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 살아 있는 고구려의 땅 이름
(1) 키워드가 되는 쿠( Ku)
고구려는 한자로 高句麗라고 표기되지만 당시의 발음은 쿠구리(kukuri)였다. 때로는 구리라고 줄여서 발음하기도 하였지만 앞에 나오는 구(Ku)는 “크다”는 형용사였다. 다시 말해서 구구리란 “큰 구리”이다.
이 표기법은 백제를 가리킬 때에 일본인들이 표기하는 방식인 쿠다라( Kudara)라는 단어로 지금도 살아남아 있다.
쿠다라의 쿠(Ku)역시 크다(ku da)는 뜻이고 다라라고 하는 말은 (tara/dara) 나라(國)를 가리킨다. 이 표기는 다라(多羅) 가야라고 부르는 가야 6국의 나라명칭에도 살아 있다.
따라서 쿠다라는 일본인 들이 숭배하는 “큰 나라”가 된다. 1500년 전 당시의 일본으로서는 백제가 큰나라임이 분명하다.
고구려라고 표기하는 방식은 높을 고(高)자를 쓰긴 하였지만 본시 뜻은 “큰 구리” 가 되고, “큰 구리”라고 하는 점차 영토를 확장하는 큰 고구려를 말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고주몽(高朱夢)이라고 표기하는 이름도 본래는 쿠 주모(Ku-chumo/ 큰 주먹)이었는데, 나중에 높을 고자를 붙여서 하늘처럼 높고 크다는 의미로 확장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고씨 성은 본래 순수 우리말인 크다(大/Big)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cf. 1
Kuri has the meaning of ' nation' or 'tribe' in ancient age .
For Example ,simmilarly Japanese Kuni(邦 ,國) is the nation in recent language. It might be derived from Kuri in ancient Korean.
(2) 살아남은 지명들
구리 시, 구로 동, 구례 읍, 구례 산성, 고골,
이러한 지명들은 공통점을 가진다. 지금부터 1300여 년 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이래 한 반도의 남쪽지역까지 고구려가 영토를 넓혔을 당시, 이 지명을 가진 곳까지 고구려의 세력이 닿아 있었다.
그래서 지명이 여러 군데에서 아직도 구리, 구로, 구례, 구례산성, 고골(고고리)이라고 불려진다.
① 구리 ( 九里 : Kuri) 시
구리시는 익히 알다시피 아차산 동쪽의 한강의 백제지역과 부딪치는 북쪽지역으로 당연히 당시로서는 신라, 백제와 대치하던 고구려 영토이다.
② 고골 (Kokol): 특히 지금의 하남시 남쪽인 남한산 기슭지역은 고골이라고 표기하면서도 그 동네 사람들은 현재 고고리, 고굴이라고 부른다.
③ 구로 (九老 : Kuro) 동
구로동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공단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인데, 관악산을 놓고 백제와 고구려가 서로 팽팽하게 대치할 당시 고구려의 군사가 머물던 자리이다. 특히 고려대학병원이라 불리는 병원이 있는 곳은 예전에 고구려 군단이 주둔하던 언덕이다. 그 지역은 그래서 독산동(돌 바위산이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고려라고 하는 지명이 이어지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④ 구례 (九禮: Kure) 읍
지리산 화엄사 입구에 있는 구례라고 하는 읍성지는 5세기 경 고구려 군과 가야군의 접전지역이었다. 그리고 함안과 창원시 사이에는 구례산성이 남아 있다.
2006년 8월 31일 제마 장선생 / 김세환