. 자연 경관이 좋다고들 말하지만 경치가 좋은 곳이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는 할수 없다. 새벽이면 찬 공기가 습기를 냉각시켜서 안개를 형성하여 호흡기에 장애를 초래하는 일이 많아지고 결국 폐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상과 같은 사례를 살펴 볼때, 현재 도시의 아파트 단지 계획이 얼마나 생명중심 사상을 벗어나 있는가를 실감나게 만든다. 아파트는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집단 주거지이다. 그러므로 개인주택보다도 더욱 신중을 기하여 입지 선정에 노력해야 한다. 여러분은 위에 지적된 사례가 드러난 아파트에는 이사를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먼곳의 산이라도 좋으니 산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 가라.

  

우리 민족은 영적으로 볼 때에 산신의 자손이 가장 많다. 물론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은 용왕신이나 해신의 영향을 받아서 생명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것은 산신계의 신으로부터 생명을 받는 경우이다. 따라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가을이 되면 단풍놀이다 뭐다하여 남한 팔도에 어느 산에 가도 사람이 들끓는 것이다. 더구나 산신숭배의 사상은 조상숭배와 멋지게 결합되어 있다. 우리들이 조상의 선영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화제를 물어 볼때 “산소가 어디에 있습니까 ?” 하고 묻는다. 이는 산소(山所), 다시 말해서 산에 있는 일정한 무덤 장소를 가리킨다. 세상 어느 나라를 가 보아도 산소란 말을 쓰는 나라가 없다. 그만큼 우리민족은 옛부터 죽으면 산으로 돌아 가는 것으로 통념화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살이가 골치 아프면 ‘산으로 들어가야겠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 만큼 산은 우리의 의식에서 편안한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삭막해져 가고 있다. 대형 아파트나 호텔등의 건물이 시야를 가려서 산은 커녕 바로 옆에 있는 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먼 곳이 보이지 않게 차폐된 상태에서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근시안적인 생활을 강요 받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답답한 성격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폐쇄성의 성격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탁 트인 시야는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하여 연구한 심리학적 논문은 아직 없어도, 일반적으로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이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점을 고려해 보면 협소한 시야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클 것으로 본다.

그래서 가능하면 같은 값이라면 멀리 보이는 자리, 더구나 산이 보이는 곳이라면 다할 나위없이 좋은 자리라 할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 산이 보이는 좋은 자리로 치면 필동 쪽을 대표적으로 가리킬 수 있다. 그 곳은 남산 자락의 동네이기에 약간 지대가 높다. 북사면임을 감안하면 명당이라 할수야 없으나, 멀리 북악산이 올려다 보이는 아주 명쾌한 동네이다. 그리고 삼각산과 수락산 도봉산의 삼각지대에 속하는 창동과 방학동 일대도 아주 좋은 자리이다. 이 곳에 살면 삼면으로부터 오는 산기를 직접 받을 수가 있다.

실제로 문필가들이 많이 실고 있고 총기 있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 위치를 찾아서 산을 바라 보며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산은 인간에게 시각을 통하여 지기를 직접 전달해 주는 무서운 에너지의 덩어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산자락에 직접 올라 타고 사는 곳은 별로 좋지 못하다. 예를 들면구기동 부유촌사람들은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 속에 사는 것은 심신수양을 위하는 데는 좋을지 몰라도 오히려 양택으로서의 기본조건인 몇가지 면에서 해로울 가능성이 더 크다. 지나치게 큰 에너지가 전혀 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대로 심신에 수용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더구나 암반위에 사는 것은 대단히 해롭다. 그런데도 경치 좋고 공기가 좋다고 해서 자연을 해치면서 자꾸만 서울의 골짜기를 헤집고 들어 서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유용한 힘을

전달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최소한 고도 300미터 이상의 산이라면 산자락으로부터 1.5킬로미터는 떨어져야 조화된 산기를 받을 수가 있다.

  

  

4. 물탱크가 가까운 곳은 피하라.

  

지하 물탱크에 어린이가 빠져 죽은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이는 아이들이 물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른데 원인이 있다. 아이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느꼈던 양수의 완충감을 잊지 못하고 물을 보면 공연히 끌려 들어 가는 성향을 보인다. 어른이 되면 그런 사실을 잊어 버리고 말지만 아이들의 이 속성을 잘 알아서 관리 통제하지 않으면 큰 일을 저지르기 쉽다. 우선 아이들이 가장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탱크가 성인들에게는 좋으냐 하면 그렇지가 못하다. 물이라고 하는 물질은 미묘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자칫하면 수기가 인간의 기를 뺏을 수도 있고 더구나 고여 있는 물은 음기를 품게 되어 아주해로운 기운을 주기도 한다. 구산동에 있는 어느 집은 산자락을 깎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로 위에 보이는 산꼭지에 동네에 물을 공급해 주는 급수 탱크가 있다. 콩크리트로 조성된 그 탱크는 마치 군용 토치카 처럼 생겼다. 그래서 그 집은 생기가 없고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음산한 느낌을 주며, 장남이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이상한 증상을 보였다. 그런 자연의 힘을 무시하고 집을 지은 사람도 문제이지만 이를 알았으면 대처하는 방비를 해야 하는데 전혀 무관심힌 것이 더욱더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지하수의 흐름에 대해서는 그래도 많이 알려진 까닭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편인데, 지상의 물 탱크가 어떤 힘을 가지고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하수는 땅 밑에서 흐르므로 그 곳에서 잠을 자는 사람의 척추 신경계에 이상을 줄 정도지만 지상에 있는 물탱크는 송두리째 사람의 힘을 흡수하는 묘한 기능을 가진다. 그런 까닭게 옛부터 마당에 연못을 만드는 경우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라고 했다. 탱크의 물은 고여 있다가 일정한 시간대에 맹렬한 속도로 움직인다. 그 때에 발생하는 유속에너지는 인간의 기를 함께 흡수하여 버린다. 차라리 폭포 속에서 기도하는 폭포 수행자는 그런 피해를 받지 않으나, 갑자기 이 처럼 갑자기 흘렀다가 중지 했다가 하는 물이 가지는 흡수력은 굉장히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물탱크 근처에서 사는 사람은 십중팔구 신경통,류마치스, 그리고 성격장애 내지는 가벼운 정신병에 시달린게 된다. 아파트의 경우는 어디나 두가지 방식으로 물을 저장한다. 고층인 경우는 대체로 아파트 마당 아래에 지하 물 탱크를 두고 있으나, 빌라 형식이나 저층 아파트는 지붕부위나 옥상에 탱크를 설치한다. 문제가 되는 자리는 맨 윗층에 사는 경우이다. 지하에 물탱크가 있어도 일단 급수를 위하여 옥상으로 올렸다가 수압차를 이용하여 각 세대별로 공급하는 체계인 까닭에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물이 움직이는 느낌 을 가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맨 위층은 피하는 것이 좋다. 난방이 제일 잘 드는 곳이라고 해서 모두들 최상층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건강을 위하여 기피할 자리라 하겠다.

  

  

5. 주택가의 길은 일종의 물줄기와

같은 것으로 보라.

  

어느 동네를 가 보더라도 길이 제대로 난 동네가 별로 없다. 이는 우리나라 도시구조가 자연 발생적이어서 그렇다고 본다. 대전중심가나 진해시 같은 곳은 처음부터 계획도시로 정해져 길이 정돈되어 있으나, 특히 서울의 오랜 동네는 길이 마치 미로와 같다. 말하자면 직선 구조라기보다는 곡선 구조를 가진 길이 많다는 말이다. 그러나 곡선 구조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투른 직선구조의 길목에서 살지를 택하기 보다는 곡선 구조의 도로에 인접한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사람과 차가 다니는 도로는 일종의 물길과 같아서 생김새와 함께 그 도로의 어느부분에 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점검 항목이 된다. 말하자면 길이 어떻게 생겼으며 자기의 집이 그 도로와 어떤 형식으로 접하고 있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가족 전체의 운명을 좌우한다. 이를 가리켜서 일종의 ‘접도 가상학’(接道家相學)이라 하겠는데 여기에는 엣부터 전해 오는 여러가지의 유형별 감별 방식이 존재한다.

이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비전수룡경 ; 임준 저 ,“좋은 땅 좋은 집” 519-523쪽에서 발췌 인용/

(1) 겸수지격(鉗水地格) : 길이 건물의 좌우를 감싸 안듯이 보이는 상태

로서 타인의 협조를 받아 재운이 오는 자리이다.

(2) 이두성격(裏頭城格) : 길이 뒤편을 돌아 오른 쪽으로 빠져 내리는 상태를 말하며 장남이 대를 잇지 못하고 쇄잔한다.

(3) 음사수격(陰賜水格) : 큰 길에서 길이 양갈래로 뻗혀 와서 양쪽을 감싸는듯한 모양으로, 큰부자가 될지는 몰라도 가족이 불행한 일을 겪기 쉬운 결함이 있다.

(4) 금구격(金鉤格) : 쇠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진 길이 집 앞을 감싸 안은 모양으로 지나는 상태를 가리키며, 가장 무난하고 부유한 삶을 누릴수 있는 길지이다.

(5) 금구전포격(金鉤轉抱格) : 길이 건물의 뒷편으로 감사고 들어온 모양을 갖춘 형태로서 투기성의 벤쳐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6) 절수격 (折水格) : 길이 마치 자동차용 크랭크를 닮아서 직선으로 구부러진 상태로 집옆을 지나갈 경우를 말하는데, 이 자리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복을 받는 대기만성형의 사람이 살 자리이다.

(7) 삼절수격 (三折水格) : Y 자 모양의 길을 끼고 있는 집을 가리킨다. 이런 자리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는 자리로서 주변 도로와 지형을 살펴서 판단한다. Y 자의 아래부분의 길이 낮은쪽으로 나가면 그 집은 대체로 융성하지만 반대로 윗길이 갈라지며 아래로 치는 모양이라면 대단히 불길하고 가족이 다칠 가능성이 높다.

(8) 회룡격 (廻龍格) : 길이 디귿 (ㄷ)자 모양으로 감싸고 도는 경우의 집인데, 이런 모양의 길을 끼고 있으면 맥이 응집되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욕심을 많이 내면 명예에 손상이 오는 자리이기도 하다.

(9) 횡직수로격 (橫直水路格) : 길이 건물 옆으로 지나가는 상태로서 별 이득도 없고 손실도 없는 자리이다. 그러나 건물 앞이 길보다 약간 들어가 있으면 복이 모인다. 이를 가리켜서 ‘전요복래격(前凹福來格)이라 한다. 말하자면 길에 자기의 터를 희사한다는 의미에서 복을 받는 것이라 볼수 있다. 특히 대문부위를 그렇게 설계하면 미관에도 좋다.

(10) 반구격(反鉤格) : 건물을 향하고 있는 길이 돌아쳐서 꺾어지며, 반대방향으로 돌아 나가는 흉지를 말한다. 이런 곳의 집은 재산상의 송사를 비롯하여 가족의 정신질환을 초래하기 쉽다.

이상의 감별법을 보면 길을 물줄기와 같은 개념으로 본다. 음택풍수에서 말하는 득수(得水)의 개념이 적용되는 셈인데, 자동차는 금성화(金性火)로 보고, 사람은 수(水)로 보아 그 흐름이 가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이치에 닿는 논리체계라 할수 있다. 위에 나온 격에도 음사수격이니,절수격이니 하는 말 그대로 길은 물의 흐름과 유사개념으로 파악하면 실수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비가 많이 오면 도로를 통하여 빗물이 흐르고 사람도 70 % 이상은 물로 구성된 존재이니 그말이 과히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똑같은 길이라도 자동차 전용도로의 경우는 금화(金火)로보아 마땅할 것이다. 예를 들면 남쪽에 도시고속도로가 동서로 나 있을 경우는 금화가 지나치니 불리할 것이다.

  

6. 서쪽이 높고 동쪽이 약간 낮은

땅이 길지이다.

  

  

집 터의 경사도가 어떤가는 대지의 선정에 기본이 되는 건축학의 구배(勾配)이론을 동원하지 않아도 실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몸으로 느낄수 없는 경사각이라고 해도 주택의 경사는 매우 중요한 지기론의 기초가 된다. 일반적으로 땅의 기울기를 재기 위해서는 마당에 물을 뿌려보면 된다. 그때에 물의 흐름이 어느 쪽을 향하는가를 보면 땅의 경사도를 짐작할수 있다.

지기의 흐름으로 볼때, 가장 기피하는 것은 남쪽이 북쪽보다 높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경사를 이루는 땅이다. 그 다음으로 서쪽이 낮고 동쪽이 높은 경사를 이룬 땅이 기피의 대상이다. 그리고 불쑥 솟아 있는 대지도 기피의 대상이고 주변보다 아래로 풀석 꺼져 있는 대지 역시 좋지 못하다. 자연 지형의 모양이 아무래도 기본적 경사를 가지는 땅은 이런 면에서 보아 평탄한 땅보다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왜냐하면 물의 흐름과 태양광선의 접사도(接射度)는 땅의 기울기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이는 결국 생명력을 유지해 나가는 기본적인 기의 문제로 까지 파급된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땅은 태양의 조사 시간이 오후에만 집중된다는 결점을 가지므로 생기를 지닌 땅으로서의 가치가 그만큼 줄어 든다. 그리고 북사면(北斜面)으로 된 남고북저의 땅은 태양광선이 비춰지는 각도가 직사되지 못하는 까닭에 아무래도 음기를 띄기 쉽다는 문제를 가진다.

서쪽이 높고 동쪽이 약간 낮은 땅이 어째서 길지인가 하면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1) 서쪽이 높으면 주택이나 건물이 동남향을 보게 되므로서 밝은 태양광을 쉽게 받는다. 그러므로 양택으로서의 기본조건인 일조시간대가 길어진다고 할 수 있다.

(2) 우리나라의 산맥은 대체로 대맥으로 볼 때, 남서향으로 진행하고 있으므로 그 맥 중에서 뻗어 내린 용(龍)이 오른 쪽으로 자리를 트는 곳이면 사람이 자리 할수 있는 주거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북쪽의 현무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은 서고동저의 자리이라 하겠다. 그림을 그리자면 다음과 같다.

󰠆󰠏󰠏󰠏󰠏󰠏󰠏󰠏󰠏󰠏󰠏󰠏󰠏󰠏󰠏󰠏󰠏󰠏󰠏󰠏󰠏󰠏󰠏󰠏󰠏󰠏󰠏󰠏󰠏󰠏󰠏󰠏󰠏󰠏󰠏󰠏󰠏󰠏󰠏󰠏󰠏󰠈

󰠐󰠐

󰠐󰠐

󰠐󰠐

󰠐󰠐

󰠐󰠐

󰠐󰠐

󰠌󰠏󰠏󰠏󰠏󰠏󰠏󰠏󰠏󰠏󰠏󰠏󰠏󰠏󰠏󰠏󰠏󰠏󰠏󰠏󰠏󰠏󰠏󰠏󰠏󰠏󰠏󰠏󰠏󰠏󰠏󰠏󰠏󰠏󰠏󰠏󰠏󰠏󰠏󰠏󰠏󰠎

  

(3)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으면 자연히 물길의 방향이 동쪽으로 흐르게 된다. 예를 들면 서울의 청계천이 그러하다. 풍수의 기본개념에서 말하는 장풍득수라면 역시 북쪽이 높아서 찬 바람을 막아 주고 서에서 동으로 물이 흘러 득수하는 곳이 명당이다.

  

이상의 물길과 태양광선 그리고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여 인간이 사는데 필요한 최적지를 선정하는 풍수론의 지혜는 현대과학이 말하는 입지선정의 조건과 거의 차이가 없는 우리선조의 현명한 경험 철학이기도 하다.

  

  

7. 집 뒤로 높은 길이 나 있으면

흉하다.

  

앞에 말한 접도 가상학의 이두성격(裏頭城格)과 비슷하지만 그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집 바로 뒤의 높은 길에 대하여 그 폐해를 알아 두어야 한다. 도시는 밀집된 공간이므로 터만 있으면 집들을 지어 가지고 사는형편이다. 그렇지만 집을 지어서 살면 정말 곤란한 장소가 바로 이러한 집이다. 집 바로 뒤에 높이 길이 나가지고 위태로운 자리, 그곳은 분명히 살지(殺地)이다. 오래 살게 되면 갖은 흉칙한 일이 발생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1) 집뒤로 길이 나 있으면 사람과 차가 지나 다니면서 갖은 오물을 투기한다. 예를 들면 행인이 사과를 먹다가 깍지를 버릴 곳이 마땅하지않으면 길 아래 집의 지붕위에 던져 버린다. 가래침도 뱉고 지나가고, 밤중이면 담벼락에다가 오줌도 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오물이 쌓이게 되면 부패하게 되고 따라서 병균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변한다. 더구나 길보다 낮은 자리는 통풍이 나쁘기 때문에 습기가 차서 자동적으로 공기 중에 곰팡이 균이 우굴거릴 것이 뻔하다. 2) 그리고 뒷길이 주택보다 높으면 차가 지나갈 때의 진동이 곧 바로 그집의 서까래나 기둥부위를 친다. 따라서 주택의 수명이 단축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그리고 세번째로 유념할 점은 프라이버시와 구설수에 관련된 것이다. 뒷길이 낮은 집의 경우는 지나는 사람의 헛소문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집안이 훤히 내려다 보이기쉬운 까닭이다. 사람은 정면에서는 뒷말을 못한다. 뒤에서 험담을 하는 습성이 있는데, 마침 뒷길이 나있으면 지나갈 때마다 아주 사소한 빌미만 있어도 그런 생각과 헛된 소리를 해댈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길이 높이 지나가므로 아래에 내려다 보이는 집에 사는 사람을 깔보는 심리적 우월감을 느끼기 십상이다. 말하자면 심리적으로 좋지 못한 환경을 촉발한다고 하겠다. 경멸을 당하기 쉽고 구설이 자주 발생되는 지형이라 볼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살펴본다면 구 시대에 청와대 앞뜰이 내려다 보이지 않게 하고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봉쇄시켰던 것도 굳이 암살을 막기 위한 수단이라기 보다도 고약한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경멸을 막기 위한 원천봉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인의 경험으로는 서울시 성동구 행당동 000번지 일대에서 살았던 때의 일을 기억한다. 신당동에 살 때와는 달리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갑갑하고 숨이 차 올라 오는 느낌이 들고 공연히 가족간에 시비하는 일이 많았던 곳으로 좋지 못한 추억의 집이 되었다. 바로 그집이 뒤로 큰 길이 나있었고 축대는 담으로 둘러 쳐져 있었어도 심심챦게 돌맹이가 마당으로 날아드는 집이었다. 술을 마시고 지나가는 취객들이 돌맹이를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다가 그 짐은 막다른 골목에 자리해서 동네를 들어서면 화장실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가개 보면 아무리 값이 싸더라도 그런 곳에서는 살지 말아야 했다. 거기 이사가고 나서부터 나의 가족은 생기를 잃었고 우리 집 사정은 점점 기울기 시작했으며 본인은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옮겨야 했다. 길아래 집인데다가 막다른 골목 까지 겹쳤으니 그 흉칙한 지기를 이길 힘이 없는 우리 가족은 희생자가 되수 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아무튼 그 동네에 살던 사람 치고 잘 되어서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사람을 별반 보지 못했다. 몇 년전 그 동네를 다시 가 보았다. 옛날의 자취는 사라지고 멋진 빌라로 개발건축된 것이다. 그리고 길 뒤로는 출입구가 생겼고 전혀 알아 볼수 없는 동네가 되었다. 이제는 아마도 그런 희생이 없을 것이다.

  

  

8. 어떤 유래라든가 내력이 좋은 집을

택하라.

  

땅에는 지기가 있고 사람에게는 인기가 있다. 좋은 내력을 가진 집이란 대체로 좋은 사람이 살고 있거나 살았던 집을 의미한다. 좋은 사람은 복이 있어서 좋은 집을 선택하여 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진실로 좋은 땅 찾기를 바란다면 천륜과 인륜을 지키는 것으로 족하다. 풍수도(風水道)란 천도와 인도에 다름 아니란 점만 명심하면 된다”/최창조 저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 500 쪽에서

그의 말대로 선인에게는 좋은 터가 주어진다면 굳이 좋은 터를 구하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 자리부터 돌아 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보게 되면 특정 직업상으로 유래가 좋은 집은 그럴만한 사람에게 돌아 감을 느낄수 있다. 예를 들자면 유명한 학자가 살던 집은 재벌 총수가 살기보다는 역시 유명한 학자가 다시 입주해서 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인간관계적인 측면에서도 동질적인 사람이 교류가 많은 관계로 계약을 해 가지고 들어 가기 쉬우니까 그렇지만, 특정한 부류의 사람이 오래 그 자리에 몸을 담고 살면 필연적으로 거기에 어울리는 지기를 형성해 놓고 떠나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들어 오려고 해도 어쩐지 어울리지 않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유래가 좋은 집이라 하면 인간의 오복을 기준으로 아주 평범한 잣대가 설정되어 있으므로 구분하기가 쉽다.

“ 이 집에 들어온 사람은 모두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 말은 복덕방 영감이 흔히 집을 소개할 때 하는 말이다. 사실이 그런의 여부를 떠나 그런 말이 들리면 공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 말이 나중에 확인해 보니까 진실이라면 틀림없는 복 터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집에 신혼부부가 와서 5년을 살았는데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 말도 새로 집을 장만하는 신혼부부에게는 즐거운 말로 들린다.

부자가 되고, 건강하게 하고, 원하는 자식을 가지게 만드는 좋은 터라는 말이 들린다면 공치사가 아닌 이상 그 말이 지기를 상징하는 말이므로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이와 반대되는 경우이다. 유래나 내력이 나쁜 집이다. 의례 그런 집은 싸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인간이 불행을 겪다가 보면 빨리 처분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기 원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새로 들어 오는 사람은 값이 싼 맛에 자기도 모르게 계약을 덥썩하고 괜챦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사를 와서 동일한 불행을 겪는 일이 허다하다. “ 일년에 한 사람 씩 죽는다더라 ” “ 그 집은 들어 가기만 하면 주인이 병이 나거나,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더라 ” “ 집주인이 폭삭 망해서 쪽박을 찼다더라 ” “ 은행에 담보를 넣고, 그것도 모자라서 사채 근저당에 가등기 까지 했던 집인데 나중에 들어가서 산 사람도 사업부진으로 망했다더라” - - - 등등 이루 헤아릴수 없는 요인으로 인하여 흉가 아닌 흉가로 변한 집이 많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나는 원래 기가 세니까 괜챦다” 하고 겁도 없이 이사하는 사람이 많으며, 특히 그런 것은 쓰잘 데 없는 미신이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과연 그런 것이라면 어째서 불행한 일이 생긴 건물은 연거퍼 거의 동일한 불행을 겪는지 설명이 가능해야 하는데, 과학으로 입증이 안되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9. 고압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은

가능하면 피하라.

  

전기는 에너지 자원으로서 필수적인 현대인의 문명 이기이다. 그렇지만 전기가 가지는 폐해는 상당히 큰 편이다. 고압전류의 흐름이 가지는 전자장(電磁場)의 형성과 그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서울의 삼양동 지역의 일부와 전농동의 일부 장위동의 일부 그리고 하남시에서 성남으로 연결되는 시외 인입 고압선의 대부분이 200,000 볼트를 넘어 가는 높은 전압을 띄고 있다. 고압선은 지상 20미터 정도의 높이를 지나가는데 평소에도 웅 --- 하는 기분 나쁜 소음이 이어진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고압선이 지나는 지역에서는 피부백납증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신문에 난 일도 있고, 각종 노이로제 환자나 암발생 빈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알수는 없으나 아마도 전자장이 일으키는 인체 생리적인 부작용이 상당한 범위에서 적용되는 것 같다. 주택가가 밀집된 지역의 고압선은 또한 외관상으로도 문제가 있고 어린이들이 장난 삼아 오르는데는 위험요인이 따르지 않을 수 없음을 고려해 볼때 이들 고압선은 빠른 시간내에 지하에 매설하는 케이블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서 언제나 그러했던 것 처럼 중요한 한가지의 단서를 발견한다. 형체는 보이지 않으나 무엇인가 해를 끼치는 요인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밝혀지지 않는 이상 그대로 방치될수 밖에 없다는 중요한 사실이다. 고압선에서 발생되는 전자파나 자기파동이 인간의 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인체로 실험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사 나중에 그런 부작용이 발견된다 해도 그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은뒤라는점이 늘 문제가 된다. 이는 각종 공해문제가 발생될 때마다 “ 근거가 무엇이기에 우리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가 ?” 하는 기업측의 말로서 역력히 나타난다.

광양만에서 김 양식에 피해를 준 원자력발소의 더운 물도 그랬었다.

한편 영적인 문제로 인하여 질병이나 재난을 당할 경우에도 똑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현대 과학 문명의 시대에 귀신의 장애라니 ? 그런 터무니 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 ” 그런 사람일수록 영혼은 귀챦을 만큼 달려 들어서 놀랄정도로 많은 피해를 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하는 본인은 그런 일들이 우연한 일이라고 체념한다. 옆에서 보는 나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과학이란 때때로 인간이 가진 「최악의 미신(迷信)」일 수도 있음을 절감한다.

짐작하건데, 고압선에서 생긴 전자장은 인간이 가진 고유의 기파동과 이에 따른 기의 순환체계를 송두리째 마비시킴으로 인하여 백납증이나 암세포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전자파동의 고유음이 이미 귀에는 들리지 않는 고주파로서 뇌신경을 건드려 가지고 노이로제 환자가 발생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강한 에너지는 인간의 에너지 파동의 기본이 되는 기파동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기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가 지나치게 강한 사람의 옆에서 일하면 그 사람에게 기가 죽어서 제 실력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일이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지기는 땅에서 솟아 나지만 허공에 매달린 전선줄에서 발생되는 전자기파동은 이보다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머리에서부터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더 조심해야 할 점이다. 특히 송전선이 지나는 곳에서 200미터 이내는 강한 자기파를 받으므로 가능하면 그런 지역에서의 수면및 생활은 피하는 것이 좋다.

  

  

10. 삼각형의 대지에서는

살지 말라.

  

재개발지역을 다녀 보면 도로가 확장되는 까닭으로 마치 수박쪽 처럼 대지가 잘려나가서 3각형의 땅을 이룬 곳이 무척 많다. 그리고 길을 낼 때

각도를 잘 못 잡아서 예각의 안쪽으로 대지를 구성하면 이와 마찬 가지로 꼭지 땅을 형성한다. 이는 삼거리가 저절로 구성된 도로변의 집과는 달리 지기가 모이지 않고 계속해서 흩어지는 까닭에 무엇 보다도 거주민의 건강에 막대한 장애를 일으킨다. 그 중에서도 대지가 50평이내의 작은 규모로 꺾어진 꼭지점의 각도가 예각으로 30도 미만인 경우는 그 곳에서 살기 시작하여 1년 이내에 반드시 집안에 풍파가 일어 나는데 대체로 그 형태는 교통사고나 원인불명의 정신 질환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도로와 접하는 면이 한군데 밖에 없는 땅이라 하더라도 3각형의 땅은 기본적인 모양새가 가지는 경제적인 면에서의 결함을 피할 수 없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4각형의 터를 잡기 의해서는 최소한 50퍼센트의 대지를 낭비해야 하므로 건폐율의 측면이서 가동할 수 있는 범위에 제약이 들어 간다.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은 나머지의 짜투리 땅도 별로 쓸모가 없고 미관상 균형이 맞지 않는 비뚤어진 모양의 담장을 늘 접하게 되므로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그뿐이 아니다. 도로가 쌍갈래로 난곳에 꼭지점을 내밀고 있는 땅은 공연히 건방진 느낌이 들어서 도둑들의 침입대상이 되기 쉽다. ‘삼절수격’에 속하면서도 이 결함을 보완한 곳은 물론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꼭지점의 부분에 차고를 만들어 허점을 보완하는 방법도 있고, 그렇게 하기가 마땅하지 않으면 상록수를 심어서 담장 높이보다 반절 정도 위로 솟게 하면 그러한 살기를 죽일 수 잇다. 그렇게 하면서 약간의 둔각을 두어 손해를 보더라도 끝으머리의 처리를 원만한 원형으로 만들어 두면 살기가 바뀌어 정기로 돌아 온다. 하지만 도심의 주민들이 땅 한뙤기에 눈이 어두워져 그러한 비보(裨補) 기법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에 문제가 있다. 약간의 땅을 공공용지로 양보하고 자신의 주텍지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살기를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일이거늘 전혀 그런 면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오히려 한치한뼘의 땅이라도 많이 차지하려고 하다가 지살을 맞아 불구가 되거나 사고로 명을 잃는 일이 많으니 큰일이라 하겠다.

  

󰠐󰠏󰠏󰠏󰠏󰠏󰠏󰠏󰠏󰠏󰠏󰠏󰠏󰠏󰠏󰠏󰠏󰠏󰠏󰠏󰠏󰠏󰠏󰠏󰠏󰠏󰠏󰠏󰠏󰠏󰠏󰠏󰠏󰠏󰠏󰠏󰠏󰠏󰠏󰠏󰠏󰠏󰠏󰠏󰠏󰠏󰠏󰠏󰠏󰠏󰠏󰠏󰠏󰠏󰠏󰠏󰠏󰠏󰠏󰠏󰠏󰠏󰠏󰠈

󰠐󰠐

󰠐󰠐

󰠐󰠐

󰠐󰠐

󰠐󰠐

󰠐󰠐

󰠐󰠐

󰠐󰠐

󰠐󰠐

󰠌󰠏󰠏󰠏󰠏󰠏󰠏󰠏󰠏󰠏󰠏󰠏󰠏󰠏󰠏󰠏󰠏󰠏󰠏󰠏󰠏󰠏󰠏󰠏󰠏󰠏󰠏󰠏󰠏󰠏󰠏󰠏󰠏󰠏󰠏󰠏󰠏󰠏󰠏󰠏󰠏󰠏󰠏󰠏󰠏󰠏󰠏󰠏󰠏󰠏󰠏󰠏󰠏󰠏󰠏󰠏󰠏󰠏󰠏󰠏󰠏󰠏󰠏󰠎

  

11.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낀

가운데 동네에서 살지 말라.

  

  

부유한 동네 근처에 산다는 것은 생각해 보기에 따라서는 위험한 일이다. 93년 10월에 발생한 미국 L.A 지역의 산불은 고지대에 위치한 부유층들의 주택을 수백채나 불살라 버렸다. 이 일은 만의 하나 부유층에 대한 불만을 가진 자의 방화소행일지도 모른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기후조건이 건조한 시기에 강풍이 남쪽에서 불어와 생긴 사건이기는 하지만 최초 발화의 원인은 방화범의 소행에 기인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가 없어 계속해서 수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92년의 5월에 발생한 L.A 한인 타운의 약탈방화사건 역시 그런 의미를 가진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편에 속하는 흑인과 히스패닉계의 주민들이 로드니 킹 구타사건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동이라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빈곤층과 부유층의 중간에 낀 우리 교포가 애매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미국에 이민간 교포들이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하여 번 재산이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생긴 돈으로 의식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감정적인 요인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큰 원인은 우리 한국의 교포가 백인 부유층과 가난한 그들과의 사이에 끼어 있다는 점이다. 들리는 바로는 교포들 중에도 돈을 좀 벌면 모두 백인 거주지역으로 이사가는게 꿈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닌 상태에서 양쪽의 불만해소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대도시에도 이런 현상이 있다. 소위 말하는 재개발 지역과 부유층이 사는 동네에 사이에 끼어 사는 중산층의 주민들은 한결 같이 이런 말을 한다.

“ 동네 분위기가 아주 안좋아요. 조금 생활 수준이 떨어지는 동네가 옆에 있으니까, 불안해서 못살겠어요. 도둑도 많이 들고요. 불량배들이 자꾸만 괴롭히는 일이 많아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어요.”

그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학교 다니는 아이의 통학로에 항상 불량배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돈을 갈취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문단속을 조금만 소홀히 하면 대낮에도 여지없이 물건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부유층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도둑이 몰려 들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만만한 서민의 삶터인 곳을 노리고 쉽게 도둑질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빈곤층이 사는 동네에는 모두 도둑이 모여 산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고약한 도둑들이 부유층이 사는 곳은 감시가 심하고 자체 경비 시설이 되어 있으므로 범행을 저지르기 힘이 들므로 한참 동안 해메고 돌아 다니다가 만만해 보이는 중산충의 지역에서 몇번이고 침입을 시도한다는데 있다. 그야말로 꿩 대신 닭인 셈이다. 그뿐 아니라 범행이 들키면 강도로 돌변하여 사람을 괴롭히니 정말로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대체로 부유층은 약간의 비탈이 져 있는 산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옆으로 소로가 나 있으면 아래 쪽에는 중산층이 살고 부유층의 뒷편으로 약간 떨어져서 빈곤층이 살기 마련이다. 이럴 때에 새로운 주거지를 어디로 택할 것인가는 누구도 장담하지는 못하지만 가능하면 가능하다면 그런 생김새를 갗춘 지역은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더구나 요즘 처럼 재개발이 활발하게 추진되는 시대에는 공사로 인한 소음,먼지공해를 염두에 두더라도 좋은 주거환경은 못될 것이다.

  

  

12. 학교 옆 자리는 수재를 만든다.

  

우리는 맹모삼천지교(盟母三遷之敎)란 말을 익히 알고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공부를 잘 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하여 세번 씩이나 이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는 말인데, 이는 환경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적시하고 있다. 학교 옆으로 이사를 가면 학교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따라 공부를 하게 됨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학교 터가 대체로 어떤 자리인가를 유심히 살펴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옛날에도 향교가 있었거나 아니면 부군당과 같은 사당이 서 있었거나 아니면 궁궐 자리 등등 공공기관이 자리잡고 있던 곳인 경우가 무척 많다. 그 이유는 학교 자체가 원래 넓은 면적을 요구하는 기관이므로 일반인들의 주택이나 건물이 있던 사유지는 소유권의 이전등 복잡한 절차가 있어 새로 학교를 짓는데 부적합하기에 덩어리가 크고 손쉽게 지을 수있는 자리라면 역시 그전에 공공기관이었거나 사찰등의 터가 되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너무 외진 곳이면 곤란하므로 대체로 그 마을의 중심에 해당되는 곳에 자리 잡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터는 대체로 명당 자리가 된다. 예를 들면 동대문구 창신동 소재 동덕여고와 창신국민학교가 들어가 있는 안산의 동편 자락은 예전에 정업원(正業院)이 가까운 원흥사(元興寺)절터이며,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풍문여고는 이조말의 궁인들이 거처하는 별궁 자리로 알려져 있다. 황비가 이를 희사하여 지었으며 옆에 있는 덕성여고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쳤다. 또한 그런 터는 일반인들이 들어가 살기를 기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운집하였던 곳은 아무리 명당이라 해도 터가 세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인데, 덩어리가 큰 땅이 쉽게 처분될 리도 없으니 좋은 일에 기부 또는 불하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학교가 서고 나면 그 때부터 땅의 힘=(地氣)가 상승한다.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모여서 인기를 키우는 자리이므로 언제나 활기가 가득하여 아무리 나쁜 자리라 해도 학교가 들어 서면 그 주변에 이르기 까지 좋은 기운을 감돌게 만드는 것이다.

나의 증조부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안국동 50번지 쯤에 부친의 형제들이 서울에 거처할 공부방을 이미 60년 전에 마련하여 서울에 안심하고 유학하도록 마음을 썼던 분이다. 그 곳은 지금은 옮겨 갔으나 창덕여고와 뒷담을 맞대고 있는 집이었다. 그 자리로 정해서 그런지는 알수 없으나 거기서 공부한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일제강점시대임도 불구하고 대학을 나올 수 있었다. 본인 역시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방 도시에서 서울로 이사와서 직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던 나는 봉천 6동의 까치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한흥미술학교의 바로 정문과 어깨를 맞댄 집에서 세들어 산 일이 있다. 마침 그 집의 주인장은 학교업무를 관장하는 장학관이셨고 나는 그집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로 이사 가고 불과 6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좋은 직장으로 스카우트되어 갔을 뿐아니라 이후 생활에 안정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따금 명절이면 그 집과의 교류를 가지는 좋은 인연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집에서는 무엇보다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잘 떠올라서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낼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통과 유서가 깊은 학교 부지는 최근에 다시 일반회사에 그 소유권을 넘기고 거의 땅값이 싼 지역으로 이전을 하고 말았다. 계동의 휘문고교, 새문안의 서울고교, 화동의 경기고교 등등 도심집중을 막는다는 이상한 논리에 의하여 변두리로 이전해 가고 거기에는 커다란 사옥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흥미있는 또 한가지는 학교가 있을 때는 힘이 넘치지만 그 지기가 희한해서 학교가 옮겨가고 나면 그때부터 악살을 맞은 자리 처럼 재수 없는 곳이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보면 학교였던 자리에 들어 온 회사는 하나 같이 곤혹을 치루고 있다. H기업을 비롯하여 Y 물산도 그렇다는 소식이다. 학교가 자리를 떠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그 자리는 지기가 강해서 그 동안 침투하지 못했던 많은 잡령들의 소굴이 된다.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므로 아무래도 이후의 부작용을 알기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어린 학생들이 뛰놀며 공부하던 자리에 이기심을 전제로 하는 집단이 들어 오면 그 동안 순수했던 지기가 흩어지면서 동시에 잡귀들이 몰려 들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은 마로니에 공원이니, 대학로니 하며 이름도 달라지고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지만 서울대 문리대 자리 역시 이 범위에 속한다. 처음에는 고급 주택가와 문화공간의 조화라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시 재개발 사업의 하나였지만 지금 가 보면 먹자 골목 투성이로 변하여 거의 난장판 처럼 변모했다. 아이가 수재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우선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하자. 그러나 학교였던 곳의 옆은 가능하면 피하도록 하자.

  

  

13. 바위층 위에 지은 집은 피하라.

  

암석이 가지는 무서운 파동을 사람들은 상징화 시켜서 옛부터 암신(岩神)이라고 부르며 숭배했다. 고인돌이나 스톤헨지 등은 이를 신앙으로 삼은 우리 선조들의 신격화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럴 만큼의 이유가 바위가 가지는 특성 속에 숨어 있었기에 우리의 조상들은 바위를 신으로 모셨던 것이다. 땅을 인간의 신체에 비유했을 때에 바위층은 뼈에 해당된다. 흙은 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살집이 없거나 아주 빈약한 자리는 아무래도 사람이 살기에 적합지 못하다. 깡마른 사람이 신경질이 듯이 바위가 지나치게 드러나는 땅은 과민한 편이다.

태양열의 대류가 불가능하여 복사 현상을 일으키므로 오히려 모래 땅보다도 더 나쁜 편에 속한다. 보통 지심을 파들어 가서 5자 이내에 바위가 나오면 그 곳은 사람이 살 자리가 아니다. 바위는 일반 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위해요인을 가진다. 그 중에서 주요한 몇가지를 예로서 들어 보자.

첫째는 바위를 구성하는 성분의 분자활동이 가지는 고착성이다. 흙이 많은 땅은 균형된 안정성이 높으나, 모래땅이나 바위땅은 고착된 분자의 내부 유동이 적으므로 그 곳에 사는 사람의 기를 지나치게 고착 시킨다. 따라서 이 기질을 닮아 가는 거주민은 자신도 모르는 중에 보수적인 성격을 갖추게 될 뿐 아니라 사고에서 보여지는 융통성의 결여로 인한 편집증적인 기질이 증가한다. 수행자들이 암굴에서의 수행을 기피하고 가능하면 토굴을 선호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두번째 이유는 수기(水氣)의 과다문제이다. 바위층이 지표에서 지나치게 가까우면 지하수의 통로가 얕기 때문에 습기가 올라 올 뿐아니라 큰 비가 오면 집 자체의 기초가 유실될 위험에 처한다. 지하수맥의 문제로 고민하는 집 터를 가 보면 거의 태반이 암반의 지중 돌출이나, 지나치게 앝은 곳에 바위층이 존재함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얕은 곳의 암반은 지하수맥의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볼수 있다. 이는 곧잘 거주민의 척추신경계에 장애를 일으켜서 신경장애의 근본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째로는 바위가 가지고 있는 자기파동의 문제이다.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란 말을 자주 듣지만 그 주체가 바로 바위라는 이야기는 잘 하지를 않는다.

화강암,편마암,대리석,기타 수성암등으로 구성된 암반이 지층 속에 들어 있는데 자성(磁性)을 강하게 띄고 있는 지층구조를 가진 암반지역이 의외로 많다. 지구 중심부에 들어 있는 니페층(Nife層)마그마에서 전달되는 자기파동이 지표면 가까이에 있는 자성 바위를 만나면 그대로 자석의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표토층이 얇은 바위 땅에서 사는 사람은 아주 약해지거나 아니면 아주 강해지는 양극단의 체질로 변하여 위험하다. 자성은 인간의 골격에 영향을 미쳐서 강골의 인간이거나 아니면 약골의 인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서울의 북서쪽에는 고급주택이 즐비하다. 모두들 산허리나 비탈을 깎아 가지고 고대광실을 지어 놓고 산다. 사실상 인간의 기에 얼마나 위험요인을 갖는지를 모르니까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이지 그들이 이 점을 안다면 하루도 거기서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곳은 사람이 살 자리가 아니다.

  

  

14. 지반이 약한 매립지는

폐를 상하게 한다.

  

언제인가 공해문제를 다루는 T.V 프로그램 중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 쓰레기 매립지에 사는 사람들은 원인불명의 호흡기 질환이나 신경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주 많다” 고 한다.

그런데 최근 매립지의 공해문제는 자칫하면 거기에 버린 쓰레기의 질에 관한 문제에만 국한되기가 쉬운 면이 있다. 실제로는 매립지라는 인공적인 작위성 성토작업에 문제가 있음을 무시하는 일이 재검토되어야 함에도 전혀

매립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심 조차 없고 다만 버려진 쓰레기가 어떤 것이냐에만 집착하고 있어서 걱정이다.

매립지는 근본적으로 여물지 않는 지반이라는 입지상의 특성을 가진다.

본래 늪지라든가 하천부지였다면 더욱 그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이 나지는 않으나 지형상으로 낮은 지역이므로 이를 메꾸어서 조성하는 매립지인 경우는 그래도 경제성을 감안한 성토(盛土)라는 명분에도 합당하지만, 늪을 메꾸거나 하천의 하상이었던 곳을 건축 쓰레기나 기타 성분이 불분명한 물질로 매립하면 자꾸만 아래로 땅이 꺼져 들어 가는 지반침하가 생길 것은 뻔한 일이다. 안양에 있는 새로생긴 S 아파트 단지의 경우도 그렇고 서울의 한양대 뒷벌에 있는 신시가지를 비롯하여 왠만한 개발지역은 거의 모두가 매립방식으로 저지대를 고루어 성토한 까닭에, 지반이 물러서 어쩌면 벽에 금이가고 약간 씩 기우는 현상이 생긴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말하자면 원형토질을 엄격히 조사하여 타당한지의 여부를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마구잡이 매립이 문제이다.

비를 맞고 바람에 풍화되어 자연스럽게 다져지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일반적인 경우에 약 1년에서 2년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미쳐 지반이 다져지지 않은 땅위에다가 집이나 아파트를 잔뜩 지으므로서, 지하에서 발생하는 부유분진과 메탄이나 유해성 질산 개스등의 영향을 받아 주민들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 설사 그런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이질적인 토사의 상호 융합은 우리가 알수 없는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원인불명의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타 지역의 토사를 사용하여 덧 씌워진 지역이기에 본시 그 지역에 흐르고 있던 지기의 혼란을 초래하고, 지기가 안정되기 까지는 카오스상태가 이어지므로 약한 육신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악영향을 받게 된다. 이는 마치 멀쩡한 살위에 반창고를 붙혔을 때에 살이 부어 오르는 것과 다름이 없는 지기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이미 서울의 개발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생태계의 혼동을 초래함으로서 생기는 각종 해충의 번창이 피부질환을 일으킨 사례도 여의도에서 발견된 일이 있다.

토지를 개발하는 업자에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비좁은 국토에서 매립이라도 하여야 국민의 생활 터전이 한 평이라도 더 확보 가능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틀린 생각은 물론 아니지만, 완전히 다져지지 않은 매립지에 사람이 살게 하거나, 그런 땅에다가 쓰레기나 불순물을 묻는 행위는 장기적인 살인 행위라고도 볼수 있겠다.

  

  

15. 안개가 자주 끼는

호수 가나 강변은 피하라.

  

기온이 높고 공기 중에 습도가 많으면 안개가 끼지 않는다. 그러나 지표의 온도가 낮은 상태에서 공기중 습도가 높으면 영락 없이 안개가 낀다.

이는 습기가 응결되는 자연현상이지만 인간의 생리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원인이 된다. 노래 말에도 “안개 속으로 사라진 사람”이란 귀절이 있다. 하지만 안개가 자주 끼는 물가 지역은 사람이 편히 살 곳이 못된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서로 연애하는데는 좋을지 몰라도 안개지역은 여러모로 살기를 띈다. 무엇보다도 건강에 해롭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쾌적한 습도는 50 퍼센트 정도인데, 안개가 낄 정도라면 이미 70 퍼센트를 넘는 습도가 된다. 그러니까 끈끈한 느낌이 들 만큼의 습도이다. 폐가 약한 사람한테 그 정도의 습도는 호흡에 부담을 준다. 다음으로 냉기(冷氣)를 들 수 있다. 습도가 높고 온도가 낮으면 사람의 체감온도가 더욱 내려 간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은 신체로 느끼는 기온이 더 낮게 느껴짐과 같다. 냉기는 인체의 골구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라 할 관절의 운동성능을 떨어뜨리므로 류마티즈나 관절통을 앓는 사람에게는 치명적 손상을 준다. 더구나 요즘 처럼 스모그현상이 극심한 대도시에서는 아침안개 속의 아황산 개스,질소 화합물,탄산개스, 과산화질소 등의 악성개스는 호흡기를 망치기 쉽다. 브지런히 일어나서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도시인들이 많다. 차라리 아침운동을 그런 공기 속에서라면 안하는 편이 나을 터이다.

한강변이나 팔당호수, 경춘가도의 모텔 등은 최악의 주거 입지이다. 특히 아침 시간에는 공기가 최악의 상태로 떨어진다. 그런 곳에 집을 지어 놓고 사람들이 들어와 살라고 하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같다. 며칠간 머물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정도라면 별 지장이 없을지는 몰라도 장기간 그런 자리에 체류하게 되면 반드시 신체에 이상이 올 것이다. 옛부터 “명산대천에는 명당이 없다”는 말이 전해 내리고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명산 대천은 경치가 좋기는 하여도 장기간 인간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적당한 햇살과 이에 따른 온기 그리고 습도 등에서 여지 없이 기대에 어긋나는 자리가 태반이다. 만약 안개 속으로 사라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거든 그런 자리는 피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리고 오행의 원리로 보더라도 수기(水氣)가 지나치면 내장에 병을 가져온다는 말이 있다. 특히 인체에서는 수기가 지나치면 심장과 신장이 다치는데, 그런 면을 고려하여도 마찬가지 결론이 난다.

  

  

16.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에

형성된 주택지역은 피하라.

  

계곡을 메꿔서 집을 지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 물길을 막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며, 바람의 통로를 거스를 뿐 아니라, 태양의 광선을 막아 버려서 자칫하면 인간 자신의 건강 뿐 아니라 모든 생태계를 파괴하는 반자연행위를 일으킨다. 도시화로서 인간은 저들의 편의를 위하여 모든 생명과 자연의 조화를 깨뜨리는 일에 앞 장서 왔다. 특히 도시에서는 한 뼘의 땅이라도 이용하려는 욕심이 작용하여 골짜기 깊숙한 곳에 까지 집을 지어서 분양하는 일이 흔하다. 이는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대도시의 고급 주택가를 비롯 모든 산동네에서 공통되게 일어나는 비극이다. 이따금 수해가 나면 많은 인명의 손실을 일으켜 말썽이 되기는 하여도 근원적으로 사람이 살곳이 못된다는 개념에서 떠나지 않는데 큰 문제가 있다.

언제인가 안양의 호암산 기슭에 큰 저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온 일이 있다. 그 사람은 갑자기 발생한 회사의 공금 횡령 사건으로 문제의 갈피를 찾지 못하고 부인과 함께 나를 찾은 것이다. 그를 보자마자 집에 큰 문제가 발생되어 있음을 알아 차렸다.

“ 댁의 집안 뜰 밑으로는 커다란 통수관이 통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직경으로 치면 약 3자 정도니까, 1미터는 너끈히 넘어가는 규격인데 그런 통수관이 집 아래의 일부를 지나가고 마당으로 물을 흘려 내는데 그집이 무사할 리가 없지요”

집의 생김새나 위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의 땅 밑으로 큰 하수관이 지나간다는 나의 말을 듣자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그 부부는 눈을 쫑긋이 세우더니 입맛을 다셨다. 이제야 자신들을 구해줄 임자를 제대로 만났구나 하는 표정이다.

“ 그러면 어쩌면 좋지요. 선생님. 그 통로를 막아 버릴까요. 하지만 물이 흐를 수 있는 길이 없어지쟎아요 ?"

“ 그집은 무슨 수를 써도 틀렸어요. 누가 들어가 살아도 계곡에서 내려오는 수기의 왕성한 유실작용을 막을 길은 없지요. 이사를 가도록 하세요.”

이 부부가 나의 충고르 듣지 않은 것은 참으로 잘 못된 일이었다. 그 곳으로 이사간 다음부터 기울어지기 시작한 회사는 다시는 회생하지 못하고 다음해 봄에 완전히 문을 닫고 말았다.

흔히 계곡을 메꾼 지역에서 집을 지을 때에 벌어지는 일로 통수관이 집

아래로 마구 지나가게 공사를 벌인다. 이는 상식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나 주택을 짓는 업자들로서는 그렇게 해야 많은 경비를 절감할 수 있으므로 보이지 않는 지하에 큰 하수관을 매설하는 일이 많다.

수기가 누설되는 지역에서는 재산이 모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이기는 커녕 쓸데 없는 사고나 아니면 부하들의 모반으로 있는 재산도 모두 없어지기 쉽다. 계곡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사람이 살면 그 만큼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법칙이며 인과응보인지도 모른다.

  

  

  

17. 언덕위 80% 이상되는

높은 지역은 피하라.

  

8부능선 위로 집을 짓는 일도 아무런 제약이 없이 이뤄지고 있다.

산의 정상 부근 까지 겁도 없이 집을 지어 올리는 일은 참으로 무모한 짓이다. 남산만 하더라도 꼭대기에 남산타워라고 하는 특수 건물을 세우므로서 그 흉칙한 몰골을 우리의 시민들에게 드러내 놓고 있다. 어찌 보면 실용적인 면에서 필요하니 어쩔수 없다고 할수 있으나, 산꼭대기에 집을 지어 놓고 무엇을 어쩌자는 이야기인가 ? 경부고속도로를 타고내려 가다가 보면, 신갈을 지나서 오른 쪽에도 모 회사의 재벌이 세웠다는 연수원 겸, 영빈관이라는 흉칙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야 말로 산을 바라 보는 눈이 없는 사람들은 산을 무시하고 80 % 이상의 높은 능선에다가 집을 짓는 일이 많다. 그런 곳에 지어진 집은 자연을 무시한 마음씨 때문에 반드시 보복을 받게 한다. 알기로는 그 재벌은 이후에 상당한 타격을 받고 현재 국내에서 30위 권 밖으로 벗어난 실적을 올린다. 예전에는 10위권내에 머물던 큰 그룹이었던 점을 감안해 보면 그 처럼 건방지게 산을 무시하는 자세가 결국 국민들의 감정이나 정치적인 바람에도 적정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산의 기를 받을 수 있는 자리는 결코 높은 곳이 아니다. 그 산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랄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보통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목산이나 수산의 경우는 산 허리 이하의 평지로부터 20% 이내가 적정한 입지의 한계라고 볼수 있다. 말하자면 풍수지리학에서 말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선 까지가 최대한의 경계라고 본다. 그러나 그산이 토성산이거나 금성산인 경우는 이보다 더 낮아 져야 함은 물론이다. 산의 크기가 커질수록 경사도와의 균형을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산정이 가까운 곳은 집을 지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짐승의 등뼈 가까운 곳에 무거운 짐을 올려 놓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천기와 마주하는 자리에서 부딛히게 되는 산기의 저항을 받아 붕괴의 위험이 생기며 또는 거주자로 하여금 불행을 겪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지리산이나 한계령 같은 곳에도 무리하게 지어놓은 관광용의 건물이 보이는데 이런 건물은 참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하지 못한 살기의 덩어리이다.

단층으로 낮은 지붕에 멀리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건물로 짓는 지혜가 필요하다.

도시에서는 요즘 낮으막한 산 중턱에다가 대형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여서 그 건물의 옥상이 산정의 높이 보다 훨씬 높게 뻗어 오른 흉칙한 경우가 많다. 그렇게 아파트를 지으면 돌개 바람이 불어내려 와서 매우 나쁜기류를 형성하고 먼지로 인하여 밑층에 사는 사람들의 호흡기 건강에 해롭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기가 흐트러 짐으로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을 갖지 못하여 정신질환에 시달린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18. 동네 입구에 큰 고목이 있으면

길하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으로 통칭되는 장승이 마을 동구(洞口)에 버티고 선 시대에는 그 모습이 있는 한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엽 개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미신이라는 이유로 모두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동네의 입구가 어딘지 조차도 분간이 어려운 실정이다. 어느 동네나 간선도로와 이어지는 부분을 입구로 간주하는데, 이러한 표지물이 없어지자 뒷길이 트이는가 하면 관통도로가 생겨나서 마을은 쑥대밭 처럼 갈라져 흩어지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감을 못느끼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동수(洞樹)라고하는 마을의 상징적인 나무가 살아 남아 가지고 버티고 있는 마을이 적지 않음을 알자 일편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고목은 영기(靈氣)를 품고 있다. 부정한 사람이 나무옆에 오면 그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무 자체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일도 있으며, 옛부터 그런 현상을 가리켜 ‘동티’라고 했다. 고목에다가 “ 무슨 무슨 나쁜 짓을 하면 동티가 난다 ”는 식의 표현으로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살아 남아 있는 신령적인 말인데, 아마도 ‘동티’란 ‘동태;疼笞(아프게 때리는 매질)’에서 기원한 말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러니까 나무를 괴롭히면 그 나무의 신령이 가해자를 매질해서 아프게 한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고 있다. 경남 해안의 어느 마을에서는 동네에서 신성스럽게 모시던 동제 나무를 특정종교에 개종한 사람들이 모여 뿌리채 뽑아 버렸다. 그 나무가 있는 이상은 마을 사람들의 토속적인 신앙심을 제거하기가 힘들며 따라서 자기네 종교를 전파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판단 아래 모여서 그런 고약한 짓을 하려고 결정한 것이다. 주동역할을 한 사람은 그날로 신경마비가 와서 입이 돌아가 버렸고, 함께 톱질을 하거나 괭이질을 한 사람들의 가족에게 하나같이 이상한 변고가 생겼다. 그 중 한 가족에게는 멀쩡하던 딸이 집을 나가서 돌아 오지 않는 일도 생겼다. 말하자면 동티가 난 셈이다. 대도시인 서울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큰 길을 내기 위하여 인부들이 달려 들었다가 한 사람도 무사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일이 있다. 어디에 있는 나무인가 하면 홍능에서 이문동 쪽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있는 느티나무가 그러했고, 법원단지로 넘어가는 서초동 꽃마을 입구의 네거리 나무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수백년된 아름들이 고목들인데 잘 못 건드렸다가 큰 화를 입은 것이다.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두 병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해를 끼친 까닭에 생긴 일이다.

고목이 있으면 마을에 좋은 기운을 준다. 우선 고목의 애향적인 상징성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단결심이 생기고 젊은이 들에게 경사가 있으며, 커다란 재앙이 닥치지를 않는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 명료하다. 고목이 그러한 위액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나무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렇게 일을 해주는가 하고 의심할지 모르나 , 자연의 힘이 모여서 생긴 지기의 덩어리는 인간의 힘에 골고루 영향을 미쳐서 개인적으로도 영적인 힘으로 작용하여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잘려 나갈 위기에 처했던 방학동의 은행나무는 오래 동안 보호되어 주민들과의 애환을 함께 해 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재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고목은 그 마을의 심리적인 지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어찌 토테미즘이나 미신의 아류로만 생각할 수가 있는가 ? 우리 인간은 선조대대로 나무를 숭상한 나무의 자손이기도 하였음을 잊어선 안된다.

  

  

  

19. 우물 자리 옆의 집은

여자를 괴롭힌다.

  

우물이란 여자들의 잡담터로서 오랜 세월 아주 중요한 소식 전달의 장이 되어 왔다. 우물가에서 이뤄진 일은 곧 바로 소문이 되어서 동네를 돌아 다녔으며 최근에는 그 기능을 미장원이 맡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우물은 그 동네의 희사비사를 모두 알고 있는 영물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스럽게 우물이 가까운 집은 구설의 주제로 등장하기 쉬워지고 우물가에 사는 여자는 언제나 좋지 못한 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자면 근린성 때문에 구설의 대상에 오르기 쉬운 자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 중에 서울 옥인동의 우물이 있는 동네를 뺑 둘러서 통째로 사가지고 그 곳에 집을 여러채 지어서 가족 끼리 모여 살던 사람이 있었다. 우물의 서북 쪽에 있던 큰 양옥집은 주인네 부부가 살고, 아랫집은 아들네 내외에게 주고, 우물 동쪽에 있던 작은 조선 기와집은 딸네에게 주어 그렇게 오손도손 잘 살기를 몇해, 드디어 집안에 싸움이 붙기 시작하였다. 그 우물은 사용을 하지 않게 된지 오래이나, 기묘하게도 우물을 둘러 싸고 지어진 집들이 서로 원수지간으로 변한 것이다. 자고로 미신 처럼 우물 가의 집에는 살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역시 아니나 다를까 재산 분쟁과 함께 감정 갈등이 일어나서 장남 부부는 그 집을 나와 이사를 가고 말았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주인장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기막힌 대형사고가 터졌다. 모처럼 개발 붐을 타고 업적을 쌓으려고 했던 주인장은 졸지에 직업을 잃고 허망한 세월을 보내다가 지금은 어느 시골에서 훈장 노릇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런 일이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본인이 그 곳에 영혼의 정화작업을 하러 가지 않았다면 , 그저 모르고 넘어 갈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집은 들어 가본 순간 완전히 여자 귀신의 소굴임을 알수 있었다. 우물을 중심으로 해서 엄청난 수의 여귀들이 집안팍을 뺑둘러서 어느 곳이나 가득 했다. 특히 여귀가 많은 곳은 여자들의 방이었다. 그 동네에서 살다가 죽은 오래 된 아줌마나 할머니 등등 말 많고 시끄러운 여귀들이 그 집안을 망쳐 놓고 있었다. 그래서 집 주인은 갑자기 공직을 그만 두어야 했으며 시집간 딸은 원수가 되다시피 부모를 증오하게 된 것이었다. 그 집 문제는 우물을 없애고 정화를 깨끗이 함으로 해결되었다.

우물이 처녀가 바람이 나도록 만든 희귀한 다른 곳의 사례를 들어 보자. 만리동 고개를 넘어 가기 전에 오른 쪽으로 작은 골목길이 나있고 목욕탕집을 지나 조금만 위로 올라 가면 거기에 아직도 우물이 하나 있다.

그 곳의 우물은 이조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우물이다. 지금은 우물위에 지붕도 해서 씌우고 일종의 보물 처럼 구청에서 관리한다. 아무리 날씨가 가문다 해도 그 우물은 마르지 않는 신비한 수기를 띄고 있으며, 물이 언제나 우물통의 윗 돌 부분 까지 찰랑찰랑 차오른다. 문제가 된 것은 그 수기와 영합한 총각귀신의 장난이었다. 그 우물 바로 서북쪽에 사는 어떤 처녀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 왔다. 요즘 아이가 바람이 나가지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어떤 남자를 만난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 어머니가 딸아이의 바람끼에 대하여 말하자 마자, 내가 먼저 그 우물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 혹시 우물이 집앞에 있지 않은가요 ?”

영적인 일을 하다가 보면 본의 아니게 현장을 가보지 않았는데도 그 문제의 자리가 보이거나 사람이 느껴지는 일이 있다. 어머니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문제의 포인트가 우물에 있음을 묻지 않고도 그냥 아는 것이다. 그런 면이 바로 영세계의 불가사의 하면서도 신비한 부분이다. 그 우물의 문제를 해결하므로서 역시 그 딸의 바람끼도 잠재울수 있었다. 우물의 힘이 총각귀신의 연애감정과 결합하여 불상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20. 지붕이 우뚝 우뚝 솟은 동네는

오래 살 데가 못된다.

  

지붕은 인간의 신체로 말하자면 머리에 해당되는 부위이다. 지붕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두상(頭相)이 어떤가를 말한다. 머리의 생김새는 관상학에서 그 사람의 지능과 자존심 그리고 충성도나 범죄 성향등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느 동네를 가 보면 지나치게 지붕이 하늘을 향하여 치솟은 동네가 있다. 굳이 프랑스 식으로 경사가 지게하여 가파른 느낌의 지붕이 아님에도 집이 하늘로 올라 갈 것 같이 지붕에 액센트를 둔 집이 적지 않다. 그 것도 어느 한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동네에 모인 모든 집들이 그렇게 자기의 머리를 자랑하듯 들어 내는 데는 혐오감 마저 느끼게 만든다. 개성이 강하다는 한마디로 넘겨 버릴수도 있으나 그런 동네는 사람이 사는 동네라기 보다도 어떤 직위나 명예에 사로 잡힌 속물들이 거주한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조선기와집을 지으면서도 지붕의 선을 무척 소중하게 다루었다. 왜냐하면 지붕이 선은 곧 그 건물의 품격을 가름하기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유홍근 교수 저) 102 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 수덕사 대웅전을 앞마당 아래 쪽에서 정면 정관으로 올려다 보면 지붕골이 아주 길고 높아서 지붕의 하중이 대단히 위압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저 팽팽한 팽창감의 배흘림 가둥이 탄력있게 어찌보면 상큼하게 지붕을 떠 받치고 있어서 우리에게 하등의 기각적 불편이나 무리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

우리의 조상들은 팔작지붕의 비상하는듯한 멋을 오히려 자연경관과의 조화에 어긋난다 하여 억제하고, 맛배지붕으로 하는 슬기를 가지고 있었음을 유홍근 교수는 지적한다. 거기에 덧붙혀 기둥 가운데다 약간 불록나온 배흘림 기둥으로 세워 힘이 안드는 기둥의 모습을 재현해 낸다. 참으로 지혜로운 건축양식이다. 그러나 이런 지혜로운 조상을 둔 우리가 현실에서 보면 너무나 잘 난 사람들이 되어서인지, 새로 조성된 개발지역 동네로 가면 갈수록 지붕이 하늘을 향한다. 그런 지붕으로 가득 찬 동네에서 살면 어쩐지

불안해지고 항상 욕구불만에 가득 차게 된다. 왜냐하면 언제나 상승욕구에 쫓기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은 중요한 동기부여의 조건이지만 , 그렇다고 해서 허영에 들뜨면 곤란하다. 이조 말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세월을 보낸 우리 민족의 지도층이 어째서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는지 ? 아마도 그들의 정신세계가 그 처럼 허영에 들더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